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숨비소리를 토해내다
제주, 숨비소리를 토해내다
  • 노효진 기자
  • 승인 2018.04.2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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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이-휘, 호오이-휘

늙음직한 해녀가 지나가자 화를 냈다. 고기를 집어(集魚)해 뒀는데, 해녀가 요란하게 지나며 고기를 다 쫓아버렸단다. 뭘 모르는 낚시꾼의 투덜거림이다. 해녀가 지나면 용존 산소량이 많아져 오히려 고기들이 모인다. 해녀가 천연 집어제 역할을 하면서 창을 열 듯, 고기들이 사는 물을 환기시켜준다. 몸짓으로 숨을 불어 넣는 거다.

물에 사는 고기들에게는 숨을 불어 넣던 해녀들은 뭍에 나와서는 속으로 숨을 쉰다. 4.3 이후 생존을 위한 방편이었다. 숨죽이고 산 세월이 70년. 잘 못 말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 속으로 숨 쉬듯 조용히 하라는 암묵적 규칙이 숨도 못 쉬게 만들었다. 한국전쟁 다음으로 많은 목숨들이 사라졌다. 3만이 넘는 도민이 죽었다. 비극의 규모에 비해 회자되지도, 제대로 아는 이도 많지 않다. 제주 4.3은 현재 진행 중이다.

대살(代殺). 가족 중 청년이 한 명이라도 사라졌다면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총살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을 집결시켜 호적과 대조해 도피자 가족을 찾았다. 가족 중 청년이 사라지면 부모와 아내, 어린아이까지 총살했다. 도민들은 이를 대살이라 불렀다. 낮에는 군인과 경찰이 찾아와 ‘폭도 혐의자’라는 이름으로 총살하고, 밤에는 무장대가 찾아와 ‘반동분자’라는 이름으로 때려 죽였다. 진압군은 굴이나 숲에 숨어있는 사람들을 찾아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총살했다.

빨갱이라는 굴레는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쉬운 덫이었다. 희생된 제주도민 중 대부분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공산주의를 적으로 삼고 토벌을 목적으로 한 이들의 눈에는 모두가 빨갱이였다. 결과는 가혹했다. 4.3 이후 제주에는 홀어멍이 늘었다. 기혼 여성 절반 이상이 과부였다. 바람, 돌, 여자가 많아 삼다도라 불리던 섬은 4.3의 흔적을 ‘삼다도’라는 이름으로 멍에처럼 지고 있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주에는 입대 바람이 불었다. 4.3의 흔적을 ‘나는 폭도가 아니다’는 항변의 몸부림을 ‘입대’라는 방식으로 지웠다.

상처가 아프다고 말할 수 없던 세월과 분노를 분노라 표현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숨 한 번 제대로 쉬어내지 못한 무상함이었다. 살다보면 살아지는 세월을 건너 온 제주의 아픔은 이제 제주도민만의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한복판, 광화문 광장에서 4.3을 외쳤다. 제주의 숨이 길게 터졌다. 제주 4.3이 제대로 정명(正名)되고 평화와 인권을 위한 좋은 교두보 역할을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호오이-휘, 호오이-휘. 살아 다시 숨이 된다.

제주, 생명의 소리를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