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든 건강이 최우선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든 건강이 최우선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8.04.0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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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현장에 뛰어든 의사의 보람과 고민
[인터뷰] 이동욱 서울서부근로자건강센터 센터장

“가진 거라곤 몸뚱이 밖에 없는데”라는 푸념처럼 노동자에게는 건강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중소·영세기업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산업안전 혹은 직업건강과 거리가 먼 노동자들이 많은 현실이다. 근로자건강센터는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건강관리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전국 21개 근로자건강센터에서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들을 비롯한 간호사 및 전문가들이 활약하고 있다. 그중 서울서부근로자건강센터의 이동욱 센터장을 만났다.

▲ 이동욱 서울서부근로자건강센터 센터장

막상 시작하니 더 큰 가치 느껴져

서울서부근로자건강센터(이하 ‘서울서부센터’)는 지난 2015년 5월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터를 잡아 같은 해 6월 정식으로 개소했다. 이동욱 센터장은 서울서부센터 설립부터 함께 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예방의학교실에서 전공의로 있으면서 서울서부센터 개소 준비를 했다. 그는 서울서부센터 개소 이후 2년여 동안 팀장 직책을 수행하다 지난 3월 1일자로 센터장이 됐다.

서울서부센터에는 실질적인 센터장 역할을 하는 대표센터장 1명과 의학적 지도·조언을 하거나 현장 실무를 책임지는 센터장(부센터장급) 2명이 있다. 이동욱 센터장은 이중 책임의사로서 센터에 상주하며 현장의 교육과 상담 업무를 담당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매우 드물다. 수련의(인턴) 과정을 거친 사람들 중에서 직업환경의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경우는 전국을 통틀어 연간 30~40명 수준으로 전해졌다. 이동욱 센터장은 “서울대 의대 동기들 중에서는 저 혼자였고, 당시 한 해에 35명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직업환경의학은 아직 많이 낯선 데다 인기가 많지도 않다.

“특별한 케이스다. 1세대 산업보건 하시는 분들은 거의 예방의학 전공이거나 호흡기 내과에서 진폐증 환자들을 너무 많이 보시다가 (산업안전에 대한)문제의식을 느끼고 이쪽 일을 하시게 됐다. 1995년에 처음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제도가 만들어졌고, 2세대는 2000년대 초반에 학생 때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개개인을 고치는 의사보다는 사회를 고치는 역할을 해보겠다는 분들이다. 저 또한 사회적 의미를 두고서 직업환경의학을 선택하게 됐다.”

사실 이 센터장에게 사회적 의미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의 길로 들어서게 된 ‘절반의 계기’다. 나머지 절반은 지극히 개인적인 욕구(?)에서 출발했다. 그는 “직업환경의학을 선택한 이유의 나머지 반은 당직도 안 하고 편할 것 같았다”며 웃었다. 이어 “편한데 의미까지 있는 일이 있구나, 싶었다”고 했다.

이동욱 센터장은 오히려 일을 시작하면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서 사는 것에 큰 가치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보건 문제를 누가 이슈화 해 줄 사람이 있다고 쳐도 전문가 그룹이 너무 부족했다”며 “필요성에 비해 모자란 부분을 메워 줄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편해보여서’ 시작한 길이라고는 했지만, 그가 남들과 다른 행보를 결심한 데에는 나름대로의 신념이 자리 잡고 있었던 듯 보였다.

운송업 및 연관 업체 밀집, 지역 특화사업으로

서울서부센터가 주로 사업을 진행하는 지역은 강서·양천·영등포 지역이다. 이 지역은 운송업 또는 그와 연관된 업체가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서구의 경우 김포공항과 강서공영차고지가 있고, 양천구에는 양천공영차고지와 서부트럭터미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 소속 택시업체 다수가 서울 서부지역에 차고지를 두고 있다. 서울 중심부와 떨어져 인천이나 경기 부천, 김포 등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데다 상대적으로 넓은 부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울서부센터는 운송업 중에서도 시내버스에 초점을 맞췄다.

“서부지역에 운송업체가 많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산업안전보건법의 연혁을 따라가다 보면 육상운송업은 어느 순간부터 보건관리자 선임 예외업종이 돼 버렸다. 보건관리자가 선임이 안 돼 있으니까 최소한의 법규를 지키는 것조차 이를 관리할 사람이 없었다. 운송업의 규모가 서부지역에서는 크기도 하고, 장시간근로 문제가 많았던 업종이기도 했다.”

서울서부센터는 지난 2016년 3월말 서울시버스노동조합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버스운송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장시간 앉은 자세로 일하는 동안 진동, 소음, 차량 배기가스에 노출돼 근골격계 질환, 뇌심혈관계 질환, 호흡기능 저하 등이 발생할 우려가 컸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승객의 폭언 및 폭력, 시간적 압박, 업무강도 강화로 인한 직무스트레스 위험도 컸다.

