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평등·정의에 대한 대전제부터 잡아야
개헌, 평등·정의에 대한 대전제부터 잡아야
  • 윤찬웅 기자
  • 승인 2018.04.0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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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조항 집착보다 모두가 합의 가능한 가치 선언이 우선
[인터뷰]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 개정안이 지난 3월 26일 발의됐다. 전문에 4·19혁명,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 이념 계승을 명시했으며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결선 투표제 도입, 국민소환제, 국민발안제 등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 등이 추가됐다.

그러나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권력 구조 개편에만 치중되어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양대 노총은 지난 3월 6일 노동존중 개헌 공동요구안을 통해 8대 노동존중 개헌 과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양대 노총이 요구한 노동 존중 가치 전문 포함, 적정한 임금, 고용 안정 및 상시지속 업무 직접고용 원칙,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노동자 경영참여권 명시 및 이익균점권 복원 등의 주요 사안이 대통령 개헌안에서 빠졌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우선적으로 제시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명시 역시 노력 의무를 담는 수준에 그쳤다.

국민 기본권 향상을 위해 국회로 넘어간 개헌 논의가 보다 실질적이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참여와혁신>이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을 맡고 있는 김형동 대표변호사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

대통령의 헌법개정안이 발의됐다. 노동권 부문에서의 변화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최종안이 나오기 전까지는 평가하기 어렵지만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노총에서 지적했던 것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다. 이 원칙은 강하게 입법화할 필요가 있는데 단순히 노력 의무에 머물렀다.

또 하나의 시대적 과제는 노동자를 회사의 주인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노동자에게 책임만을 지우는 행태가 있는데, 앞으로는 노동자의 책임과 권한을 일치시킨다는 측면에서도 이를 열어줬어야 했다. 나머지는 다 중요하지만 크게 보아 그 두 가지 정도는 앞으로 남은 과정에서 강력하게 보완되어야 한다.

개헌을 둘러싸고 정치적 힘겨루기와 공방이 이어지면서 정작 중요한 알맹이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떤 논의들이 더 필요한가.

큰 차원에서 본다면, 이번 개정안은 노동 기본권과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나름 명확하게 헌법에서 구분하고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진일보한 것이고 크게 도움이 된다. 그러나 왜 노동이 중요한지, 그런 헌법 체계 내 상위 개념에 대한 고민이 충분했는지 의문이 있다.

예를 들어 토지공개념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 법에서는 초과이익환수제 등이 토지공개념의 법률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대한민국에 이른바 ‘토초세(토지초과이득세)’를 내야 할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부동산을 많이 갖지 않은 보통 사람한테는 적용이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그런 것들이 언론에서 ‘사회주의’라는 식으로 부각이 되고 쟁점이 되는가.

그런 프레임이 과도하게 먹히는 측면이 있다.

노동과 일에 대한 관점도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 헌법에서 왜 이런 가치가 필요한지를 이야기해줘야 하는데 그런 차원에선 개정안이 매우 부족하다. 앞으로는 자유시장 경제 질서에서의 어느 정도 ‘제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토지공개념조차 헌법 안에서 봤을 때는 가장 높은 이상보다 하위 레벨인 중간 개념에 불과하고 ‘토초세’와 같은 법률은 그보다 낮은 개념이다.

어떤 가치가 우리 사회에서 왜 중요한지를, 헌법이 길어져도 상관없으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이제 어느 쪽으로 가야 한다고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다. 자유시장 경제 질서가 한계에 도달하는 부분도 앞에 명시 해주면, 노동자를 왜 존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합의가 될 수 있다. 노동자가 왜 경영에 참여해야 하는지, 노동의 대가가 왜 공정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큰 개념이 있으면 도출해낼 수 있다. 대통령 개헌안 발표 이후 헌법이 논해야 할 가치보다 낮은 위상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 사회가 이 부분에서 우선 큰 선언을 해줘야 한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원리에 대한 선언이 쉽게 가능할까.

충분히 가능하다. 예를 들어 동일가치노동에 동일임금을 줘야 한다고 하기 이전에, 적어도 타고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불평등이 줄곧 이어져선 안 된다는 합의는 우리에게 있다. 전후 세 세대가 흐르면서 이런 것들은 공감이 좀 될 수 있다고 본다. 지엽적인 정책을 두고 싸울 것이 아니라 평등, 분배의 문제를 고민하고 국가의 근본정신을 규정해야 한다.

