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에서 수습까지 총체적 부실 드러난 참사
침몰에서 수습까지 총체적 부실 드러난 참사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8.04.2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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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다운 나라’ 위해서는 우리가 바뀌어야
[커버스토리]세월호, 우리, 나 ⑥ 평가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세월호 참사 직후,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고 말해왔다. 안전한 사회, 내 생명을 지켜주는 국가는 모두의 바람이 됐다. 세월호 참사의 전 과정은 사회 현상을 연구하던 학자들에게도 상식을 벗어난 난제였다. 전국 주요대학의 교수들은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며 잇따라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한국사회학회장을 맡고 있는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그중 한 사람이다. 신 교수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한국사회가 안고 있던 모든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4주기를 앞두고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보셨는지?

세월호의 침몰, 그 이후의 수습 과정이나 진상규명 자체가 총체적으로 부실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돼 있다. 세월호 해운업체의 운영과 관련한 관과 기업의 유착, 선장까지 비정규직으로 채용할 정도로 노동시장에서 노골적으로 승객의 생명과 안전에 관계없이 비용 절감만을 위한 체제, 그리고 사고가 났을 때 책임을 져야 할 해경으로부터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총체적인 부실이 나타났다. 어떻게 이런 시스템이 지금까지 굴러 왔는지 의심할 정도다. 어느 한 곳의 고장이 아니다. 이런 것이 변하지 않고는 말로만 성장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를 갈망하는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밝혔던 것이다.

총체적인 부실이 드러난 사건이라는 분석 외에도 박근혜 정부의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수습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여준 행태는 다른 사람이었다면 달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나 배가 침몰하기 전까지 과정을 보면 기업과 관의 유착 관계, 문제가 생기면 봐주고 안전검사도 대충 하는 관행이 우리 사회에 형성됐다. 이러한 관행은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해야 할 크루즈선에서도 그대로였다. 설마 큰 배가 침몰하겠느냐는 무사안일주의, 안전불감증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여러 가지 제도와 시스템 상에서의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요컨대 한국의 성장제일주의, 국가 주도의 성장 과정에서 온갖 부정부패가 오래 누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과거에도 여러 가지 재난이나 사고가 일어났을 때 책임자 처벌이 굉장히 미약했다. 기업에서는 벌금 내면 된다. 가령 일터에서 산재사고가 지금도 빈발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처벌을 강력하게 해야 한다. 산재가 나면 기업이 망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조심하게 되고 안전을 중시하게 된다. 돈 몇 푼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면 인명을 경시한다. 사고가 나면 호들갑을 떨다가 조금 지나면 유야무야 되는 상황이 계속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전 정부의 심각하다고 말할 수 있는 점은 이런 것이다.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회피하면서 유병언이라는 종교지도자만 쫓아다녔다.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수장된 이유가 무엇인지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데 후안무치하게도 계속 감추고 오히려 방해했다. 심지어 진상규명 요구를 조롱하는 행동을 방조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시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피해자를 추모하고 유가족과 연대했다. 이러한 행동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나?

두 가지 정도가 있을 것 같다. 하나는 피해자 대다수가 고등학생이라는 점이다. 많은 가정에서 자녀를 두고 있다. 그 또래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구조를 기다리면서,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었는데 죽었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자녀를 둔 부모들이 강한 정서적 동질성을 느꼈다. 또 사회의 어른들이 저지른 일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복합적인 의식을 가졌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 가정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국가 수준에서 벌어졌다는 점이다. 세월호 유가족 텐트에 보면 ‘감추는 자가 범인이다’라고 쓰여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행태를 보여줬다. 사고 발생 시각에 전화를 안 받고 잠을 잤다든가 하는 뉴스가 나왔다. 예를 들어서 북한으로부터 군사적인 공격이 이뤄졌다고 상상하면 아무런 대책이 없었을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세월호 피해자와 유가족을 조롱하거나 비방하고, 또 그러한 일을 선동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들의 행동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그 사람들은 모든 사안을 정치적으로 평가하고 과거 집권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일부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집단이 불리한 상황이면 공격을 하고, 일반적인 국민의 정서에 반하는 정도를 넘어섰다. 그러한 행위가 사회적으로 허용됐다. 공적인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위협하고 집단에게 해를 가하는 행위는 공공질서 차원에서 정리돼야 한다. ‘일베’(일간베스트)와 같이 극우적이고 나치 같은 발언과 행동은 형사적인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보수정부에서 묵인되고 때로는 조장됐다.

이른바 ‘태극기 부대’로 통칭되는 관변단체가 여러 가지 역할을 했다. 박정희 정부 때부터 정부기관이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서 여러 조직을 만들어 장을 선출하고 지명했다. 또 재정을 지원해 이들을 일종의 권력집단으로 만들었다. 권위주의 체제의 유산이다. 과거 군사정권에서 조직되고 지원받았던 조직들이 지금도 활동을 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관변단체들이 민주정권 하에서는 조용히 있다가 보수정권 하에서 다시 되살아났다. 그리고 정권이 이들을 활용하고 동원했다. 정상적으로 정치 발전이 이루어졌다면 일베나 관변단체가 생기더라도 주변화 되고 사라졌을 것이다.

촛불시위는 이 같은 정치적인 왜곡을 교정하는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다. 국내에서 일어난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 사건이다. 214만 명이 평화적으로 모여 시위를 했는데 세계 어디에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많은 외국 학자들이 어떻게 그런 일이 있느냐고 놀란다.

세월호 참사 전과 후, 한국사회 개인의 삶이나 가치관이 어떻게 달라졌나?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다는 극단적인 불신이 나타났다. 선장도 선원도, 해운사도, 해경도, 정부부처도, 청와대도 다 발뺌하기에 급급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세금을 내고도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게 됐다. 극단적인 각자도생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존재하는 한 각자도생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관계에 의존하고 삶이 유지된다. 지금도 각자도생하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각자도생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과 정치가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촛불은 각자도생의 역발상이다.

물론 촛불시위에 갔다 온 실업자는 집에 오면 여전히 실업자로 남는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집 앞에서 주차공간을 놓고 이웃과 언쟁을 벌인다. 촛불이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정치권력을 바로 세워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긍정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만들어줄 수 있는 정권, 사회를 원한 것이다. 촛불시위를 한다고 당장 내 삶이 달라질 수는 없다. 사회 변화가 형광등 켜듯 한 번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착각이다. 사회 제도와 시스템이 변하는 과정은 상당한 정도의 희생과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변화를 원한다면, 우리의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촛불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정치적 상황이 만들어낸 효과다. 그렇다면 말이 되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는 무엇이 어떻게 가능한지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세금을 조금 올린다고 하면 큰 일 나는 듯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방식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와 촛불 정국을 거치면서 ‘이게 나라냐’는 외침이 나왔고, ‘나라다운 나라’라는 구호가 지지받았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한국사회와 한국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나라다운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는 한 개인이나 지도자가 답을 내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 개인의 생명과 삶이 보장되고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을 억누르지 않는 수준일 것이다. 적어도 과거 이명박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에서처럼 공권력이 시민을 대상으로 살인을 하거나 폭력을 일삼는 나라는 아니어야 한다는 인식은 많이 생겨난 것 같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제도화 하고 시스템화 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이는 단기에 바꿀 수 없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다. 지속적인 변화를 통해서 5년 후, 10년 후에 달라진 모습을 기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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