“회사보다 항상 한 발 앞서야”
“회사보다 항상 한 발 앞서야”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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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제안으로 상생 위한 43억 원 기부금 조성
[커버스토리]울산의 내일을 보다 ➍ 이정묵 SK이노베이션노조 위원장
‘노동자의 도시’ ‘산업수도’ 울산이 심상치 않다. 지역의 3대 주력산업 중 조선은 장기간의 침체에, 자동차는 수출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그나마 석유화학산업이 선전하고 있지만, 앞날은 또 모를 일이다.

주력산업의 부진은 지역의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골목경기는 스산하고, 인구는 감소 추세다. 지역의 소득수준도 1위 자리를 내줬다.

울산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은 타 지역과 공통점이 많다. 어쩌면 정부 주도 아래 ‘산업수도’로 육성되면서, 그동안 실패의 경험 없이 내달려온 울산이기 때문에 지금의 어려움이 더 크게 와 닿는지도 모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는 물론, 사회 전반의 양극화를 줄여나가는 산업 생태계 복원 없이는 지금 당장 급한 불은 끄더라도 언제고 다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과정에서 노동은, 자본은, 행정은 어떤 역할과 책임을 찾아야 하는가?

SK이노베이션은 한국의 대표적인 석유화학기업이다. 사업영역은 석유개발에서부터 정유, 화학, 윤활유, 배터리 분야까지 다양하다. 장치집약산업이라는 특성상 고용창출이 크진 않지만, 지역의 경제와 문화를 활성화하는데 향토기업으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올해 SK이노베이션노사는 43억 원에 달하는 ‘구성원 행복나눔 1% 상생기부금’을 조성했다. 지난 임금협약에서 노사가 매칭기금을 내 사회 상생과 공헌에 나서자고 합의한 결과다. 앞선 2007년부터 SK이노베이션 구성원들은 ‘1인 1후원계좌’를 만들어 자발적으로 기부활동을 해왔고, 작년 노조가 사측에 사회공헌을 강화하자는 제안이 이 같은 노사 공동의 기부문화 시스템 구축으로 이어진 것이다.

지난달 2일에는 노사가 일주일 만에 1.9%라는 물가연동 임금인상에 합의하면서 또 한 번 사회적인 주목을 받았다. 2008년 20대 위원장을 맡은 데 이어 작년 1월 23대 위원장으로서 새로운 임기를 시작한 이정묵 SK이노베이션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난 20일 울산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났다.

SK이노베이션 울산CLX(울산공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이 진행되나?

정유와 석유화학, 윤활유 크게 세 가지 사업 영역이 있다. 원유를 들여와서 기술직들의 오퍼레이션을 통해 휘발유, 디젤, 기타 화학제품, 윤활유 제품들을 생산한다. 석유화학은 장치집약적인 산업이다. 땀을 흘리는 노동이라기보다 장치를 관리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조치를 취하는 일을 한다. 쉽게 말해서 가까이 있는 10개의 컴퓨터를 보고 조작해 200~300m 떨어진 장치들을 움직이는 생산 활동이다.

현재 조합원 수는 얼마나 되나?

울산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자 수는 2,900명 정도다. 이중 대부분이 조합원인데 약 2,500명이다. SK그룹이 80년대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해 유공으로 사명을 바꿨다. 유공은 이후 SK이노베이션이라는 가장 큰 지주회사와 SK에너지, SK종합화학, SK루브리컨츠 등 4개 회사로 물적 분할을 했다. 법인은 4개지만, 노조는 하나다. 다사 1노조 형태다.

울산 지역의 3대 주력산업인 조선업과 자동차산업이 침체기를 겪고 있다. 현재 석유화학산업은 어떤가?

석유화학은 호황기다. 정유 매출액의 50% 이상, 석유화학까지 합치면 매출액의 70% 이상 수출이 차지하는데, 관련 산업의 세계적인 경기자체가 좋은 상황이다.

산업이 안정적일 때 기술 개발이나 연구에 집중해 경쟁력을 강화해나가야 한다. SK이노베이션 울산공장에서도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배터리 사업을 확대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노조에서도 산업, 기업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고민을 하실 텐데?

노조는 일자리 창출에 대한 요구를 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정년을 맞이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올해 58년생들을 시작으로 앞으로 향후 1년에 100명 정도 인력의 자연감축이 있을 것으로 본다. 신규인력이 충분히 들어와야 한다. 올해 몇 명이 나가니 몇 명을 뽑는다는 식이어선 안 된다. 이곳에서는 고도화된 기술집약적 노동이 이뤄진다. 입사 후 1달 또는 1년을 교육받아도 생산 활동을 수행하기에는 부족하다.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최소 3년에서 5년 정도 트레이닝을 받아야 비로소 자신의 책임 하에 오퍼레이션을 할 수 있다.

또 현재 회사가 미래 자동차의 핵심인 배터리 사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공장 내부에서도 이와 관련한 부분을 확장한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능력 있는 이들의 채용도 중요하다.

▲ 이정묵 SK이노베이션노조 위원장

지난 2월 말 시작한 노조의 올해 임금협상이 일주일 만에 타결됐다. 회사가 2년 연속 3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내고도, 소비자 물가지수 1.9%에 연동한 임금협상안을 체결한 계기는?

2008년 위원장을 할 때부터 구상해 온 임금 결정방식이다. 임금인상에 대해 노사가 합의한 원칙을 정함으로써 서로 간의 소모적인 분쟁 없이 안정적인 임금인상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 당시에 시도했지만 하지 못했다. 임금인상보다 고용안정에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지난해 다시 위원장으로 당선된 뒤, 노조 전임자들과 지난 10년 동안의 임금 인상에 대한 분석을 했다. 그 결과 노사가 매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까지 걸려 한 교섭의 임금인상률보다 CPI가 더 높았다. 우리 회사의 고유 임금체계에서는 CPI를 연동한 것만으로도 그간의 임금인상률에 버금가는 인상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작년 임단협에서 매년 임금인상률을 전년도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연동하기로 합의했다.

