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를 바라보는 열 한개의 시선
한미 FTA를 바라보는 열 한개의 시선
  • 박인희 기자
  • 승인 2007.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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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권 문제’부터 ‘관심 없다’까지
거리에서 들은 각계각층의 ‘날’ 목소리

2007년 연초부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는 이슈는 단연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이다. 한국의 운명을 결정지을 중대한 사안으로 떠오른 한미 FTA 협상이 본격적으로 개시된 작년 2월 3일부터 현재까지 우리 사회는 많은 파열음을 쏟아내고 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찬·반 중 어느 한쪽의 입장만이 옳다고 단정 짓기는 힘들지만 분명한 점은 미국과의 FTA가 과거 다른 나라와 맺은 FTA와 견줘 개방 대상의 폭이 넓고, 국가의 기능을 좁히는 ‘높은 수준’의 협정이기에 우리 경제와 사회가 겪게 될 큰 변화에 많은 이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언론사들은 연일 한미 FTA에 대한 기사로 신문지면을 장식했고 거리에서는 집회를 통해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가운데 농민, 취업준비생, 미화원 등 11인이 말하는 한미 FTA에 대한 ‘진짜’ 목소리를 담았다. 이들이 사천팔백만 국민들의 여론을 모두 대표하지 못하지만 여태껏 우리가 몰랐던 한미 FTA에 대한 다른 시선들을 응시해보자.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한미 FTA와 불법집회
양측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린 채 많은 논란 속에 실시된 한미 FTA 협상은 지난해 6월 5일 미국워싱턴에서 열린 1차 본협상을 시작으로 6차까지 진행되어 현재 2월 11일 미국 워싱턴에서 7차 본협상을 앞두고 있다.

6차까지 진행된 협상은 무역구제, 자동차, 의약품 등 3대 핵심쟁점을 제외한 여타 분야에서 일부 진전을 이루었다. 양국은 상품무역 분야에서 1026개 품목(한국 569개, 미국 457개)에 대해 관세를 즉시 철폐하기로 합의하고, 금융 분야에서는 국책금융기관 중 수출입은행과 신용보증기금은 정부기관으로 간주해 FTA협정 적용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쇠고기 뼛조각 문제를 FTA와 연계시키는 논란, 쌀을 예외 품목으로 인정하는 여부, 농산물 관세철폐 이행기간 등이 여전히 쟁점사항으로 남아있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상의 몸통에 해당하는 무역구제와 농산물, 자동차, 의약, 섬유 등 핵심쟁점 사항을 남겨 둔 가운데 7차 협상을 앞두고 있지만 타결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예측된다.

한편 한미 FTA 6차 협상이 실시된 협상기간 내내 FTA를 반대하는 집회들이 전국 곳곳에서 이어졌다. 협상 첫날인 1월 16일, 대학로에서는 경찰추산 35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민주노동당의 결의대회와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의 ‘한미 FTA저지 범국민대회’가 실시되었다.

 

장내 한미 FTA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한미 FTA 반대목소리를 내기 위해 집회장에 모였다. 시골에서 상경한 이들은 차가운 길바닥에 노숙도 마다하지 않았고, 어둠이 깔리면 손에 촛불을 들었다. 집회장 안은 ‘반대’의 목소리로 가득했지만 그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어떤 이들은 FTA로 당장 죽을 일만 남았다고 눈물을 글썽이고, 또 어떤 이는 진짜 괴물은 미국이라 주장한다. 그들은 과연 어떤 이유로 반대를 외치는지 집회에 참가한 6인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농민 홍관표 씨(57세)
전체를 위해 소수는 희생되어야 하는가?     

이런게 민주주의여? 그럼 농민은 국민도 아닌가? 우리나라 경지면적이 1.56핵타르면 미국은 100핵타른데 이건 다윗과 골리앗 싸움도 아니고, 닭 모가지 비틀면 바로 숨 통 끊어지듯이 저항 할 수 없는 싸움이 되는 겨. 평화적으로 시위하면 여론에서 누가 주목이라도 해준데? 언론부터가 잘못이야. 내가 WTO협상 때부터 서천에서 상경해 집회에 참석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언론이나 정부나 우리 농민들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게 없어.

