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의 향후 행방은?
한국지엠의 향후 행방은?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04.0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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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자전환부터 먹튀까지 모든 가능성 열려 있다
준비 없이 맞이하는 미래는 재앙 불러올 수 있어
[기획] 위기의 한국지엠 5 위기 극복 시나리오

지난 2월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발표 이후, 지금까지의 문제제기와는 별개로 지금이라도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산업은행이 진행 중인 실사를 거쳐 이번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지엠의 미래를 두고 몇 가지 시나리오들이 나오고 있다.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화될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각각의 시나리오가 모두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준비 없이 맞이하는 미래는 재앙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GM, 지원·양보 없으면 부도처리도 불사

우선 한국지엠에 대한 GM 본사의 요구조건을 살펴보자. GM 본사는 한국철수를 볼모로 정부에 △차입금 27억 달러(약 2조 9,000억 원) 출자전환 시 지분 비례에 따라 산업은행의 참여(약 5,000억 원) △향후 10년 간 28억 달러(약 3조 원) 신규투자 산업은행 참여 △2월 말 만기도래 GM 본사 차입금 5억 8,000만 달러(약 6,200억 원)에 대한 공장 담보 제공 △외국인투자지역 지정 등을 요구했다. GM 본사의 요구대로 한국지엠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이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된다면 소득세와 법인세 등을 5년 간 100% 감면받을 수 있다. 이어 노조에는 노조의 양보를 통한 2018년 단체교섭 노사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7일에는 한국지엠 ‘부도처리’도 불사하겠다는 강수까지 두며 조속한 정부 지원과 노사 합의를 요구했다. 실사 중임에도 불구하고 ‘부도처리’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써가며 정부 지원을 요구한 것이다. 또한 위 요구안들을 살펴보면 GM은 지금 ‘비용 줄이기’에 몰두하고 있음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정부와 노조를 ‘쥐어 짠 후’ 줄일 수 있는 모든 비용을 줄여 최종적으로 한국을 철수하게 되더라도 GM 본사 입장에서는 ‘손해 보지 않는 장사’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시나리오1. 흑자전환과 경영정상화

한국지엠의 흑자전환은 가능할까?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은 지난해 한국자동차기자협회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재무적 연속성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지엠 경영진과 임직원들은 경영 흑자로 올라서는 데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군산공장 폐쇄 발표 이후 희망퇴직 신청자를 접수한 것과 외국인투자지역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현재 희망퇴직 신청자로 접수된 2,500여 명에서 추가로 3,500명의 노동자를 정리하겠다는 것으로 보아 경영진은 ‘군살 빼기’, 즉 노동자를 줄여서 흑자전환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앞서 한국지엠 위기의 원인에서 나왔듯이 한국지엠 흑자전환을 위한 첫 번째 열쇠는 적자 구조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하고 있는 GM 본사에 대한 부당한 비용구조 개선에 있다. 한국지엠지부 사무지회는 ‘한국지엠 위기의 원인과 해법’ 자료집에서 “대가 없는 연구개발비 지출과 저가 수출이 계속된다면 신차 2종이 투입된다 하더라도 한국지엠 적자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한국지엠 경영정상화는 비용분담구조와 거래구조를 바로잡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정부와 지엠 사이 지원 협상이 진전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적재산권 확보 역시 빠질 수 없는 문제다. 한국지엠은 지적재산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새로운 차를 개발해도 이익을 얻을 수 없는 구조에 갇혀 있다. 현재 한국지엠지부는 회사에 신차투입계획의 로드맵과 미래형 자동차 국내개발 및 국내생산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더욱 확실한 장기전망을 위해서는 지적재산권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한국지엠지부는 “한국지엠이 개발한 차량에 대한 지적소유권을 포함한 모든 권한이 한국지엠에 있음을 확약한다”는 내용의 한국지엠 지적소유권 확약요구를 2018년 단체교섭 장기발전전망 요구안으로 제시하면서 “트랙스 후속을 포함해서 한국지엠이 관여하고 있는 여러 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한국지엠의 소유권 혹은 장기 사용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위의 내용 모두 GM 본사의 경영 정책과 맞물려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GM 본사의 의지 없이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GM 본사에 지적재산권과 비용구조 개선을 강제할 수단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실사 결과 정부의 지원이 들어가게 된다면 비용구조 개선과 지적재산권 확보를 전제로 한 지원을 약속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시나리오2. 자금지원을 통한 회생

한국지엠은 군산공장 폐쇄 발표와 함께 정부 지원을 요청했다. 지난달 26일 한국을 방문한 배리 앵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이달 20일까지 2018년 단체교섭 노사 합의와 정부지원이 결정되지 않는다면 한국지엠을 부도처리하겠다는 최후통첩까지 날렸다.

