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은 단물만 빼먹고 철수하는 데 익숙하다
GM은 단물만 빼먹고 철수하는 데 익숙하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8.04.0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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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철수 사례를 통해 살펴본 한국지엠의 미래
GM에 끌려 다니면 기다리는 건 더 깊은 나락
[기획] 위기의 한국지엠 4 해외 철수 사례

지난 2월 13일 GM 본사가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한 이후 가장 많이 거론된 단어 중 하나가 ‘철수’이다. 그동안 GM이 한국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나왔다. GM은 그 산하에 다수의 브랜드를 포괄하고 있고 전 세계 곳곳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철수 사례도 많다. 지난 100년간 GM이 세계 곳곳에서 폐쇄한 공장이 90여 개에 이른다. 그 중 몇 가지 사례를 통해 현재 한국지엠에 닥친 위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전망해 보고자 한다. 꼭 같지는 않겠지만, 사례들에서 드러나는 GM의 행보를 통해 향후 한국에서 GM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예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사브 사례, 생존이든 매각이든 지적재산권 확보가 관건

사브(Saab)는 1945년에 설립된 스웨덴의 자동차회사로 고급 자동차로 명성이 높았다. GM은 1989년 사브의 지분 50%를 인수했고, 2000년에 나머지 지분을 인수해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2009년 파산한 GM은 구조조정 차원에서 사브자동차의 매각을 결정했다. 중국의 베이징자동차(BAIC)가 지적재산권과 생산설비를 인수하려 했지만 GM의 거부로 무산됐고, 2010년 네덜란드 스포츠카 회사인 스파이커(Spyker)가 생산설비를 인수했다. 하지만 자동차 판매가 원활하지 않아 2011년에 다시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2011년에도 중국 기업들이 인수를 시도했지만 GM은 중국 기업이 인수할 경우 사브 브랜드와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사브자동차는 2012년에 NEVS(National Electric Vehicle Sweden)에 매각됐다. NEVS에는 중국 기업들이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었고, GM은 신형 모델 사용을 막았다. NEVS는 2013년 스웨덴 트롤헤탄 공장을 재가동했지만 2015년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사브자동차는 다시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NEVS는 2016년 스웨덴 공장을 포기하고 중국에 전기차 공장을 짓기 시작하면서 사브의 구형 플랫폼에 대한 권리만 유지한 채 사브라는 브랜드 사용권을 포기했다. 이로써 사브자동차는 2017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사브자동차의 사례에서 주목할 점은 GM이 중국 기업으로 지적재산권이 넘어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는 점이다. GM은 중국 상하이차(SAIC, 2009년 쌍용차사태를 유발한 중국 기업)와 JV(Joint Venture, 중국은 자국에 진출하는 자동차 메이커가 자국 기업과의 합작형태로만 진출하도록 규제하고 있다)를 설립해 자동차를 생산·판매하고 있고, 중국시장에서 점유율 1~2위를 다투고 있다. GM의 하위브랜드나 자동차가 다른 중국 기업에 의해 판매된다면 시장잠식이 우려되는 것이다. 여기에 기술유출도 중국 기업의 인수를 꺼리는 이유다. 이 때문에 GM은 사브자동차를 중국 기업이 인수할 경우 사브 브랜드와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스파이커가 생산한 자동차를 판매할 만한 영업망을 갖추지 못해 애를 먹었다면, NEVS는 사브의 신형 모델(브랜드 및 플랫폼 포함)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확보하지 못해 사브자동차를 정상화하는 데 실패했다. 이는 한국지엠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한국지엠은 경쟁사에 비해 밀리기는 하지만 국내 영업망은 갖추고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독자적인 영업망이 아니라 GM과 그 브랜드(오펠, 쉐보레 등)로 영업을 해왔다. 따라서 GM과 결별하면 당장 수출 길이 막힐 수 있다. 한국지엠이 내수시장보다 수출에 주력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지엠은 어떻게든 GM을 통한 수출영업망을 유지해야 한다.

다른 한편, 현재 한국지엠은 개발하거나 생산하고 있는 어떤 차종에 대해서도 지적재산권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고, 상표권 역시 모두 GM이 가지고 있다. GM이 한국지엠을 매각하게 된다면 중국 기업이나 신흥국 기업들 외에 인수자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GM은 기술유출 방지와 중국시장 점유율 유지를 위해 GM이 보유한 브랜드의 사용을 막을 것이다. 이는 한국지엠을 매각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 등 한국 기업들이 인수하려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상표권뿐만 아니라 플랫폼, 부품, 판매시장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 한국지엠은 그다지 매력적인 매물이 될 수 없는 조건이다.

