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언어로, 삶 속으로 들어간 노조
일상 언어로, 삶 속으로 들어간 노조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4.06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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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공공운수노조’ 제작기
노조·예술인·유명인 삼각 협업의 결과물
[리포트] 노조가 사회와 소통하는 법

지난 2월말 열린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이하 공공운수노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김정근 감독이 공로상을 받았다. 참신한 형식으로 노조 홍보 영상 ‘그러니까 공공운수노조’를 제작해 노동계에서는 물론 대중들에게도 회자되도록 한 것에 노조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영상에는 변영주 영화감독을 시작으로 권해효 배우, 김보통 만화가, 이정미 정의당 원내대표, 허지웅 작가, 박철민 배우 등 내로라하는 유명인들이 등장한다. 시리즈물인 영상은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직접 출연한 ‘노동자편’으로 마무리 된다. 7편에 이르는 영상을 관통하는 한마디는 “당신에게 힘이 되는 생각보다 강한 힘, 공공운수노조가 있습니다. 당신 편을 만드세요”다.

지금 노조는 변하고 있다. 노조 특유의 언어대신 일상의 언어를 택한다. 노조 선전물이라는 기존 형식의 틀도 깼다. 어렵다는 유명인의 섭외도 불사했다. 그간 한국사회에서 투쟁과 파업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조직으로 매도돼온 노조의 이미지를 타파하고, 대중 속으로 스며들기 위한 고군분투다.

노조 역할 제대로 알리기 위한 ‘모험’

공공운수노조가 ‘그러니까 공공운수노조’를 기획하고 제작해 온라인상에 업로드 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10월이다. 영상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공공운수노조를 제대로 알리고 싶어서였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노조는 각종 부정적인 편견과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공공운수의 모험은 노조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바꿔내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다.

조기 대선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이 주요했다.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된 비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노조에 대한 관심이 함께 높아졌다. 2017년은 모든 노조에게 의미가 남다른 해였다. 특히 공공부문 노동자 19만 명이 조직돼 있는 공공운수노조 입장에서는 새로운 문이 열린 셈이었다.

노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높아졌지만 노조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먹고 살기 바빠 노조가 뭔지 알 겨를도 없는 사람들에게 교섭이니 파업이니 하는 노조의 일상적인 용어 자체가 낯설다. 공공운수노조는 안에서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 노조를 알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공공운수노조’의 초안을 잡고 기획한 박영흠 공공운수노조 교선국장은 “사람들이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고, 어떤 노조가 손을 잡아줄 수 있을지 고민할 때 공공운수노조가 여기 있다고 이야기 할 만 한 것을 만들어야 했다”며 “노조의 예산은 많지 않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영상 콘텐츠 하나를 잘 만들어 재배포하면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간 노조 홍보물이라고 하면 노조 가입을 독려하고 노조 활동을 알리는 문구를 적은 유입물이 여전히 주다. 아주 제한적인 형식에서 선전물이 제작되고 있는 실정이다. 노조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노조가 SNS를 활용한 홍보와 소통방식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교육과 선전을 강조하면서도 노조의 제한된 자원은 정책과 조직에 집중되곤 했다.

19만 조합원이 있는 공공운수노조의 경우만 보더라도 선전담당과 교육담당자를 합쳐도 불과 4명이다. 물론 산하조직마다 각각의 교육 선전 담당자가 있지만, 때론 이들을 지원해야하는 중앙의 교섭인력이 충분하다고 볼 순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운수노조의 ‘그러니까 공공운수노조’ 제작 시도는 모험적이라고 할 만하다. 기존에 집행하던 홍보 예산의 50배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됐다. 이와 관련해 박영흠 교선국장은 너무 많은 예산이 할당된다고 우려하는 내부와, 좋은 퀄리티의 영상을 제작하기 위한 금액치고는 너무 낮다는 외부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첫 과정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유명인이 일상 언어로 말한 노조

박 교선국장은 “노동조합과 독립영화 예술인, 진보적인 의식을 가진 셀러브리티(Celebrity, 이하 유명인) 3자의 협업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며 “의식 있는 유명인들은 노동에 대한 의견을 사회적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었고, 예술인은 노조의 자원을 이용해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을 한 측면이 있다. 노조가 자원을 내 조직의 이미지를 개선하고자하면서 3주체의 뜻이 합쳐져 가능한 프로젝트였다”고 설명했다.

공공운수노조의 영상 제작을 맡을 적임자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공공운수노조 계획을 전해들은 김정근 감독이 선뜻 나섰다. 김 감독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2012년 <버스를 타라>를 첫 작품으로, 2014년 <그림자들의 섬> 등 노동운동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해온 젊은 감독이다.

공로상을 받는 자리에서 김 감독은 ‘알바를 주선해 준 공공운수노조에 감사하다’는 익살스러운 소감을 밝혔지만, 박 교선국장은 “감독을 잘 만나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노동조합을 충분히 이해하는 감독이 있었기에 노조가 원하는 부분을 잘 짚어냄과 동시에 신선한 영상 레이아웃으로 대중들의 관심도 끌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박 교선국장이 예산을 확보하고 노조 구성원들을 설득해 내는 과정 못지않게 김 감독의 유명인 섭외도 녹록치 않았다. 김 감독은 “일상의 언어로 노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유명인을 섭외하는 것이 중요했다”며 “다만 한국사회에서 노조가 왜 필요한지 동의하는 사람이라는 큰 원칙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출연을 부탁한 사람들은 자신이 활동하는 영역에서 나름의 역사가 있고, 자기 작업을 충실히 한 사람들이다. 마냥 유명함만 고려하진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섭외된 이들이 ▲변영주 영화감독 ▲권해효 배우 ▲김보통 만화가 ▲이정미 정의당 원내대표 ▲허지웅 작가 ▲박철민 배우였다. 이 중에는 공공운수노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실제로 1편에 등장한 영화 <화차>를 만든 변영주 감독은 공공운수노조에 대해 “운전을 잘하시는 분들이 많겠구나, 철도도 운전을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답한다.

