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은 구했지만 한국지엠은 나락으로
GM은 구했지만 한국지엠은 나락으로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8.04.0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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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차 인수부터 경영위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지엠 위기, 어느 날 갑자기 온 게 아니다
[기획] 위기의 한국지엠 2 한국지엠의 현재

2월 13일, GM은 경영난을 이유로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했다. 노동자들은 GM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원투수 역할을 했던 군산공장을 버리려 한다며 격하게 반발했다. 실제 2008년 금융위기와 2009년 파산 사태로 GM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군산공장을 비롯한 한국지엠은 위기를 돌파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000년 부도의 아픔을 딛고 GM에 인수된 뒤, 10년도 채 되지 않아 GM의 위기 극복을 이끌었던 한국지엠이 현재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살펴본다.

GM, 소형차 개발·생산 위해 대우차 인수

한국지엠의 전신이었던 대우자동차는 대우그룹의 주력 사업 중 하나였다. 한 때 ‘르망’의 인기에 힘입어 현대자동차에 이어 내수시장에서 2위의 점유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은 과도한 확장과 차입경영으로 인해 경영난에 직면하게 됐고, 결국 대우자동차를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1998년 11월 대우자동차에 대한 워크아웃 계획이 확정되고, 워크아웃 과정에서 부평공장 노동자 1,752명이 정리해고를 당했다. 5년여가 지난 후에 복직이 이뤄지기는 했으나 정리해고 당시의 경험은 지금까지도 한국지엠 노동자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당시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대우자동차를 매각하기 위해 GM을 비롯해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피아트, 현대자동차 등에 인수 의사를 타진했다. 한 때 포드가 유력한 인수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결국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당시 소형차 개발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던 GM은 부평 R&D센터와 군산공장, 창원공장, 해외법인과 9개 판매법인을 우선 인수하기로 했다. 상대적으로 설비가 노후화된 부평공장은 별도법인을 설립해 6년간 위탁생산을 하기로 했다.

GM은 2001년 9월 MOU를 체결한 데 이어 2002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해 그 해 10월 GM대우를 출범시켰다. 이 때 GM과 채권단은 GM 4억 달러(지분 67%), 채권단 1억 9,700만 달러(지분 33%)를 출자해 신설법인을 공동으로 설립해 대우자동차를 인수했다. 채권단은 신설법인에 산업은행 16억 달러, 우리은행·외환은행·조흥은행 4억 달러 등 20억 달러를 추가로 지원했으며, 정부로부터 특별소비세 유예, 소득세·법인세·취득세·등록세를 일정 기간 동안 감면받는 등 특혜를 받았다.

GM대우 출범 당시 대우자동차가 개발해 군산공장에서 생산하던 ‘라세티’는 2003년에는 유럽시장과 북미시장으로 수출됐다. 나중에 ‘크루즈’로 차명이 변경된 라세티는 한국지엠이 출범 초기에 흑자로 전환하는 데 큰 힘이 됐다. 라세티의 선전에 힘입어 GM대우는 2004년 3월 군산공장에 디젤엔진공장 건설계획을 발표하는 등 한국에서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2005년 10월에는 당초 6년간 위탁생산을 할 계획이었던 부평공장을 조기에 인수하여 통합했고, 그 해 11월에는 군산공장에서 디젤엔진 생산을 개시했다. 대우그룹의 위기로 부도를 맞았던 대우자동차는 GM 인수 이후 빠르게 정상화됐고, 2006년 3월에는 5년 전에 정리해고됐던 해고자들이 재입사 형식으로 복직됐다.

GM으로 인수된 이후 2005년 CKD(반조립) 물량을 포함해 연간 200만 대 생산을 기록한 이래 2006년에는 연간 242만 대를 생산했다. 이후 금융위기로 인한 물량 감소로 2009년 173만 대를 생산한 것을 제외하면 2012년까지 연간 200만 대 이상을 꾸준히 생산했다. 영업실적도 2006년에 3,356억 원의 흑자를 기록한 이후 2012년에 적자로 돌아서기 전까지 규모의 차이는 있으나 흑자행진을 이어갔다.

유럽시장 철수의 직격탄 맞다

2008년에는 라세티 후속으로 크루즈가 생산되기 시작했으나,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생산량이 줄어들었다. 12월에는 경기불황으로 부평공장과 군산공장 생산라인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2008년 연간 생산량은 224만 대를 기록했고, 영업실적도 2,903억 원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여파가 이어지면서 2009년에는 조업 단축이 이루어졌다. 2009년 4월과 5월에는 각각 주 3일, 주 4일 근무를 하기도 했다. 그 해 5월 GM이 파산사태를 맞고 6월에 파산보호를 신청하는 등 경영난에 처함에 따라 GM대우 협력업체들에 공적자금이 투입되기도 했다. 이 해 10월 GM이 단독으로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면서, 산업은행의 지분은 17%로 조정됐다. GM의 파산 등 위기를 겪었지만 이 해에도 GM대우는 연간 173만 대를 생산해 1,551억 원 흑자를 기록했다.