한국지엠 정부 지원을 두고 민간기업의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고 지원하는 것에 대한 찬반양론은 여전하다. 다만 이번 사태의 경우 GM 본사의 압박에 못 이겨 정부가 지원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이번 사태에 대한 대책과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정부지원을 통해 당분간 현 사태를 막고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한 연구원은 “지금은 외통수에 몰린 상황”이라며 “2013년부터 한국지엠 전반에 대한 시나리오들이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현재 상황까지 왔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정부의 지원은 한국지엠에 회생을 안겨다 줄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반응이다. 한 연구원 역시 “문제는 정부의 지원이 있어도 짧게는 2년 뒤에 또 정부의 지원을 요구할 것”이라며 “이 2년 동안 또 아무런 준비가 안 돼 있다면 또다시 외통수에 몰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지원을 반대하는 이들은 이번 사태가 한 차례 마무리되더라도 이후 언제라도 GM 본사가 똑같은 요구를 해올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다시 공장 폐쇄와 한국 철수를 무기로 정부의 지원을 요구해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현철 군산대 교수는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면 GM 본사는 내년이나 내후년 또다시 지원을 요구할 것”이라며 “정부 지원을 하는 것은 절대 안 되며 GM 본사에서 자구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지엠지부 역시 성명서를 통해 “지엠자본이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한국지엠의 신차에 대한 미래발전전망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노조의 양보는 없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어떠한 지원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못 박았다. 정해철 한국지엠지부 정책기획실장은 “GM이 미래발전전망을 통해 향후 10년 이상 한국에서 생산을 유지한다는 전제가 있다면 정부 지원을 환영하겠지만 2~3년 뒤 같은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미래발전전망이 없다면 지원을 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한국지엠지부는 향후 10년의 미래 전망이 없다면 정부의 지원도 의미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부 지원 이후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노조의 경영참여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지엠지부는 2018년 단체교섭에서 한국지엠이 GM홀딩스로부터 차입한 차입금 약 3조 원 전액을 자본금(주식)으로 출자전환하라는 요구안을 제시했다. 또한 회사가 자본금(주식)으로 출자전환하는 주식에 대해 1인당 3천만 원에 해당하는 주식을 한국지엠 전 종업원에게 분배할 것을 요구했다. 정해철 정책기획실장은 “출자전환 관련 요구는 GM의 경영을 노조가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일부 언론에서는 노조가 임금 동결한다고 하더니 3천만 원을 내놓으라고 했다며 비판하고 있지만 GM이 도망하기 못하게 하기 위해 주식을 요구한 것”이라며 “비상장주식은 현금화할 수도 없고 흑자가 나면 배당금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한국지엠이 흑자를 낼 구조는 아니다”고 해명했다.

한국지엠지부 사무지회는 “정부 지원금이 온전히 한국지엠을 위해 사용되도록 만들어야 할 책임은 노동조합에게 있다”며 “노동조합이 얼마나 훌륭하게 내부 감시자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지원금이 지엠 본사의 호주머니로 돌아갈지, 한국지엠 갱생의 종자돈으로 사용될지가 결정될 것이다”고 강조한다.

#시나리오3. GM과의 결별 그리고 독자생존

GM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호주, 러시아, 유럽, 남아공 및 인도 철수를 결정했다. 이러한 해외 철수 흐름을 보았을 때 GM이 한국을 떠나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결론 역시 존재한다. 한쪽에서는 GM의 한국철수는 기정사실이니 차라리 이번 기회에 GM과 결별하고 독자생존 방안을 찾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누가 한국지엠의 새로운 주인이 될 것이냐는 것이다.

김현철 교수는 이번에 폐쇄 발표가 난 군산공장의 경우 국내기업이 매입하면 제일 좋겠지만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엄격히 말하자면 한국지엠을 인수할 수 있는 자동차 기업은 없으며 현대자동차의 경우 현대자동차노조의 반대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승일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는 17%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산업은행이 투자하는 방식을 통해 한국지엠을 전기자동차 생산 공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정승일 이사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전기자동차를 만들고 있는 중소업체들과 한국지엠의 기술력이 결합되면 전기자동차를 생산하는 게 어렵지 않다”고 전했다. 다만 이는 산업은행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핵심인데, 산업은행은 주도적으로 산업을 육성하는 등의 담보성 없는 ‘모험’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한국지엠을 통째로 인수할 건실한 국내기업을 찾았다고 해도, 산업은행의 주도로 정부가 한국지엠을 운영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는다. 바로 지적재산권 문제다. ‘시나리오1’에서 설명했듯이 한국지엠이 이익구조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지적재산권 보유가 필수적이다. 지적재산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GM과 결별하는 순간 생산할 차종이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4. GM의 한국 철수

마지막으로 고용문제가 파국으로 치닫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GM의 한국철수가 남았다. 최악의 시나리오임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현재 GM 본사가 정부와 노조를 압박해 비용 줄이기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만 봐도 지금까지의 작업이 한국 철수 비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현 상황에서는 정부와 노조 모두 GM 본사의 요구조건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있기에 한국 철수로 인해 발생할 대량의 실업사태에 아직 뚜렷한 대안이 없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2009년 쌍용차 사태는 외국계 자본의 철수가 얼마나 심각한 상처를 남기는지 보여준다. 쌍용차 사태가 10년 가까이 흐른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당시 쌍용차보다 훨씬 규모가 큰 한국지엠에서 이른바 먹튀가 현실화됐을 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길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