이 같은 부분에 대해 공공운수노조 내부에서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노조 이름 때문에 변 감독처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노조를 알리는 영상 1편에서부터 오히려 편견을 강화한다는 우려였다. 공공운수노조에는 학교비정규직에서부터 공공기관 정규직에 이르기까지 공공·운수·사회서비스 다양한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반면 김 감독은 “공공운수노조에 대해 몰라도 상관이 없었다”며 “오히려 노조에 대해 모르는 부분들을 영상을 통해 충분히 이야기하고, 연작 속에서 다른 사람이 보완해 나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감독의 말대로 2편에 등장한 권해효 배우는 “공공우수노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영버스 노조인양 오해하지만, 공공이라고 하면 의료, 학교 연금, 지하철(처럼) 우리 생활 속에 공공성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의 노조”라고 바로 잡는다.

기획자, 감독이 꼽은 최고의 편은?

총 7편으로 구성된 ‘그러니까 공공운수노조’는 각 편마다 뚜렷한 색깔이 있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자신만의 삶과 직업 속에서 노동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이다. 노조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교섭, 투쟁, 파업 같은 단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통적으로 강조된 건 ‘사람’이었다.

변영주 감독은 “해고는 영화감독의 적”이라며 “영화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금요일 저녁에 여유 있게 영화를 한편 보고 맥주도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권해효 배우는 ‘사회적 약자’ 대해 이야기 하며 “아이들과 여성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편안한 나라 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 공공부문 산별노조로서 공공성 강화를 요구하며 공공운수노조가 내는 목소리의 중요성을 짚는다.

박영흠 교선국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편으로 김보통 만화가와 허지웅 작가가 나온 편을 꼽았다. 노조활동을 하면서 스스로도 느끼지 못했던 모습을 두 유명인이 잘 짚어냈다는 것이다. 김보통 만화가는 함께 일하는 많은 이들이 노조를 만든다면 사용자 입장에서도 편할 것이라고 말해 기존의 편견을 뒤집는다.

허지웅 작가 편에 대해선 “노조가 선한 의도를 가지고, 선한 결과를 만들기 위한 조직이 아니라고 얘기 한 대목은 노조에 있는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조언”이라며 “노조 활동가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노조를 선한 조직이라고 전제하는데,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노조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나와는 무관한 조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노조 특히 공공운수노조는 노동자를 위한 조직이자 시민들을 위한 조직이다. 허 작가는 노조가 무조건 선인 조직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조직임을 분명하게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철도노조가 불필요한 요금인상을 저지하고 발전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에너지 사유화를 막는 활동을 예로 들었다.

김정근 감독은 공공운수노동자들이 등장한 마지막 7편을 최고였다고 꼽았다. 유명인들과 달리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낯설지만 사람들에게 노조를 알리기 위해 출연을 결심한 노동자 ▲정인영 학교 사서 ▲박경득 임상병리사 ▲이의용 지하철 전기관리원에 대한 ‘고마움’이 컸다. 심지어 영상 제작 당시 학교와 병원에서 일하는 두 노동자는 파업 중이었다. 조합원들의 모습은 어색함이 묻어났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명료했다. 각자 사업장에서 노조활동을 하면서 느낀 변화는 한마디로 ‘부당함을 바로 잡고 차별을 줄이고, 공공성을 확보해나가는 과정’이었다.

감독은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며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유명인들을 통해 공공운수노조를 이야기 했지만, 마지막 편에서 조합원들을 유명한 사람들을 잡았던 구도와 동일하게 접근해 똑같은 무게로 담아내고자 했다”고 강조한다. 이를 통해 노조가 사람들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전달하려 한 것이다.

노조 신뢰 있는 스피커 될까

‘그러니까 공공운수노조’ 영상은 기존의 노조 홍보물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실제로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순 없다. 공공운수노조 조직은 계속 확대되는 추세지만 노조의 조직사업과 정부정책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공공운수노조가 새로운 홍보물 제작에 나선 이후 민주노총에서도 시트콤 형식으로 대중 속으로 다가기기 위한 영상을 제작해 호평을 받았다. 이 노조들 외에도 많은 노조들이 고민하고 시도해보지 않은 모험에 나서고 있다. 노조의 사회적 역할을 친근하게 알리고, 노조의 긍정적인 효과를 사회 전반으로 퍼뜨리기 위해서다.

박영흠 교선국장은 노조에 대해 “노동자들을 위한 조직이다. 지금 한국사회가 더 나은 사회로 바뀌어 가는데 어쩌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조직일지도 모른다”며 “세상은 촛불을 들고 나선 국민들이 바꿨지만, 그 출발점은 조직된 노동자들이 들었던 소수의 촛불”이었다고 말한다. 이후 홍보물 제작 계획에 대해선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KBS 9시 뉴스가 어떻게 전했는지, 손석희 앵커나 김어준 씨는 뭐라고 언급했는지 궁금해 하듯 노조의 입장을 궁금해할까. 아직 아닌 것 같다”며 “앞서 시도한 방식과 다르게 노조라는 스피커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쌓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