“현재는 강서지역 4개 사업장에서 주치의 역할을 하고 있다. 버스준공영제 시행 이후 운전기사들이 서비스 마인드를 강하게 요구받는다. 이전에는 배차간격이 15분이라면 그때마다 기점에서 출발하기만 하면 됐는데 지금은 각 정류장에 15분마다 도착해야 한다. 그러면서 버스에 위치측정체계(GPS)를 달아서 앞뒤 차량과 간격을 수시로 확인해야 하고, 차내에 와이파이(wifi) 장비나 카드단말기 같은 것들도 관리해야 한다. 또 예전에는 정류장에 사람이 없으면 그냥 지나쳤지만, 지금은 한 번 멈췄다가 문을 여닫은 뒤 출발해야 하고 이것이 기록된다. 요구조건이 많아지면서 힘들어진다.”

이외에도 구내식당의 부실한 식단과 불규칙한 식습관, 짧은 식사시간 등도 버스운전기사들의 건강을 해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선후배 간 관계에 부담을 느끼거나 배차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참고사항이다. 이동욱 센터장은 “버스운송업에서 극적으로 변한 사례가 아직 없기는 하지만 특화사업이 향후 변화를 이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서울 서부지역에서는 운송업과 연관된 소규모 업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운송업이 발달한 만큼 자동차공업사나 정비소 역시 많은 편이다. 이 센터장은 “공업사나 정비소에서는 유해물질을 사용하고 소음, 진동이 있어 전통적인 제조업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면서 “현대차처럼 큰 사업장은 이미 문제가 제기됐지만 작은 곳은 현황 파악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의 자동차공업사 및 정비소 노동자들의 건강과 산업위생 문제를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판원 취급당할 때 가장 힘들어

돈보다는 사명감으로 일한다지만 이동욱 센터장은 때때로 현장에서 높은 장벽을 마주치곤 한다. 근로자건강센터가 주목하는 사람들은 영세한 규모로 인해 법규로부터 배제된 채 안전, 보건, 건강과 같은 중요한 문제들과 늘 거리를 두고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다.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의 건강을 국가에서 관리해 주는 모델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모범적인 사례다. 그럼에도 노동자 건강관리 책임에 대한 사업주의 인식 부족과 미비한 제도는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으로 꼽힌다. 이동욱 센터장은 이 점을 아쉬워했다.

“근로자건강센터의 사업 목적이 소규모 사업장에 직업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지만 명확한 법적 테두리는 없다. 노동자 건강관리가 사업주의 책임이지만 여력이 없으니까 국가 재정으로 도와준다. 우리가 가서 뭘 한다고 하면 사업주들이 필요 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이 누리는 것처럼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도 건강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홍보해야 한다. 건강관리 사업을 왜 하는지 사업주들에게 설명하는 일도 힘들지만 이들에게 사업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는 것은 더 힘들다. 우리가 갔을 때 외판원 취급하는 게 제일 힘들다.”

근로자건강센터는 분명 잘 만들어졌다. 그러나 일단 센터가 만들어지면 그 뒤는 운영권을 위탁받은 대학병원이나 센터의 직원들에게 온전히 내맡겨져 있는 느낌이다. 노동자의 건강권, 산업안전의 중요성이 커지는 와중에도 과거 기업 규제 완화의 영향으로 안전 관련 규정이 느슨해지기도 했다. 이동욱 센터장은 “국가가 큰 틀에서 방향을 제시해 주고 사업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준다면 센터 운영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 아는 내용’ 지키도록 이끄는 게 역할

마지막으로 그에게 직업병이나 직무스트레스를 예방하기 위한 팁을 물었다. 이동욱 센터장은 “사무직의 경우 일반적인 건강관리와 많이 겹친다”고 말했다. 그는 연령에 상관없이 건강관리를 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 센터장은 “부정맥이나 심근경색은 타고 나기도 하지만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같은 병들은 근본 없이 생기지 않는다”며 “젊었을 때 관리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괜히 뜨끔한 대목이다.

“20대나 30대는 젊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하지만 몸 안에 병이 싹트고 있다. 중장년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건강을 챙겨야 하는 시점인데, 아직은 회사에서 건강관리를 해주기 어렵기 때문에 관리를 해야 한다. 젊은 분들은 비만이나 흡연 문제에 집중하지 않으면 굶어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중장년층도 건강보조식품을 먹으면 예전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몸은 평생 아껴서 써야 할 소모품이다.”

젊었을 때부터 건강관리가 중요하다는 것, 이는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다. 다만 실천하지 않을 뿐이다. 이동욱 센터장은 “공유정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선생님은 ‘보건관리나 산업안전관리는 초등학교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면서 “초등학교는 당연한 사실들을 얘기하지만 초등학교가 없는 세상을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초등학교처럼 항상 이끌어주는 시스템이 필요하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하나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