오펠 사례, 각국 정부 지원했지만 결국 철수

오펠(OPEL)은 1862년 독일에서 설립된 이후 1929년 GM에 인수됐다. 독일, 영국, 스페인, 폴란드, 세르비아, 헝가리에 10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복스홀(Vauxhaul), 미국에서는 뷰익(Buick)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크루즈, 올란도, 말리부는 물론, 볼트(전기차)나 에퀴녹스(중형 SUV), 임팔라 등이 모두 오펠에서 개발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할 만큼 GM 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적자를 기록하던 오펠은 GM의 지원이 있어야만 파산을 면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2009년 GM이 파산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독일 정부는 오펠의 파산을 막기 위해 15억 유로(한화 약 2조 원)를 지원하기로 하면서, 대신 오펠을 GM으로부터 분리해 매각하려고 했다. 캐나다의 부품사인 마그나(Magna)와 러시아 펀드로 구성된 컨소시엄과 독일 정부 간의 매각협상은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돌연 GM이 오펠의 매각을 반대하고 나섰다. GM의 플랫폼 중 상당수가 오펠이 개발한 것인데 러시아 펀드가 포함돼 있어 기술유출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의 매각협상을 무산시킨 GM은 2010년 초에 110억 유로를 오펠에 투자하겠다고 하면서 오펠의 공장이 위치한 각국 정부에 모두 23억 유로 규모의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GM은 벨기에 안트베르펜 공장을 폐쇄하면서 각국 정부들이 지원하지 않으면 실제로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압박했다. 실업사태를 우려한 스페인과 영국 정부는 곧바로 GM이 요구한 자금지원 계획을 밝혔지만, 독일 정부는 지원을 거절했다.

2010년 독일 정부와의 협상을 종결한 GM은 오펠의 독자생존은 선언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2012년에는 독일 보쿰 공장을 폐쇄했고, 독일에 위치한 모든 공장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또 푸조시트로앵(PSA)과 전략적 제휴를 맺어 플랫폼 공유를 통한 부품 구매비 절감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이 같은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오펠의 흑자전환에 실패하자, GM은 2017년 PSA에 오펠을 매각하고 유럽시장에서 철수하기에 이른다.

오펠 구조조정 당시 벨기에 안트베르펜 공장을 폐쇄하며 각국 정부의 지원을 요청한 점은 한국지엠 군산공장을 폐쇄하면서 한국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과 유사하다. 투자 및 신차 투입계획과 연계해 정부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점도 유사하다. 하지만 스페인과 영국 정부 등 일부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오펠은 결국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고, 투자 및 신차 투입계획도 실행되지 않았다. 한국지엠 군산공장에서도 물량 감소로 1교대만 운영했던 2013년 이후 각종 투자계획이 발표됐지만 실제로 실행된 것은 없었다.

GM이 2009년에 각국 정부의 지원을 압박했을 때 스페인과 영국 정부가 GM의 요구대로 지원계획을 마련해 집행했지만, 그 후 몇 년 정도 더 공장이 유지됐을 뿐 적자상태를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매각을 피하지도 못했다. 현재 자금지원을 요구받고 있는 한국 정부는 자금지원의 결과가 결국 매각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캐나다 사례, 철수는 언제든지 꺼내드는 무기다

캐나다지엠(GM Canada)은 1918년에 설립된 해외공장으로, 현재 온타리오에 2개의 완성차 공장과 1개의 파워트레인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캐나다지엠은 GM과는 별도법인이지만 오랫동안 미국 공장의 하나처럼 운영돼 왔다. 오샤와에 위치한 조립공장이 미국 북부의 공장들과 연계해 최종 조립공정을 담당하는 식이다.

2008년에 GM은 캐나다지엠의 재무위기를 핑계로 캐나다 정부의 지원을 압박하면서 오샤와의 트럭 공장을 폐쇄했다. 캐나다 정부는 2009년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통해 108억 캐나다달러(한화 약 8조 원)를 캐나다지엠에 출자했다. 결과적으로 캐나다지엠은 재무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이는 2010년 이후 북미 지역의 경제 회복 때문이었다.

하지만 2016년 GM은 멕시코 공장과의 비용경쟁력 비교를 근거로 캐나다 정부와 노조를 다시 압박했다. 본보기로 오샤와 공장의 라인 일부를 폐쇄하고 2017년부터는 생산물량을 배정하지 않았다. GM은 철수를 무기로 노조로부터는 임금, 연금, 단체협약 양보를, 캐나다 정부로부터는 지원 약속을 이끌어냈다. 캐나다 정부와 노조가 GM의 철수 압박에 굴복한 결과다.

