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불리길 거부한다
꽃으로 불리길 거부한다
  • 노효진 기자
  • 승인 2018.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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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칼럼

 “효진씨가 젊고 매력적이라서 그래요.”

유부남의 추파를 토로하자 마흔이 갓 넘은 그녀가 나에게 해 준 말이었다. 그녀의 체념어린 말은 나를 한 번 더 무너지게 했다. 그녀 또한 질리도록 겪어온 일이며 이제 너도 익숙해질 때가 되지 않았느냐, 사회란 그런 것이라는 말이 뒤를 이었기 때문이었다.

20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다던가. “엉덩이가 마음에 들어요. 내가 유부남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사귀든 아니든 결판이 나지 않았겠어요?” 젊은 직원끼리 친하게 지내자는 의도로 받아들여 말을 몇 번 섞었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그가 내뱉는 말의 수위는 낮아질 줄을 몰랐고 참다 못 한 나는 한 번만 더 이런 언사를 행하시면 정말로 공론화시키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그는 본인이 그 전에 있던 회사에서는 이런 식의 말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왜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냐 말하던 그는 나에게 꽉 막힌 사람이라는 말을 남기며 난색을 표했다. 그에게 당신의 언어는 성희롱이며, 당신이 속했던 그 집단이 잘 못 된 것이었노라 말해주었지만 쉬이 납득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젊은, 그리고 매력 있는 것으로 사료(思料)되는 여성은 말 그대로 사료(飼料), 먹잇감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나이, 지위 고하, 성별.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상대를 추행하거나 희롱할 권리가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쁘다”는 말은 더 이상 칭찬이 아니며, ‘꽃’ 같다는 말은 더 이상 찬사가 아니다.

미투(#Me, Too)운동이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사회 저변에 깔린 일상화된 희롱과 대상화에 반하는 움직임이 활발해 지고 있다. 누군가는 진보진영을 분열시키기 위한 모종의 ‘공작’이라는 말을 하며 미투(#Me, Too)운동을 통한 연대 움직임에 의문을 표한다. 누군가는 성별 이분법적 사고로 미투(#Me, Too)운동을 여성과 남성의 대결구도로 보기도 한다. 최소한 폭력에, 성차별과 억압의 문제에 진영의 논리는 없어야 한다. 사회 전반에 공기처럼 퍼져 있는 대상화와 차별의 막을 걷을 때가 왔다. 우리 모두가 존중을 기반으로 평등해질 때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꽃으로 대상화되길 거부한다. 우리는 존엄한 인격체이고 연대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용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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