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노동을 말하다
예술의 노동을 말하다
  • 노효진 기자
  • 승인 2018.04.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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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무형의 결과물이 인정받는 사회를 꿈꾼다, 아티스트 신제현

야생 대마초를 지도로(mapping) 만들어 찾아다니고, 결혼 정보회사에서 유출된 등급표에 해당하는 10명의 남성에게 얻은 정액을 원료로 비누를 만든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비누를 판매한다. 젠트리피케이션 등으로 지역의 원거주민이 떠난 자리에 버려진 가구와 폐자재를 주워 악기를 만든다. 재난의 역사를 기록하고 일상의 사소한 불편함을 예술로 치환한다. 사회에 묻혀 있는 부조리함을 들춰 권위에 반하는 자유로운 전시로 그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문제적 예술가’로 불리며 퍼포먼스와 설치, 미디어, 사운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제현은 최근 무형의 퍼포먼스 전시를 판매하며 퍼포먼스 아트와 같은 무형의 예술품이 어떻게 판매되고, 예술가의 노동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주목한다.

젠트리피케이션 작업들로 작가 신제현을 주목하게 됐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테이크아웃 드로잉’에서의 작품들이다. 예술가들이 들고 일어났다.

건물주 싸이와 고소가 오갔던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 이전의 작업은 제트리피케이션 현상 자체를 객관적으로 보는 작업이었다. 차갑고 냉철하게. 서교동, 인사동, 성북동 등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에서 사람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로 악기를 만들고, 소리를 기록했다. 당시에는 거리를 두고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관찰하듯 봤지만 테이크아웃드로잉 때 소송의 직접 당사자가 되면서 훨씬 안으로 들어갔다.

현대미술과 젠트리피케이션이 무슨 관계가 있어?’라고 얘기할 수 있지만 가난한 예술이야 말로 임대료 상승의 치명타를 받는 분야기 때문에 직접적 연관이 있다.

2010년도에 ‘아트스페이스 휴’라는 공간에서 ‘GPS 땅따먹기’라는 이름의 토지공유 개념의 작업했을 때만 해도 공유지는 환상 같은 개념이었다. 사람들이 토지를 개인 소유로 생각하는 경향이 너무 강해서 당시 공유지 개념을 조금만 얘기해도 ‘빨갱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공격당했다. 왜 토지가 물이나 공기처럼 공유재 개념으로 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다. 예전 자본주의의 끝을 달리던 포드주의자들도 땅에 대해서는 공유지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 테이크아웃 드로잉 사건을 기타 코드로 단어를 만들어 시로 만들었다. ⓒ신제현작가

테이크아웃드로잉 사건 이후 작품들은 거칠고 날것의 느낌이다. 작가 신제현은 이 감각들을 아카이빙했다.

인사동에서 전시를 하며 젠트리피케이션을 조사했다. 자주 가던 전시관들이 문을 닫고, 언젠가 내가 전시해야 하는 공간들마저 이전해버렸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작업 자체가 대부분 생활에서 느꼈던 불합리함이나 시스템에서 오는 문제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기존에 해왔던 아카이빙 작업들은 항상 차분하고 세련되고 보기 좋은 작품들이었다.

사람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을 소리로 아카이브 하는 것과 같은 철학적인 개념을 좋아한다. 비주얼도 예쁘고, 차분하니까. 하지만 현실의 젠트리피케이션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테이크아웃드로잉 이후의 작품들은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젠트리피케이션 이전 작업은 미술 작품으로서의 작품이었지만 테이크아웃드로잉 사건 이후 작품은 사회 운동의 모습이다.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 미니어처 퍼포먼스나, 음계로 시를 만들어 보여주는 방식이라든가, 무용수들과 함께 낙지를 삶아 먹고 요리하는 퍼포먼스처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거다. 퍼포먼스와 현대미술이 접목돼 폭발되는 지점을 찾는 게 많은 도움이 됐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사라졌지만 그 경험을 토대로 만든 작품들은 긴 시간 작업해 나갈 미래를 위한 공부였다.

▲ 테이크아웃 드로잉. 용역들이 깨고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 정면 유리에 작품을 만들어 깰 수 없도록 설치 중인 모습 ⓒ신제현작가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아픈 이야기니, 미술계의 노동권 이야기를 해보자.

아마 더 아프고 씁쓸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래도 요즘에는 노동권 개념이 조금 나아졌다. 예술에 대입하기 어려운 개념이 노동권이다. 정신적 가치를 물질적 가치로 어떻게 치환하느냐가 관건이다.

유럽은 예술의 노동권 개념이 발달했다. 이 개념을 한국식으로 어떻게 가져오느냐가 첫 번째 문제고, 국내 미술작가가 너무 많다는 게 두 번째 문제다.

독일이나 프랑스는 한국보다 훨씬 더 좋은 기반이 있다. 미술관과 예술가 지원비가 많고 시민의식도 높은 만큼 문화 소비자들도 많다. 국가 관료들이 문화 예술에 대한 소양이 있는 사람들이다보니 예술의 가치를 잘 파악하고 인정해준다. 말이 통하는 관료들과 일할 수 있는 구조다. 국내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우수한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배출되는 작가의 수가 한국의 10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가 발달하는 속도에 비해 문화·예술의 발달 속도가 느리다. 그러다보니 수당이나 노동권에 대해 이제 막 생각하는 단계다. 어떤 행사에서 목수 일을 해주신 분이 일당으로 30만 원을 받는데, 밤새 글 쓰고 종일 전화를 돌리는 격무에 시달리는 큐레이터들은 그 돈을 못 받는다더라.