개헌 국면에서 지엽적인 정책 관련 논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 대전제의 합의라는 말씀에는 공감하게 된다.

민주화에 대한 평가를 헌법에 한 축으로 담았다면 현실을 살아가는 문제에 대한 정의도 주저할 필요 없이 규정해줘야 한다. 이런 전제, 바닥의 기준이 없는데 개별 헌법 조문을 두고 이런저런 논쟁이 벌어진다. 보다 과감히 나가야 한다. 과감히 선언하면 이익균점권 복원이나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등 저희가 부족하다고 밝혔던 부분도 쉽게 풀어질 수 있다. 우선은 우리의 이상과 이념이 일치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혁명 후에는 항상 헌법이 만들어졌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나폴레옹 헌법이 만들어졌고 독일도 1차 세계대전 패전 후 바이마르 공화국이 생기고 바이마르 헌법이 만들어졌다. 우리도 4·19 혁명 이후에 2공화국 헌법이 만들어졌고, 87년 6월 항쟁 이후에 현재의 헌법이 있었다. 혁명 이후의 헌법은 혁명의 완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헌법을 개정해야 하고 시대 정신을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광화문에 천만 명이 넘게 모였는데, 과연 왜 모였는가.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배가 고프다는 것이 컸다고 본다. 사회적으로 쌓여온 불만인 정의, 분배의 차원이다. 그런 불만이 없었으면 그만큼 나오지 않았다고 본다. 단순한 배고픔이 아니고 배가 아프면서도 배가 고픈 것이다. 상대적인 불평등이 사람들을 자극한 게 컸다. 그것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이번 정권은 혁명에 근거해서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왜 좌고우면하는가. ‘배고픈 문제’, ‘배 아픈 문제’, 이건 차별 해소, 정의의 차원이다. 만일이지만 부패가 만연했는데도 시민들의 삶이 매우 좋아졌다고 하면 이렇게까지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개헌 저지선인 의석 3분의 1 이상을 가진 자유한국당의 원외투쟁 선언은 다소 불필요해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개헌 무산에 따른 정치적 부담 때문에 대여론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거 같다.

헌법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대중의 뜻을 담아야 한다. 그런데 그런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대국민 홍보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토초세’ 도입했을 때 그게 ‘공산주의’ 아니라는 걸 홍보하고 선전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냥 툭 던져 놓고 시민들이 알아볼 거라고 믿는 것은 오산이다. 그런 설득의 과정도 앞으로는 필요하다.

예전에 참여 정부 말기에 종합부동산세, 상속세로 논란이 있었다. 그때도 여론이 굉장히 거세서 하면 나라 망한다고 했는데, 정작 상속세 중과에 해당하는 사람은 고작 1%도 안 되었다. 정부가 카드를 꺼냈을 때 충분하게 계도하고 이끌어가는 테크니컬한 면모가 부족했던 것이다.

▲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

결국 국민 여론을 만들어가고 합의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한데 한국노총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

노총은 이것보다 더 나아가는 헌법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입장인데 지금 자칫 잘못하면, 여기에 정체되어서 더 떨어질 수도 있다. 이건 우리로서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차라리 작년에 헌법을 개정했으면 좋았을 법도 싶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개헌 반대 세력과의 주고받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게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게임은 아니지만, 비유하자면 격투기에서도 그로기인 상대방을 무너뜨릴 수 있을 때 무너뜨려야 한다.

노총 입장에서는 그동안 꾸준하게 노동에 대한 부분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노동과 떨어질 수 없는 정치에 대한 부분을 요구해왔다. 국회에서도 이것을 공개적으로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저희 노총 입장에서는 굉장히 절실하고 임단투 이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노동자의 삶은 헌법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굉장히 많이 좌우된다. 제 개인적으로는 정책뿐 아니라 경제 질서, 사회 질서에 대한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자유, 평등에 대한 관념, 이 평등에 대한 중요성을 자유 이상으로 잡지 않으면 사회가 지속적으로 운영되기 힘들다. 문 대통령도 그런 생각을 했겠지만 아마 ‘레드 컴플렉스’ 이야기가 나오니까 부담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개헌은 임기 중 한번 밖에 더 안 하는 건데. 가치를 가지고 과감히 치고 나오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