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깎은 것만 보면 내 가슴이 터지려고 해요”
“머리 깎은 것만 보면 내 가슴이 터지려고 해요”
  • 윤찬웅 기자
  • 승인 2018.04.06 11:32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국대 청소노동자 농성 52일의 흔적
[리포트] 서울일반노조 동국대시설관리분회 청소노동자 투쟁

동국대 청소노동자 사태가 24시간 농성 시작 52일 만에 처음으로 희망적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줄곧 완강한 태도를 보였던 학교 측이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총장 면담 이후 처음으로 직접고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의원들의 등장으로 급전환된 국면에 서울일반노조 동국대시설관리분회 조합원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총장과 만나 악수도 했다. 총장에게 사과의 인사도 받았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환희도 잠시였다.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학교 측과 노조 측의 쟁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학교 측은 올 상반기 내로 직접고용을 긍정 검토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과 동시에 올해까지는 용역업체와의 계약해지가 어렵다는 입장을 냈기 때문. 긴 싸움에 끝이 보이는가 했지만 노사 간 신뢰 회복은 쉽지 않았다. 노조 측은 연대 세브란스 병원, 고대 안암 병원 등에서 노조 탄압 행위 의혹이 있는 해당 업체와는 절대 일을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정치권 개입에 학교도 움직였지만 쟁점은 남아

강경한 노조 측 태도에는 이유가 있다. 문제가 된 업체의 전력이 너무나 화려(?)하기 때문. 조합원들은 말한다.

“노조를 깨려고 들어온 업체를 어떻게 받아요. 심지어 가장 중요한 교섭권도 안 준다는데. 무엇 때문에 우리가 안 된다고 하는지 다 알면서 이런 수렁에 우리를 넣으려고 하는 이유는 결국 노조 파괴라고 보는 거에요.”

노조는 노노 갈등 유도, 노조 탄압 의혹이 있는 용역업체에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사업장을 가진 해당 업체가 동국대 사업장에서 교섭 단위 분리를 허용하지 않아 문제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학교 측은 지노위의 근로감독을 통해 부당노동행위가 절대 없도록 할 것이란 입장이지만 무너질 대로 무너진 신뢰 회복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김다임 서울일반노조 부위원장은 말한다.

“우리는 이제껏 이렇게 싸워서 겨우 살았어. 여기서 8년 동안을 매해 싸워야 했어요. 그런데 올해가 제일 오래 갔어요. 15년도에는 사람이 21명이 정년퇴직으로 나갔는데, 이걸 다 자르고 신규채용을 안 했어. 그걸 우리가 봐줬어. 근데 16년도에는 4명이 (정년퇴직으로) 나갔어. 근데 그걸 또 아르바이트 쓰고 안 뽑는다 이거야. 밀고 당기고 해서 결국 지노위에 가서 우리가 임금 동결을 할 테니까 사람을 더 뽑아달라고 하고는 결국 뽑았어요. 그런데 올해는 최저임금이 오르니까 또 퇴직자 자리를 못 채우겠다 이거예요. 처음엔 8명마저 채우라고 했던 싸움이 바뀐 거예요. 매년 이러는데, 결국 학교가 직접고용을 하지 않으면 매년 이럴 수밖에 없어요.”

집단 삭발식 이후 심적 고통 호소하는 조합원 늘어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에는 조합원 18명의 집단삭발식이 있었다. 학교 측의 완강한 태도에 협상 진척이 어려워지자 노조가 결단을 내린 것. 학교 내외의 다양한 연대 주체들이 참석했다. 삭발식 직전까지도 노조는 학교 측과 합의를 시도했다고 한다. 결국 합의 없이 삭발은 진행됐고 동국대 본관 앞은 눈물바다가 됐다. 한 조합원은 “우리 나이로 일흔이 넘어서 보통 맘으로 머리 자르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날의 아픔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삭발에 참여한 조합원보다 옆에서 지켜본 조합원이 더 큰 문제다. 인터뷰 시도에도 무거운 마음에 입을 다무는 조합원이 많았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어느 고령의 조합원이 어렵사리 입을 뗐다.

“학교에서 막 몰려와서 길을 막고 우리를 감금하고 위협하고, 직원들만 보면 공포심이 생겨서 정말 사람이 무섭고 싫어요. 오늘은 또 소식이 없나 기대하고 내일은 눈뜨면 어떨지 마음이 불안하고.”