캐나다 정부와 노조의 양보와 지원을 이끌어냈음에도 GM은 2017년에 캐나다 카미공장에서 생산하던 에퀴녹스를 멕시코 공장으로 이전하려고 시도했다. 노조는 이에 반발해 20일에 걸친 전면파업을 단행하기도 했다. 결국 노사가 물량을 이전하지 않겠다고 합의한 뒤에야 일단락될 수 있었다. 현재는 북미시장에서 픽업트럭과 SUV 판매가 호조를 보이며 캐나다 공장에 추가 물량배정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캐나다 사례에서 주의해야 할 지점은 정부의 지원을 통해 흑자로 전환한 후에도 GM은 철수를 무기로 해당국가의 정부와 노조에 대한 압박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수익을 내더라도 언제든지 철수라는 무기를 활용해 정부와 노조를 압박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한국 정부의 지원을 통해 한국지엠의 재무위기를 해소한다고 하더라도, GM이 물량배정과 투자를 내세워 정부와 노조를 압박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2016년에 캐나다 정부와 노조를 압박하기 위해 GM이 비용경쟁력이라는 무기를 꺼내든 점도 살펴봐야 한다. 군산공장에서 생산하던 크루즈를 대체할 후속모델을 군산공장이 아닌 멕시코 공장에 배정하면서 GM은 한국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이유로 내세운 바 있다. 그리고 이 논리는 일부 언론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되풀이되고 있기도 하다.

브라질 사례? 실현가능성은 제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사례는 브라질 사례다. 한국지엠은 지난 3월 20일 기타비상무이사인 외국인 임원 5명을 전원 교체하면서, 그 중 2명을 남미법인 출신 임원으로 임명했다. 이번에 기타비상무이사로 임명된 2명의 남미법인 출신 임원들은 GM 해외사업부를 맡고 있는 배리 앵글 사장과 함께 브라질 사업 정상화 과정에서 손발을 맞췄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브라질식 구조조정이 진행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한국지엠은 GM의 글로벌 조직개편에 따라 임원이 변동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브라질식 구조조정을 추진할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확산되고 있다.

브라질 공장은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장으로 분류돼 생산물량이 2013년 68만 대에서 2015년 31만 대로 급감했다. GM이 물량을 구조조정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GM은 트럭공장을 폐쇄하고 700여 명의 노동자를 해고하기도 했다.

2015년 메리 배라 GM 회장은 당시 브라질 대통령이던 지우마 호세프를 만나 세금감면, 대출 등 정부의 지원을 약속 받았다. 이어 소형차와 다목적차량을 브라질에 배정하고 5년간 3조 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브라질 공장 노조는 회사가 감원 계획을 철회하는 대신 7% 임금 삭감을 수용하기도 했다. 이 같은 조치로 브라질 공장 생산량은 2017년에 47만 대를 넘어섰고, 고용인원도 늘었다.

언론에서는 브라질 공장의 구조조정에서처럼 한국 정부가 지원하고 노조가 고통분담을 수용하면 한국지엠에도 반전을 이루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담아 브라질식 구조조정 추진을 주문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의 희망처럼 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브라질 공장과 한국지엠이 처한 상황 자체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GM은 브라질에서 90년 넘게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도 브라질에서 시장점유율 1~2위를 다투고 있다. 브라질시장은 남미 자동차시장의 중심이기도 하다. 그런 브라질에서 GM이 물량을 배정하지 않은 것은 처음부터 철수가 목적이 아니라 브라질 정부를 압박해 지원을 이끌어내고, 노조를 무력화함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GM은 대우차를 인수하기 전에도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한국에서 사업을 운영하기는 했지만, 현재 내수시장에서 점유율은 채 10%도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GM의 수출용 중소형차 생산기지 역할을 담당했던 한국지엠은 GM의 전략 변화에 따라 더 이상 중소형차를 생산해 판매할 시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지엠이 GM의 전략 안에서 차지할 위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GM이 군산공장을 폐쇄한 것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실제 철수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GM은 철수를 무기로 정부의 지원과 노조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데 익숙하다. 한국에서는 실제 철수를 염두에 두고 매몰비용 최소화를 목적으로 정부와 노조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사를 통해 한국지엠에 대한 지원을 결정하겠다는 정부와 산업은행은 이 같은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눈앞의 실업사태를 우려해 GM에 끌려 다니면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만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