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가진 원초적인 힘, 춤의 세계를 말하다
몸이 가진 원초적인 힘, 춤의 세계를 말하다
  • 노효진 기자
  • 승인 2018.04.06 11:4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은미컴퍼니의 안무가, 안은미
[인터뷰] 안은미 안무가

파격, 혹은 도발. 안무가 ‘안은미’라는 이름 앞에는 항상 파격과 도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현대 무용의 거장으로 알려진 독일 안무가 ‘피나 바우쉬’와 비견돼 ‘동양의 피나 바우쉬’라고 불리지만 안은미는 ‘안은미’, 그 자체로 고유하고 특별하다.

현대 무용을 전공한 안은미는 1988년 자신의 이름을 붙인 ‘안은미 컴퍼니’라는 무용 단체를 창단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서양 무용의 기술과 기법을 따라하느라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던 한국 현대무용계에 격식과 형식을 거부하는 재기발랄한 파격을 몰고 왔다. 기존 무용이 가지고 있던 정형화된 틀과 권위를 버리자 더 큰 세계가 안은미에게 찾아왔다. 그녀는 인간 보편의 감정을 특수한 움직임과 형태로 표출하며, ‘무용은 이래야 한다’는 선입견을 깨뜨린다. 전공자들의 전유물이라 여기던 무용을 한 계단 끄집어내려 무용을 모르는 이들에게 더 큰 호소력을 전달하며 관객들에게 고착되지 않은 자유를 선물한다.

본능적이고 솔직한 몸의 언어로 인간과 사회의 심오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안무가 안은미. 그녀가 이번에는 주한영국문화원의 2017-18 한영 상호교류의 해 폐막 행사의 일환인 ‘페스티벌 아름다움: 아름다운 다름’을 통해 영국 무용단 칸두코 댄스 컴퍼니와 협업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성된 세계적인 무용단 칸두코 댄스 컴퍼니를 이끄는 공동 책임자 벤 라이트(Ben Wright)와 신작 ‘굿모닝 에브리바디’를 통해 아름다운 다름과 공생을 이야기하는 안은미를 만났다.

▲ 안은미 안무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무용은 멋있거나 선이 곱거나 예쁜 것이다. 하지만 안은미는 정형화된 무용의 틀을 깨는 작업을 한다. 안은미가 춤을 통해 사회에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춤이란 아름다운 것, 멋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개 우리가 봐 왔던 ‘춤’은 인간 몸의 가장 아름다운 형태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좇아가는 건 위험하다. 현대무용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며 그것들을 발전 시켜 합의를 보는 과정과 같다. 정치적인 합의와도 비슷하다. 사회적인 토론의 장을 춤이라는 침묵의 언어로 풀어내고, 그 속에서 합의점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게 논리의 언어인 말보다 더 강할 때가 있다. 말은 논리의 지점에서 벗어나면 토론이 안 되지만, 춤은 움직임 안에서 여러 에너지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몸의 언어가 추상적이고 단순하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창조, 새로운 아이디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원초적인 힘이 있다. 춤은 모든 사람들 안에 있는 자기만의 국가로, 영원한 자유가 있는 곳이다. 사회에서 만든 어떤 규범화된 규칙을 벗어나 나만의 온전한 ‘무엇’이 되고 싶은 욕망, 그게 춤이다.

춤은 기본적으로 오랜 역사 속에서 인간이 어떤 공포나 외로움 같은 것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사용됐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사람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죽어서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에 노래와 춤이라는 의식으로 스스로를 미리 치하하고 용기를 불어넣었던 거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소리 내 우는 것 같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감정의 상태나 몸이 가지고 있는 모든 행동을 춤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춤을 만들 때 멋져 보이는 것에 신경 쓰기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가져와 우리 몸을 빌려 대신 이야기 해 주는 것에 집중한다.

청소년, 할머니, 중년 남성을 무대에 올린 ‘땐스 3부작’이나 군피해자 어머니를 무대에 올린 ‘쓰리쓰리랑’, 장애인들을 무대에 세운 ‘안심/대심땐스’, 그리고 이번 공연 ‘굿모닝 에브리바디’까지. 질감은 다르지만 결국 주류에서 벗어난, 소외됐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무대에 세운다.

