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더듬고 새로운 공동체를 말하다
기억을 더듬고 새로운 공동체를 말하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8.04.27 14:55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모를 넘어 일상으로 마주하는 세월호
[커버스토리] 세월호, 우리, 나 ③ 고민

국가의 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국가는 이러한 의무를 져버렸다. 국민들은 그러한 국가를 4개월간의 촛불시위를 통해 꾸짖었다. 참사의 진상을 밝히는 일과 더불어 재난을 극복하는 공동체의 역할을 규명하는 작업이 과제로 놓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다양한 주체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나아가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사회운동을 번져나갔다. 주목할 점은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다.

과거의 재난과 달랐던 세월호

국민 대다수의 뇌리에 남아있는 재난 몇 개를 꼽자면,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9년 화성 씨랜드 화재,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등이다.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비리와 함께 미흡한 초동대처 같은 문제가 단골로 등장했다. 매번 ‘한국사회의 민낯’이 드러나지만, 정작 달라지거나 나아졌다고 평가할 만한 내용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인재를 반복해서 겪으면서도 얻은 교훈이 없었던 것일까.

오히려 달라진 것은 참사에 대응하는 시민들의 자세였다. 유해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하의 재난에서 시민은 위문단의 형식으로 국가에 동원되는 존재였다”고 지적했다. 동원이 참여로 바뀐 때는 1995년으로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수많은 시민들이 구조와 자원봉사, 헌혈에 참여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에서는 “시민이 직접행동을 통한 정치적 애도의 주체로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민들의 행동은 또 다른 양상을 보였다. 시민들은 팽목항과 안산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온라인과 현실공간에서 추모행렬에 동참했다. 유해정 연구위원에 따르면, 한 걸음 나아간 것은 시민들의 직접행동이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요구하는 사회운동으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정원옥 중앙대 문화연구학과 교수는 이를 “피해자와 시민 간 애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분기점”으로 정의했다.

지난 4월 14일 전남 목포 도서문화연구원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시민들은 세월호를 어떻게 추모해 왔는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공동체의 상은 무엇인지 등 다양한 소재가 다뤄졌다. ‘세월호와 촛불, 그리고 나라다운 나라’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는 사회학자들과 유가족, 그리고 목포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가 참석했다.

주제 발표는 세 명의 사회학자가 맡았다. 김민환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는 안산 화랑유원지 부지에 건립이 추진 중인 가칭 ‘생명안전공원’을 통해,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를 조명했다. 유해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세월호 참사 이후 시민들의 행동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발전했는지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정원옥 중앙대 문화연구학과 교수는 재난이라는 사회적 고통을 극복하고자 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돌아봤다.

기억하는 공간 생명안전공원, 공동체의 첫 걸음

김민환 교수는 안산지역의 주요 화제로 떠오른 생명안전공원을 통해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에서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 질문을 던졌다. 생명안전공원은 정부합동분향소가 있던 화랑유원지에 들어설 계획이다. 4.16가족협의회 추모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가족들과 정한 원칙 두 가지를 소개했다. 첫 번째는 “아이들을 시 외곽으로 쫓아내지 않고 공동체 한복판에 품어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추모공원은 아이들이 공동체에게 주는 선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민환 교수는 안산 생명안전공원은 과거 사례와 달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 번째는 접근성 문제다. 성수대교 붕괴 희생자의 위령탑은 교량의 북단 나들목 한가운데 있다. 대구지하철참사 이후 건립된 시민안전테마파크의 경우 대구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팔공산 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김민환 교수는 “공간적 격리”라는 표현으로 기존의 추모시설이 갖는 한계를 비판했다. 두 번째 원칙은 과거의 추모시설이 단순히 참사에 관한 기능만 수행했다면, 안산 생명안전공원은 일상적인 공간이 돼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김민환 교수가 전한 안산의 분위기는 험악했다. 생명안전공원 건립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앞둔 2017년 1월 반대 현수막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생명안전공원을 악의적으로 ‘납골당’이라고 표현했다. 공원의 일부에 봉안시설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였다. ‘예은아빠’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시의원 예비후보들 포스터에 자기 이름보다 더 크게 ‘납골당 반대’라고 썼다”면서 “시민들이 정서적으로 반대할 수는 있지만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올해 2월 20일 제종길 안산시장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추모공원은 화랑유원지의 한 곳에 희생자 봉안시설을 포함해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부지가 결정된 후에도 일부 보수단체와 야당 시의원들은 ‘납골당’ 프레임을 거두지 않고 있다. 앞서 대구에서는 2008년 개관한 시민안전테마파크에 봉안시설 설치 여부를 둘러싸고, 대구시와 유가족이 법적 다툼까지 벌인 일이 있었다. 김민환 교수는 “우리는 지난 4년간의 기억을 공유한 ‘기억공동체’의 성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이전과 다른 이후의 일상을 위해 생명안전공원이 공동체의 첫 걸음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