그간 노동자들과 학교 측은 농성 기간 내내 쓰레기 처리를 두고 간헐적으로 물리적 충돌을 빚어왔다. 노조 측은 대부분의 노동자가 60~70대의 고령 여성인 터라 육체적, 정신적 피해가 크다는 점을 호소해왔다. 지난 3월 초에는 직원과의 충돌로 크게 다친 3명의 노동자가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연신 “진짜 싫다”는 말을 반복하는 조합원도 있었다. 그간의 속상한 마음을 표현하기조차 어려워 보였다. 한 조합원은 “같이 삭발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롭고 마음이 무겁다”며 “머리를 볼 때마다 뛰쳐나가고만 싶고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삭발식 이후 조합원들은 끊임없이 죄 아닌 죄에 자책감을 느껴야 했다.

한 조합원은 삭발식 이후 조합원들의 심적 고통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다들 말수가 줄고 웃음도 잃었다고 했다. 농성에 연대하고 있는 서울일반노조 소속 간부가 말했다.

“조합원 중 한 분이 가슴이 두근거리고 갑자기 딸꾹질이 나오고 울렁거린다고 할 때마다 내가 속이 터져요. 잠이 안 온다고 하시고 두근거린다고 하시고 정말 막 딸꾹질을 하면서 돌아다니시고 그럴 때마다 내가 죽을 것 같아요. 진료 봉사 하시는 한의사 선생님은 화병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연대하는 기쁨을 배우는 사람들

그럼에도 조합원들은 희망을 본다. 52일의 긴 투쟁이 정치권을 움직였고, 정치권이 움직이니 학교가 움직였다. 비정규 노동자의 낮은 교섭력이 결국 투쟁으로 보완됐다. 학교 측이 완강하게 나올수록 조합원들은 더 힘을 모아야 했다. 교직원과의 충돌로 허벅지 등을 밟혀 열흘간 병원에 입원했던 한 조합원이 말했다.

“정말 뭉치는 힘이랄까. 단결의 힘 같은 걸 배웠어요. 끈끈함이 대단해요. 정도 생기고 이제는 서로 다툴 것도 없고 더 협조해야지 싶고 한 명 한 명 다 소중하고. 오히려 이런 힘든 투쟁을 통해서 얻는 것도 있구나 싶어요. 이 나이에 인간으로서 가치 같은 걸 알게 되었다고 할까요.”

그는 덧붙였다.

“올해 정년퇴직하시는 분들, 그분들은 연세도 있고 이제 몇 개월 안 남았으니 그냥 다른 데 가서 일하고 만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에요. 그런데 그분들이 매일같이 식사를 해주세요. 왜 그러냐고 하니까 그래도 우리가 해본 일도 있고 앞으로 후배들이 해야 하니까 더 솔선수범하고 싶다고 그러세요.”

정년퇴직을 앞둔 조합원들은 고령으로 식사 준비와 같은 노조 내 살림을 맡았다. 조합원 47명과 연대하는 본조 인원, 학생들, 단체들의 인원을 먹이는 데에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쓴다. 힘든 일을 묵묵히 해낸다는 조합원들에 그 심경을 물었다. 당장 문제가 해결되어 다시 일을 시작한다고 해도 이제 동국대에서 몇 개월을 채 있지 못하는 조합원들이다.

“우리가 나간다고 해도 같은 식구니까. 있는 날까진 같이 가야 하지 않겠어요? 갈 때 가더라도 한배를 탔으니 도와서 같이 끝내야지.”

연대하는 학생들의 도움도 빠질 수 없다. 한 조합원은 “학생들이 매일 순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와서 남학생 몇 명, 여학생 몇 명이 당번처럼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며 “매일 자고 가는데 이제는 완전히 식구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김다임 부위원장은 "동문들도 많이 도와주고 학생들도 많이 도와주고 있다”며 동고동락하는 학생들의 연대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학내 분위기는 노조 쪽에 긍정적인 상태다. 노조는 서명 운동을 통해서 며칠 만에 동국대 재학생 1만 3천 명 중 9천 명의 자필 서명을 받기도 했다.

긴 농성에 지친 조합원들이 진심으로 웃을 수 있을 때는 언제일까. 다시 한 조합원이 말했다.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해요. 우리는 가다가 쓰레기 하나라도 보면 주워서 주머니에 넣어요. 아무리 깨끗한 옷을 입고 있어도 그래요. 그런데 지저분해서 먼지 굴러다니고 종이, 쓰레기 천지인데 그걸 바라보고 지나가는 우리 마음이 어떻겠어요. 쌓인 쓰레기를 보면서 지나갈 때 심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세요? 쓰레기 치우는 게 우리 직업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