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용역노동자 보듬은 석유공사노조
해고 용역노동자 보듬은 석유공사노조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8.04.0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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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문제해결 서광 비치다
[리포트] 석유공사 비정규직 해고 문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새 정권이 출범하고 노사/노정 관계에서 가장 큰 변화 상은 공공부문에서 보여지지 않을까 싶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동안 공공부문 노동계는 바람 잘 날 없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두 당사자가 구속돼 있는 지금, 과연 새 정권에서 변화는 어느 정도나 와 있을까? 한국석유공사 그동안 역시 대표적인 ‘갈등’ 사업장이었다. 특히 김정태 전 사장의 퇴출을 위한 노동조합의 투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처 눈길을 돌리지 못했던 절박한 사례를 소개하려고 한다.

17년 동안 일하던 직장서 해고 날벼락

한국석유공사는 울산, 거제, 여수, 평택, 구리, 곡성, 용인, 동해, 서산 등 전국 9개에 비축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강원도 동해시에 위치한 동해비축기지는 정부의 민간 위탁운영 시범사례로 선정돼, 지난 2000년 3월 개소 이후 17년 동안 외부 용역업체를 통해 운영돼 왔다. 그런데 지난 2016년 5월 김정래 전 사장의 본사 직영전환 지시에 따라, 공사는 2016년 12월 31일자로 당시 동해기지의 위탁업체인 대진유관과의 계약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동해기지 위탁운영을 담당한 대진유관은 지난 17년 동안 공사 비축본부 출신 인사가 사장으로 부임하여, 사장이 바뀔 때마다 삼정유관(5년)→대유시스텍(9년)→대진유관(3년) 등으로 이름만 바꾸어 가면서 수의계약으로 관리용역을 맡아 왔다.

문제는 공사의 직영전환 결정에 따라 17년 동안 동해기지에서 일해온 노동자 20여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이름만 바뀌어 온 회사에서 변함 없이, 공사의 로고가 부착된 안전모를 착용하고, 공사 타 지사와 동일한 매뉴얼/절차서/지침을 적용해 동일한 업무를 수행해 왔으며, 이들의 출장, 휴일근로수당, 연차휴가, 경조휴가 일수까지 공사가 직접 관리했고, 문서처리 또한 공사의 내부시스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부여받아 수행해 왔다.

대외적으로는 외부 교육뿐만 아니라 식목행사, 봉사활동 등의 자체 행사에서도 공사 소속으로 참여했고, 심지어 공사 소속 직원으로 외부기관 표창까지 받기도 했다. 사실상 17년 동안 한국석유공사에 취업한 것이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고용승계 무시, 진정취소 회유

원청인 석유공사는 기존의 용역도급 계약서에 최대한 고용을 승계한다는 내용을 명시해 두었다. 하지만 직영 전환을 앞두고 정작 공사는 기존의 직원들을 나몰라라 방치했다.

부당하게 해고될 위기에 처한 이들 노동자들은 공사에 고용승계를 요구했지만 묵살됐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 강릉지청에 자신들의 불법파견 여부를 조사해 달라는 진정을 접수했다. 석유공사가 이들 동해기지 노동자들에 대해 직접 지휘, 명령, 감독을 수행했음이 명백하고, 따라서 이는 불법파견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노동자들의 주장을 김정태 전 사장은 일축한다. 또한 공사는 개별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접근해 진정 취소를 회유한다. 그 과정에서 12명의 노동자 중 7명은 석유공사의 2년 동안의 단기계약직 채용, 5명은 6~12개월 월급에 해당하는 위로금 수령을 조건으로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 수준의 합의서에 사인한다. 이를 거부한 6명의 노동자는 그대로 실직 상태에 내몰린다.

유감스럽게도 고용노동부는 도급업체인 대진유관이 4대 보험료를 납부하는 등 사실상의 사용자라며 사건을 종결처리한다. 여기에 불복한 6명의 노동자들은 본인들이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에 따른 석유공사의 직원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해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석유공사노조, 해고 노동자에 손 내밀다

한국노총 공공노련 소속의 한국석유공사노조(위원장 김병수)는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동해기지 6명의 노동자들에게 손길을 내밀었다. 지난해 6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실,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공공노련 등과 함께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지리한 법적 공방이 계속될 거 같았던 국면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 것은 정권교체 이후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이후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화를 선언한다. 7월 발표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이 발표된다. 이에 따르면 공사와 직접 계약관계에 있는 기간제 근로자는 심의과정을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측의 회유에 따라 합의서를 쓰고 2년 단기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7명의 노동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석유공사노조는 이들의 전환 심의에 현재 소송 중인 6명의 노동자를 포함시킬 수 있다면, 동해기지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사 및 해고 노동자 양측은 법원으로부터 화해권고결정서를 받기도 했다. 김병수 한국석유공사노조 위원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전 사장이 나갔고, 극단으로 치달았던 노사관계도 회복의 조짐을 보이는만큼 사측이 조금만 전향적인 조치를 보인다면 이들 해고 노동자들의 문제를 쉽게 풀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실마리가 잡히지 않던 동해지사의 문제가 정리돼 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향후에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논의 등의 다양한 문제가 남아 있다”며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개선 등은 기관의 경영평가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중요한 이슈일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지속가능한 공기업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무형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조합원의 이익과 직결되지 않은 동해기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에 발벗고 나선 석유공사노조가 앞으로 만들어나갈 새로운 노사관계의 모습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