이상하게 한국은 무언가 물질적으로 보이는 일들에는 돈을 지급해야한다는 사고가 확실한데, 글을 쓰거나 작품을 만들거나, 연주하는 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은 노동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열악하다.

노동의 가치가 천시되고 있다. 창작물의 가치를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한다.

물질적으로 측정 가능한 가치에 자본을 등가 교환하는, 소위 말하는 모더니즘적 자본체제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무형의 노동이 사회에서 인정받으려면 평가, 미술로 치면 비평의 역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작가 신제현의 작업물이 왜 좋은지에 대해 쓰는 글들이나 인정하는 평가, 시스템, 권위 이런 게 없기 때문에 결국 진짜 열심히 작업물을 만드는 행위들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게 문제다.

미술계에서 아티스트 페이(임금)에 관한 문제가 처음 나왔을 때 의구심이 들었던 게 ‘어떤 작가에게 얼마를 줄지 측정하는 게 가능할까’였다. 외국은 한국과 달리 비평계가 발달해 작가들에 대한 등급(Hierarchy)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술과 같은 무형의 가치를 어떻게 평론하고 등급을 나눌 건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등급을 나눈다고 하면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문제는 못 하는 사람이 자꾸 상금을 받는 거다. 그게 적폐다. 예술가의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측정하고 어떻게 아카이브(기록) 할지에 대한 고민은 물론이고, 신작을 한 작가에게는 몇 퍼센트, 구작을 한 작가에게는 몇 퍼센트를 줄 것인지 등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사운드 퍼포먼스라는 장르가 독특하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학교 수업 시스템 자체가 매체가 정해져 있지 않아 사운드, 퍼포먼스, 설치, 사진, 드로잉을 다 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거기에 설치,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이런 것들이 다 섞여있다. 사운드 퍼포먼스라는 명칭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우라고 그 단어를 썼다. 드럼으로 탑을 쌓고, 타투를 하는 등 시각적인 부분도 강하기 때문에 사운드 퍼포먼스라고 부르기에 애매한 부분이 있다.

▲ 테이크아웃 드로잉 사건을 시로 만들고 기타 코드로 단어를 만든 후 모터 장치가 기타 현을 치면 저 음이 나오도록 한 설치 작품 ⓒ신제현작가

형태가 없는 사운드 퍼포먼스를 계약서 형식을 빌려 판매 했다. 그간에 찾아볼 수 없는 방식의 예술 작품 판매였다.

작품의 개념으로서의 판매는 있어도 실제로 그게 판매되고 유통되는 것에 이 정도로 구체적으로 접근한 사례는 없었다. 그것 때문에 주목을 많이 받았다. 전시기획자 한 명이 유니온 아트페어를 만들었다. 올해가 3회째다. 보통 미술품은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통해 판매 하거나 옥션에서 경매 된다.

실험적인 작품들이 해외서는 판매되지만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처음에는 젊은 작가들이 팔릴 것 같지 않은 상업성이 적은 페인팅이나 사진, 설치 작품들을 가지고 나왔다. 어차피 안 팔리니까 재밌게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퍼포먼스를 계약서 형태로 판매했다.

그동안의 퍼포먼스를 정리할 겸 쭉 보니, 그 중 20-30개 정도는 똑같이 재현할 수 있는 형태였다. 그 작품들을 정리해 일 형태로 만들었다.

보통, 사람들이 예술품을 사는 이유는 유일무이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퍼포먼스라는 건 언제 어디서든 해버리면 끝인 만큼 에디션 개념을 넣어 판매했다. 퍼포먼스를 비싼 가격에 사면 1년 동안 다른 곳에서는 공연하지 못하도록 제약을 걸었다. 비가 오면 어떻고, 전기가 나갔을 때 책임 소재를 어떻게 할 것이며, 퍼포머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까지. 다양한 변수를 계약서에 명시했다.

퍼포먼스가 판매가 안 되지 않는 이유는 형태가 없기 때문이다. 구매자가 생각할 수 있는 불안요소들을 문서화시켜 안정감을 줬다.

사람들이 퍼포먼스 전시에는 페이를 거의 안 준다. 퍼포먼스를 하는 작가들의 경우 돈을 받아본 적이 없고, 퍼포먼스를 요청하는 입장에서도 불안 요소가 많으니 비용을 책정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계약서 형식 자체를 누구나 볼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오픈된 자료로 공유했다. 계약서를 통해 퍼포머 본인도 무엇을 신경 써야 하는지 돌이켜 볼 수 있다. 비영리 공간은 더 싸게, 상업 공간은 더 비싸게 어떤 공간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하느냐를 따로 측정 했다. 퍼포먼스를 판매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퍼포먼스라는 게 노동시장 안에서 어떻게 유통될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는 게 다른 목표였다.

▲ 테이크아웃 드로잉. 2015년 분쟁 당시 가수 싸이의 변호사로 부터 받은 괴롭히기 식 고소 고발장을 낭독하는 퍼포먼스 ⓒ신제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