2010년에는 다시 200만 대 이상으로 생산 규모를 회복해 244만 대를 생산했고 756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사명을 한국지엠으로 바꾼 2011년에는 연간 268만 대를 생산해 1,136억 원의 흑자를 기록하는 등 한국지엠은 글로벌 GM의 위기 극복을 이끌었다. 2011년 군산공장의 가동률은 130%에 이르렀고, 군산공장에서만 27만 대를 생산하기도 했다.

GM이 위기를 겪는 동안 한국지엠이 구원투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지엠의 생산성이 그만큼 뛰어났던 것을 반증한다. GM은 주로 판매처에 생산기지를 두는 전략을 취해 왔지만, 한국지엠은 GM 안에서 이례적으로 수출전용 생산기지로 운영됐다. 유럽으로의 수출물량은 대부분 한국지엠에서 생산됐다.

그런데 한국지엠의 선전과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 등에 힘입어 회생에 성공한 GM은 2012년에 그동안 추진했던 금융화 전략을 포기하고 제조 중심 기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에 따라 한국지엠의 역할이 재조정됐다. 한국지엠에서 생산해 수출하던 차종을 현지화하거나 북미 공장으로 가져가는 한편, 플랫폼 통합을 통해 한국지엠의 독자모델도 없앴다.

이러한 GM의 전략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2012년 크루즈 후속 모델 생산에서 한국지엠 군산공장을 배제한 일이다. 라세티로부터 크루즈로 이어지는 동안 소형차종의 주력 생산공장이었던 군산공장이 후속 모델 생산에서 배제된 것이다. 당시 한국지엠지부는 물론 군산시까지 나서서 신형 크루즈 생산중단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등 크루즈 후속 모델 확보를 위해 노력한 결과 2013년 2월에 GM은 군산공장에 신차 배정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차효과는 없었다. 신차 출시 가격을 경쟁사의 동급차종보다 200만 원 가까이 높게 책정하면서 내수시장에서의 판매를 기대할 수 없었고, 주요 수출시장이던 유럽시장의 침체로 수출물량도 줄었다. 오히려 유럽으로의 수출이 감소하면서 JPH(Jobs per Hour, 시간당 생산량, UPH)를 60에서 52로 조정하기도 했고, 군산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결국 2013년 12월, GM은 유럽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지엠에서 생산해 쉐보레 브랜드로 유럽시장에 수출하던 물량은 유럽으로의 수출을 재개하지 않는 한 기대할 수 없게 됐다. 2014년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JPH를 완성차 기준 35까지 하향조정했지만 한국지엠의 연간 생산량은 81만 대에 그쳤다. 영업실적도 2014년에 1,485억 원 적자로 돌아섰다.

추가자금 없으면 운영자금마저 바닥

2015년과 2016년을 거치면서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2015년에는 생산할 물량이 없어진 군산공장을 1교대로 전환했지만 희망퇴직을 접수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GM이 인도네시아, 태국, 러시아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하면서 비정규직 1,100명을 내보내는 등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하지만 생산량은 갈수록 줄어 2015년 70만 대, 2016년 33만 대 생산에 그쳤다. 영업실적도 2015년 5,943억 원 적자, 2016년 5,311억 원 적자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014년부터 3년간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는데, 2014년 3,533억 원, 2015년 9,868억 원, 2016년 6,314억 원의 적자를 각각 기록했다. 3년간 누적하면 거의 2조 원에 가까운 당기순손실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2017년 들어서도 GM은 독일 오펠과 영국 복스홀 브랜드를 매각했고, 한국지엠의 생산량은 33만 대에 그쳤다. 당기순손실은 1조 원을 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지엠은 현재 현금보유고가 바닥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GM 본사로부터 추가적인 자금이 투입되거나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대출을 받지 못하면 당장 운영자금마저 없는 상황이다. 당장 폐쇄 결정이 내려진 군산공장뿐만 아니라 부평공장과 창원공장 역시 이러한 자금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다.

한 가지 주목되는 점은 현재 한국지엠의 경영성과가 GM으로부터의 차입금 규모와 엇비슷하다는 점이다.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이래 한국지엠의 경영성과는 1조 8천억 원 순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부(-)의 영업권 1조 4천억 원까지 손실액은 3조 2천억 원에 이른다. 그런데 한국지엠이 GM 본사로부터 차입한 금액은 3조 원 규모로 거의 엇비슷한 수준이다.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한국지엠이 이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 원인을 각종 경영지표와 GM의 전략을 통해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