안정적인 임금인상이 중요하다는 것은 하나의 철학이었다. 임금이 최소한 소비자물가지수만큼은 올라야 한다. 그래야 더 나은 삶은 아니라도 지금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 노사가 불필요하게 싸우지 않으니 노사 신뢰도 쌓인다. 물론 나머지 복리 후생부분은 노사가 치열하게 논의해야 한다.

조합원들 중 더 놓은 임금 인상을 원하는 이들의 불만은 없었나?

작년 임단협에 조합원의 74%가 찬성했다. 올해 임금협상에도 90%가 넘는 조합원이 동의했다. 회사의 10년 치 평균 임금인상률과 통계청 자료를 비교, 공개해 조합원들에게 확인시켜줬다. 사회양극화나 대중소기업간 격차 때문에 앞으로는 임금은 더 올리기 힘들어진다. 조합원들을 찾아다니며 설명하고 소통했다.

노동자가 기본급의 1%를 내고, 사측도 이에 상응하는 기부금을 조성하는 ‘구성원 행복나눔 1% 상생기부금’도 눈에 띈다.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나?

마찬가지로 작년 9월 체결한 임단협에 포함된 내용이다. 회사의 발전이 구성원뿐만 아니라 협력사와 사회 발전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데에 합의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했다. 지난 10월부터 시작해 12월까지 모은 3개월 치의 기금은 이미 집행됐다. 조합원이 낸 돈은 지역사회의 취약계층에게 전달되고, 기업의 기부금은 중소협력업체 상생을 위해 사용된다. 올해 행복 나눔 기금은 43억 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노조의 주요 사업은?

현장에서 노사의 좋은 문화를 만드는 것이 첫 번째다. 그동안 노사 간 불신의 벽이 있었다.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노사가 서로 양보하고 협력해야 한다. 노조는 조합원을 비롯한 전체 구성원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회사와 협력하면서도, 안고 있는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 기본적으로 협력을 전제하되 사측이 현장에서 행하는 부당노동행위와 정서적인 억압, 인권에 대한 강제적인 통제 등에는 강경하게 맞서야 한다.

그 다음에는 평가 기준에 대한 문제가 있다. 사용자는 노동자 평가 기준이 객관적이라고 하지만, 노조가 볼 땐 공정하지 못하다. 노조는 평가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조합원들의 숙원사업인 통상임금 적용 문제도 큰 숙제다. 현재 재직자에 한해서 주는 상여금에 대한 통상임금 적용 여부가 쟁점이다. 현재 동종업계로 볼 수 있는 현대오일뱅크는 유사한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적용하고 있다. 관련해 노조는 2015년도에 통상임금 소송을 걸었지만, 법적인 다툼과 별개로 노사 협의로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SK이노베이션은 1962년 국가가 설립한 국내 최초의 정유화사 ‘대한석유공사’를 1980년에 인수했다. 지역에 50년 넘게 뿌리내린 향토기업의 구성원으로서 울산은 어떻게 보시는가?

1988년도부터 울산에서 일을 시작했다. 울산은 대기업들이 많은 산업도시, 소비도시다. 타 도시에 비해 일자리를 수월하게 찾을 수 있어 생계수단을 걱정하지 않으면서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도시였다. 한편으로는 지역의 문화, 체육 활동 등이 굉장히 취약했다. 처음 울산에 왔을 땐 공원 하나가 없었다. 오로지 산업만 키우는 그런 도시였다. 각박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은 울산도 많이 변했다. 그 변화의 계기가 SK이노베이션의 사회 공헌활동이었다. 천억 원이 넘는 돈을 기부해서 울산대공원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차츰 정치인들도 울산 시민들의 여가생활과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회사 밖으로 나가면 사회에서 가족들과 쉬고 여가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도 이런 측면에서 울산의 문화는 더 발전해야 한다.

한국에는 울산 말고도 여수와 대산에 석유산업단지가 있다. 울산만의 경쟁력이 있다면?

석유화학 관련 산업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이 울산이다. 뿌리가 깊다. 다른 산단과 정서적인 부분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SK이노베이션을 포함한 이곳 산단이 실질적으로도 가장 경쟁력이 있다. 구성원들의 자부심도 상당하다.

석유화학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울산이라는 지역에서 산업이 지금보다 더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

울산이 대기업 권에 속한 사람만 생활하는 지역이 된다면 이 도시는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여건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과 경비,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등을 위한 제도를 정부가 얼마나 잘 마련해 주는가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지역 구성원들끼리 교류하고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 간의 경제적인 격차가 너무 많이 벌어지면 이조차도 어려워진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올리는 과정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정책은 올바르게 시행했는데 이로 인해 사람들이 실질적인 생활에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 과거 사용자들은 초과 근로에 대한 수당을 적게 주기 위해 그 기준이 되는 기본급을 낮게 잡고, 편법적으로 정기상여금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제 와서 최저임금에 모든 것을 포함하자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조삼모사다. 이대로는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

글로벌 시대에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사업과 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것으로 득을 보는 사람은 사실 소수에 불과하다. 지금의 구조에서 사람들이 어느 일자리로 가든지 삶을 여유롭게 살 수 있도록 낮은 임금수준을 끌어 올려야 한다. 정치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득권의 반발이 다소 있더라도 상대적으로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 위해서 큰 틀에서 제도를 도입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