춤이 제일 필요한 사람들이다. 실제 군 피해자 어머니가 등장한 작품 ‘쓰리쓰리랑’의 경우, 아무도 그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분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춤’과 같은 형태의 매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직접적이지 않으면서도 대중에게 어머니들이 겪은 일을 이해시키는 가장 온화한 방법이자 합리적인 방법,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게 무대의 힘이다. 싸우거나 언성을 높이거나, 선언문이나 기자회견문을 읽는 것도 방법이지만, 무대를 보는 그 순간 우리 모두가 함께 느끼고 공유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공연의 힘이자, 춤의 힘, 빛의 힘이라고 본다.

 

▲ 안은미 안무가

무용공연을 작업할 때 일반인과도 작업을 해봤고, 전문 무용수들과도 작업을 해 봤다. 전문 무용수들과는 다르게 일반인과 함께하는 작업은 접근 방법에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상대를 만나고 알아가는 것, 다름을 찾아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 다르기 때문에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 찾아야 한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도 처음 배우고 느끼는 것들이 많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세운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라는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할머니들의 춤을 태어나서 그렇게 많이 본 적이 없다. 사실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할머니들의 정형화 되어있지 않은 움직임, 춤 속에는 살아오면서 축적된 특유의 정서와 분위기가 있어 놀라웠다. 춤이 필요한 사람들이 주변에 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성장 장애 친구들과도 작업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맹인 친구들과도 작업했다. 일 년에 하나씩 해 나가는 중이다. 먼저 사람들을 만나서 관찰하고 대화를 나눈다. 그러고 나서 그분들이 말하고 싶어 하는 주제를 파악하고, 필요한 걸 찾아내고, 전문 무용수들과 만나서 합의점을 찾는 식으로 접근한다.

춤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춤’이라는 장르를 볼 때 너무 답답하다. 한국에서 남자가 춤을 추면 ‘기생오라비’라던가 ‘춤바람이 났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춤이 좋은 이미지로 있었던 적이 별로 없다. 음란하고 어두운, 음지의 이미지가 강하다. 안무가로서 내가 햇빛이 있는 양지로 데려오는 중이다. 우리는 춤 계의 비타민 D, 슈퍼 비타민이다. 춤이 필요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

특히 이번 작품 ‘굿모닝 에브리바디’에서 장애-비장애 무용수들로 구성된 전문 무용단인 ‘칸투코 댄스 컴퍼니’와 협업했다. 장애 무용수들의 휠체어와 목발이 신체의 일부이자 안무의 일부가 되어 조화롭게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국문화원에서 이전 작품들을 보고 칸두코 댄스 컴퍼니와의 협업을 제안해 왔다. 시각장애인 무용수들과 공연할 때는 보이지 않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고, 저성장 친구들과 공연할 때는 작은 키에만 집중하면 됐다. 칸두코 댄스 컴퍼니 무용수들의 경우 각자가 가진 장애가 달랐기 때문에 신경써야할 지점들이 훨씬 많았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과 동시에 각자의 정서적인 면이 달라 이전의 작업보다 어려웠지만 무용수들의 개성과 역량이 뛰어나 같이 작업하는 동안 색다른 움직임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

칸두코 댄스 컴퍼니의 무용수들은 전문적인 무용 훈련을 받은 직업 무용수들로 결코 자신의 다름을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칸투코 측에서는 장애-비장애 무용수들이 함께 공연함으로써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부각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장애에 대한 공론화를 통해 이 친구들이 살기 좋은 사회, 선입견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칸투코 댄스 컴퍼니는 공연 뿐 아니라 사회 통합 교육, 장애인 트레이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속적인 리서치를 하는 중이다. 사회는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 많이 함께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칸투코 컴퍼니를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과 함께하는 무용단체들이 주목 받아 많은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굿모닝 에브리바디’를 통해 관객들이 느꼈으면 하는 안무가로서의 바람이 있을 것 같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마주하는 세상에 대해 조금 더 넓은 눈으로 이해하고 바라봤으면 좋겠다. 살다보면 잊는 것들이지만 조금이라도 그들의 불편함이 가벼워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숙제이자 질문인 것 같다. 사실 장애를 가진 친구들의 불편함을 조금만 이해하면 금방 도와줄 수 있다. 그들을 분리시켜 생각하지 말고 함께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다름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