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의 위기 어디서부터 시작됐는가
한국지엠의 위기 어디서부터 시작됐는가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04.0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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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핵심 키(key)는 GM 본사로부터
구조적으로 흑자를 낼 수 없는 한국지엠
[기획] 위기의 한국지엠 3 위기의 원인

지금의 한국지엠이 지엠대우였던 시절, 릭 왜고너(Rick Wagoner) 전 GM 회장은 한국지엠을 두고 “GM을 살릴 원동력”이라고 평가했다. 한때 릭 왜고너 회장이 극찬했던 한국지엠은 그때의 명성을 잃은 지 오래다. 현재 한국지엠은 설립 이후 최초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한국지엠의 현재와 같은 위기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를 진단해 본다.

한국지엠과 GM 본사의 수상한 거래관계

한국지엠의 위기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최근 한국지엠의 재무 현황이다. 지난해 7월 산업은행이 지상욱 바른미래당 국회의원실에 제출한 ‘한국지엠(주) 사후관리 현황’ 자료에 따르면 한국지엠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2014년에는 글로벌 경제여건 악화, 유럽 쉐보레 브랜드 철수 등에 따른 수출부진으로 3,534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고, 2015년에는 러시아 정부의 보조금 지원 중단 등을 이유로 러시아 판매법인 철수를 결정했다. GM이 이때 발생한 철수 비용을 한국지엠에 전가하면서 9,868억 원의 당기순손실이 발생했다. 연이어 발생하는 당기순손실을 줄이고 흑자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이에 맞는 경영대책과 GM 본사의 지원이 필요했지만 별다른 자구대책 없이 GM 본사로부터의 차입금에만 의존했다는 것이 산업은행의 지적이다.

이렇게 본사에서 끌어온 차입금은 한국지엠 재무 악화의 주원인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한국지엠이 본사에 지급하는 차입금 이자액이 한국지엠 누적적자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지엠의 누적적자는 지난 5년간 1조 9,787억 원으로, 약 2조 원에 달한다. 이 중 본사에 지불하는 차입금 이자비용은 4,955억 원으로, 전체 누적적자의 약 25%를 차지한다.

한국지엠지부 사무지회는 ‘한국지엠 위기의 원인과 해법’ 자료집을 통해 한국지엠 재무 악화는 본사에 지불하는 부당한 비용 분담 구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한국지엠지부 사무지회는 “현대기아차는 물론이거니와 르노삼성, 쌍용차 같은 외국인투자 자동차기업들도 이렇게 본사에 거액을 이자로 지급하는 사례가 없다”며 “계열사 간 거래임에도 이자율이 4.8~5.3%로 높다”고 지적했다.

유럽시장과 러시아시장 철수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을 한국지엠에 전가하면서 차입금이 증가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GM 본사가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시장 철수를 결정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유럽시장과 러시아시장 철수 비용으로 총 5,085억 원이 발생했고 이 비용을 한국지엠에게 부담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기술개발 및 구매용역 비용과 업무대행료로 GM 본사에 지불한 액수도 5년간 5천억 원에 달했다. 한국지엠지부 사무지회는 “지난 5년간 누적된 적자 대부분(1조 5,067억 원)이 GM 본사와 관계된 비용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술개발 부분에서 발생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한국지엠이 ‘지적재산권’을 갖지 못한다는 문제다. 한국지엠지부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지엠은 매년 연구개발 비용으로 6천억 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지만, 그 어떤 지적재산권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지엠지부 사무지회는 지적재산권의 부재가 한국지엠이 GM 본사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한국지엠지부 관계자는 “한국지엠에서 개발한 차종에 대한 로열티는 한국지엠이 받는 게 맞지만 지적재산권이 없어 GM 본사가 가져간다”며 “한국지엠의 연구개발비용으로 만들어진 차를 외국에서 생산하면서 그에 대한 로열티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당연히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현재 한국지엠이 당면한 재무 악화의 원인은 GM 본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 한국지엠지부 사무지회는 “5년간 누적 적자액 2조 원 중 거의 4분의 3이 한국지엠과는 그다지 큰 관계가 없이 발생한 적자”라며 “만약 이 적자가 없었다면 한국지엠은 연 1천억 원 정도 적자를 본 셈이었고 이는 군산공장 정상화나 아주 약간의 수출가격 조정으로도 쉽게 흑자로 바꿀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GM 본사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26조 원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한 것과 반대로 한국지엠이 2조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고 자본잠식상태에 빠진 것을 보고 지상욱 의원은 “모회사(GM)는 돈 잔치를 하고 자회사(한국지엠)는 빚잔치를 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한국지엠의 입장을 듣기 위해 취재 요청을 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산업은행은 무슨 역할을 했는가

