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난 뒤 비로소 보이는 ‘세월호 유가족’의 삶
연극이 끝난 뒤 비로소 보이는 ‘세월호 유가족’의 삶
  • 윤찬웅 기자
  • 승인 2018.04.2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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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가족극단 노란리본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관람기
[커버스토리] 세월호, 우리, 나 ② 기억

“아, 미치겠다! 저 아줌마만 보면 왜 이렇게 미안하고 왜 이렇게 불편하고 또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거야…”

극 중 세월호 유가족이 등장하자 객석에서는 어린아이들까지도 숨을 죽였다. 세월호 유가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 이웃들의 복잡한 시선이 피부에 와닿는 순간이었다. 유례없는 사회적 파문을 낳은 참사 뒤, 따뜻한 연대와 응원도 그들의 참담한 심정을 달래기에는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유가족들은 연대나 응원을 얻기보다도 참사에 대한 비상식적인 폄하,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유언비어와 싸워야 했다. 그들이 느꼈을 고립감을 우리 사회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엄마들의 코미디, 웃다가 울다가

지난 4월 13일 세월호 4주기를 맞아 목포 극단 새결에서 연극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무대가 열렸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열연으로 펼쳐진 이번 연극은 세월호 유가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웃 간의 정과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위트있게 풀어낸 코미디극이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은 세월호 피해자 가족으로 구성된 극단이다. 배우들은 모두 단원고 피해자 학생들의 어머니들로 극단 창단 이전까지 무대에 서본 일이 없는 초보자다. 2016년 7월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으로 데뷔한 노란리본은 지난 2017년 7월부터 새로운 작품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를 무대에 올리고 있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안산 어느 연립주택에는 세월호 유가족이 산다. 이웃들은 참사 이후 변해버린 이웃에게 불편함과 미안함, 원망이라는 양면적 감정을 느끼지만 관계는 이전 같지가 않다. 그런 연립주택에 ‘김영광’ 할아버지가 이사를 온다. 고집이 세고 자기 멋대로지만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과 배려를 가진 인물인 김영광 할아버지는 고립된 세월호 유가족을 돕고 또 그에 도움받으며 베풂과 나눔을 통해 빌라 이웃 간의 따뜻한 관계를 다시 회복하게 만든다. 제목 그대로 이웃에 살고 웃기도 하고 이웃에 죽고 울기도 했던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의 경험이 온전히 담긴 이야기다.

연극은 기본적으로 유쾌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거침없는 욕설에 현실과의 접점을 통한 웃음 포인트가 연신 등장한다.

“나도 알 건 다 알어. 최순실 나쁜 X, 박근혜 못된 X, 뉴스는 jtbc”

“자네는 도대체 맡은 역할이 몇 개여?”

김영광 할아버지의 대사에 여러 단역을 한꺼번에 맡은 탓에 쉴 새 없이 옷을 갈아입어야 했던 한 배우가 거친 숨을 고르며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 보인다. 관객석에서는 유쾌한 웃음이 쏟아진다.

그러나 코믹한 장면 사이에 숨겨진 묵직한 진실은 관객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그간 은연중에 존재했던 세월호 피해자 가족에 대한 우리 사회 일부의 편견과 폭력적 시선이 고스란히 등장한다.

“TV도 안 봐? 몇억씩 받았다잖아 저 사람들…10억인가, 20억인가?”

“‘학교 수학여행을 가다가 교통사고로 희생된 사건을 특별법을 만들어 보상해달라는 건 말도 안 된다’? 아니 XX 내 번호를 어떻게 알고 아침부터 이딴 카톡을 보내?”

“‘단식하는 사람, 딸이랑 같이 안 살다가 보상금 받으려고 괜히 오버하는 거임?’ ‘게다가 민주노총 간부 출신으로 원래 운동권’? 아니 XX 일주일 만에 카톡이 왔는데 모르는 놈이라니!”

“‘세월호 유가족, 해도 해도 너무한 특별법 요구, 의사자 지정, 특례 입학 요구 공무원 가산점’ 와, 이거 진짜야?”

누구나 환영할만한 재미와 익살 속에서 극은 틈틈이 숨겨진 이야기의 서늘한 본질을 말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교통사고’로의 폄하, 유가족 특혜 유언비어 카톡 논란 등 그간 피해자 가족을 괴롭혔던 우리 사회의 은밀한 폭력들을 극 중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서슴없이 보여준다. 이를 통해 세월호 이후 피해자 가족이 겪어야 했던 또 하나의 참사의 타임라인이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된다.

연극에서는 각박한 현실 속에 파편화한 개인의 이기주의에 대한 묘사도 등장한다.

“엄마 나 이 떡 먹어도 돼?” “뭐가 들었을 줄 알고 먹으려고 그래! 아이 참, 음식물쓰레기만 생기게 이런 걸 왜 갖다 주나 몰라”

“갑자기 모르는 사람한테 밥을 주겠다고? 요즘 같은 세상에?”

“이것 봐요, 저 집 이야기만 나오면 이렇게 분위기가 푹석 가라앉는다니까요”

김영광 할아버지는 조각난 이웃들 사이에 사건을 만들고 연결고리를 만들어 서로를 돕고 서로에 도움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존재로 그려진다. 누구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은 아니다. 굳이 오랜 시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김영광 할아버지를 통해 세월호 유가족들이 바라던 이웃, 공동체의 모습을 쉬이 그려볼 수 있었다.

함께하는 순간조차, 진실을 향한 발걸음

어머니들이 자신들의 아픔을 연극이란 형태로 무대에 올리겠다는 결정을 쉽사리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5년 가을, 피해자 가족들은 주위의 권유로 참사 트라우마 치유의 일환으로서 커피공방에서 바리스타 수업을 함께 듣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안산 지역에서 극단 인큐베이팅 활동을 하던 연출가 김태현 씨를 만나게 됐고 이어 바리스타 수업 이후엔 연극을 해보자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연극을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고 한다. 어머니들은 생전 해본 적이 없는 연극을, 그것도 그와 같은 상황에서 하기는 어렵다고 여겼다. 그러나 김태현 씨가 연극 대본이나 같이 읽어보자며 어머니들을 설득했고 첫 6개월은 연극 대본 읽기만 했다고 한다.

김 씨는 “다 같이 모여서 소리 내어 대본을 읽으며 대놓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며 “그렇게 대본을 읽으며 울고 웃다보니 정말로 무대에 올려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밝혔다.

어머니들도 같은 마음으로 한발 다가섰고 단막극을 준비하는 과정을 거쳐 2016년 7월 정식으로 첫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트라우마 치료에 연극을 이용하는 것은 사이코드라마라는 고전적 심리치료 방법 가운데 하나다. 사이코드라마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 제콥 레비 모레노가 창시한 연극을 통한 심리 치료법으로, 연기라는 언어적, 신체적 행위를 통해 참가자들의 심리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기법이다. 다른 사람의 역할을 경험하거나 자신의 행동을 연기를 통해 돌아보고 정서적 감정배출, 자아감 강화, 감각 각성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 중 김영광 할아버지 역을 맡은 예진엄마 박유신 씨는 말한다.

“예전에 아픈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이웃이었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제가 참사 유가족이 되고 주변에서 따뜻한 이웃들이 손을 내미는데 내 아픔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 손을 온전히 잡거나 공감하지 못했다. 그분들은 진정으로 손을 내미는 것이었겠지만, ‘나도 당신들 같으면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내 아픔을 어떻게 알겠느냐’ 그런 식으로 외면했다.

언론에서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아이 이야기는 않고 돈 이야기만 하는 등 그만큼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영광이 할아버지 역할을 하면서, 세월호 유가족을 보는 입장에서 이 영광이 할아버지는 진심으로 좋은 이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유가족을 보는 영광이 할아버지는 진심으로 따뜻한 사람이었고 그 역할을 해보면서 그분들이 내민 손길들이 진심이었구나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처음부터 제 옆에 계셨던 분들이 지금도 곁에 많이 계신다. 그런 분들이 영광이 할아버지다.”

그러나 어머니들은 연극을 시작했던 것은 치유 때문만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어머니들은 참사 후 시간이 흐르고 세월호가 잊히는 것이 두려웠다. 뚜렷한 진상규명 없이 사람들이 세월호를 끝난 이야기로 치부하는 것이 두려웠다. 어머니들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의 진실을 말하기 위해 시민들을 만나고 싶었다.

박유신 씨는 “사람들은 이게 치유가 되고 그러니까 하는 것으로 아는데 단순히 치유가 목적이었다면 나는 연극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합동영결식을 하면 세상 사람들이 이게 다 끝난 것으로 생각할까 봐 너무 두렵고 아무 말도 못 하는 우리 아이 대신에 엄마인 내가 계속 세월호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앞으로도 연극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청년 세찬 역을 맡은 영만엄마 이미경 씨 역시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정권이 바뀌면서 많은 것들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데 아직 관심을 가지실 일이 너무 많다”며 “선체조사위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특조위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아셔야 할 것이 너무 많고 꼭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무대에서 배우는 왜 다시 울어야 했을까

연극의 막바지에 극 중 유가족은 이웃의 도움과 이웃에의 도움으로 살아갈 힘과 희망을 되찾는다. 모든 등장인물이 모여 희망적인 분위기에서 극이 마무리되는 마지막 신에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함께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유가족 역을 맡은 배우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수십 번은 올랐을 그 무대에서 배우는 왜 다시 울어야 했을까. 치유를 말하는 것이 녹록치도, 온당치도 않다는 생각은 다시금 우리 이웃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우리 사회의 영광이 할아버지를 찾아 헤맸을 유가족의 고독한 투쟁을 떠올렸다. 슬픔으로 지새운 4년의 세월에도 규명되지 않은 진실들, 비극을 부정하는 냉소적 시선 속에서 느꼈을 고립감.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비로소 지금까지 이어온, 앞으로도 이어질 유가족의 삶과 현실이 보였다.

그들에게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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