한쪽에서는 한국지엠 지분의 17%를 보유하고 있는 산업은행이 국책은행으로서 산업이 잘 돌아갈 수 있게 지원하는 혈액 기능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우리나라 금융은 자율금융, 시장적 금융으로 움직여본 적이 없다”며 “금융이 모험적인 투자보다는 담보성이 강한 안정적인 사업으로 운영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지적에 산업은행은 한국지엠에 수차례 협조 및 시정 요청을 했으나 회사에서 불응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7월 지상욱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소수주주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주주인 GM 본사의 협조 없이는 경영통제에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주주계약서를 근거로 주주감사권 행사를 결정하고 회계법인과 함께 감사에 착수하였으나 회사 측이 다양한 방식의 비협조 행태로 주주감사를 무력화하여, 감사가 파행적으로 진행되어 정상적인 감사가 불가능하다”며 “주주계약서상 강제수단이나 제재조항이 없어 GM 측 협조 없이는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정승일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이사는 공공정책 금융의 역할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과거에는 산업정책의 한 도구로 움직였던 산업은행이 지금은 관치금융을 핑계로 역할을 부정하고 있다”며 “산업은행이 가진 자금력으로 산자부와 함께 협력해 앞으로 2~3년 뒤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팀을 만들어야 하는데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산업은행이 생각을 바꿔 주도적인 참여를 통해 산업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산업은행은 한국지엠을 실사하고 있으며, 실사는 군산공장 폐쇄가 예정된 5월 말 전후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유상협 한국지엠지부 군산지회 교선실장은 실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냥 한, 두 달 실사하고 마무리 짓는 것은 군산공장을 포함하는 자구책이 나오더라도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한국지엠의 위기를 진단하는 제대로 된 실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실사에 들어가면서 공개된 보도자료 외에 여타의 취재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

김현철 군산대 교수는 “이번 실사를 통해 실제 차입금에 대한 이자율은 얼마였는지, 이자를 어떻게 송금했는지, 왜 이자가 높았는지까지 상세히 봐야 한다”며 “예를 들어 지역 금융권에서 융자를 못 받아서 그랬다면 그 기각된 사유까지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산업은행의 책임을 물어서라도 이번 실사를 통해 정부가 (한국지엠 부실의 원인을) 제대로 밝혀내야 한다”며 “실사를 통해 이 모든 것을 밝혀내려면 최소 6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카드는 GM 본사 전략에 있다

그럼에도 한국지엠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핵심 카드는 GM 본사 손에 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한국지엠이 현 상황까지 오게 된 가장 큰 핵심은 GM 본사의 전략 변화라고 지적한다. 2013년 말 GM 회장 자리에 메리 배라(Merry Barra)가 취임하면서 GM의 전략이 변했다는 것이다.

GM은 메리 배라 취임 이후 유럽 매출 감소 및 매년 4억불 손실 발생을 이유로 2013년 12월 유럽 현지판매법인 16개 철수를 결정했다. 이어서 2015년에는 러시아 판매법인 철수를 결정했다. GM이 최근 수년간 진행해온 해외판매법인 철수 흐름을 살펴보면 글로벌 사업 재편 전략이 “몸집 줄이기”에 초점을 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GM의 전략으로 한국지엠은 해외 판매 시장을 잃게 됐다. GM의 생산기지 중 하나로 운영된 한국지엠이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GM은 시장 측면에서는 북미시장과 중국시장에 집중하고, 차종 측면에서는 픽업트럭과 미래형 자동차에 집중한다는 중장기 전략을 세우고 있다. 한국지엠을 포함한 ‘GM International’이 수익성을 개선하지 못하면 과감한 결정을 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흑자를 내지 못하면 철수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앞에서 본 것처럼 한국지엠은 흑자로 전환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시장과 차종 모두 GM이 중장기적으로 집중할 대상에서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지엠의 철수 가능성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한국지엠지부는 매년 임단협 등을 통해 장기발전전망을 제시하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경영진은 철수 가능성을 부인하기만 할 뿐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이번 사태에 첫 직격탄을 맞은 군산공장 노동자들 역시 공장 폐쇄 발표 직전까지 아무런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상협 교선실장은 “군산공장 폐쇄 발표 일주일 전 임단협 2차 교섭에서도 그런 낌새는 전혀 없었다”며 “군산공장이 휴업 중이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뉴스를 통해 이 사실을 알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김현철 군산대 교수는 “아무리 자기가 투자한 회사라고 할지라도 기업을 독자적으로 경영했어야 하는데 한국지엠을 독립만 시켜놓고 하나의 공장처럼 취급했다”고 비판했다.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장은 “실사보다도 GM 본사의 글로벌 전략이 중요하다”며 “실사 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와도 한국의 위치가 글로벌 전략에서 의미 없다고 판단되면 한국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기는 되풀이될 수 있다

이번 한국지엠의 위기를 두고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더라도 GM 본사의 전략 때문에 몇 년 뒤에 또 정부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위기는 또다시 닥쳐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위기가 반복되지 않도록 실사 참여를 요구했던 노조의 목소리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지엠의 경영 상황을 진단하기 위한 실사가 시작되었으나 GM 본사와 산업은행이 합의한 일정 내에 위기의 원인을 세세하게 파헤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조가 참여하지 않는 실사는 회계장부를 검토하는 요식행위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실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노조는 신뢰할 수 있는 자료와 전문가를 통해 부족하지만 나름의 실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