장충단공원 집회에 참가한 김모 씨
오죽하면 여기까지 왔겠는가?
휴, 오죽하면 농사짓다 이곳까지 왔겠어? 어젯밤은 이 자리(장충단공원)에서 잤는데 추우면 막걸리를 돌려마셨지. 지금 미국 농업과 경쟁하면 우리는 안 돼. 몇 개 품목만 가지고 들어와도 우리 농민들 다 죽을 수 있다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이제 나도 몰러.

광명6동 철거민
FTA는 IMF보다 더 큰 고통 될 것
사실 우리는 다른 단체와 연대하러 여기 왔는데 나는 FTA에 대해서 세세하게는 잘 몰라요. 그래도 나라에 농사가 흉년 들면 먹고 살기 힘든데, 이건 분명히 손해보는 장사고 도둑놈 소굴에 자기발로 걸어가는 것과 다를 게 없죠. 요즘 못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한번 봐요. 지금도 아플때 병원 한번 가기 힘든데 한미 FTA 때문에 의료비도 올라갈 테고 그러면 잘 사는 사람들은 더 잘살고 못 살고 어려운 사람들은 아파도 병원 한 번 찾기 힘들 거 아니에요. 아마 IMF 때보다 우리 서민들은 더 힘들어질 걸요.

민주노동당 당원 이모 씨(30세)
자유무역이 아닌 불평등 협상

왜 반대 하냐고요? 한미 FTA는 반대할 명분이 분명하죠. 겉으로는 자유무역협정이라 말하지만 우리는 미국과 대등한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협상내용도 공개되지 않고. 며칠 전에는 반전집회에도 참가했어요. FTA는 신자유주의흐름과도 연결되는데 함께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우리나라 경제를 식민지화 시키게 될 게 뻔해요.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최영재 사무국장(35세)
문화는 교역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영화는 일반 상품과 다릅니다. 영화 속에는 한 민족의 생활, 정서가 담겨져 있어 교역의 대상이 될 수가 없어요. 아무리 헐리우드의 자본과 기술력이 앞서 있더라도 미국영화가 우리 민족의 고민까지 담을 수 있겠어요? 우리 영화인들은 미국의 압력에 의한 일방적인 스크린쿼터 폐지는 일종의 문화적 침략과 같다고 생각해요.

대학원생 조현경 씨(29세)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극히 일부분”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잘 사는 사람은 최고의 부를 누리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나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미국과의 FTA는 제 삶과도 직결되는 문제라서 여기 나왔어요. FTA가 시작되면 당장 등록금도 오르고, 물도 사유화 될 거잖아요 의료보험이 가능하겠지만 혜택이 줄어들 것이고. 지금은 당연하고 기본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누리기 위해 우리는 더 큰 희생을 치러야겠죠. 뭐, 물론 제 또래 중에는 한미 FTA를 찬성하는 학생들이 있는 것도 알고 있어요. 특히 경영과 경제 관련 학과 학생들이 대부분 찬성하는 분위기인데 그래도 그 친구들 말처럼 과연 아무런 희생 없이 경쟁력이 그리 쉽게 올라갈까요? 요즘은 경제가 어려워지면 대학사회에서 체제에 대해 반대하기보다 자신들의 가치, 경쟁력을 높이려고 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장외 한미 FTA
한미 FTA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던 시각, 집회 밖 세상은 한미 FTA와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집회장 근처를 지나던 시민들은 시위단과 늘어선 전경들을 향해 시선을 한번 보낼 뿐 다시 바쁜 걸음을 재촉하며 시위대를 서둘러 지나친다. 그들의 삶에 한미 FTA는 어떤 의미일까? 집회에 참가하지 않은 5인에게 한미 FTA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장충단공원 주변을 청소하던 환경미화원 오모 씨(55세)
이제는 개방이 필요한 때
한미 FTA 말도 마세요. 요즘 매일 집회한다고 하루에 쓰레기가 5톤 차로 4트럭이 나옵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더 심했는데 요즘은 괜찮아 진거예요. 하여튼 무리하게만 진행되지 않았으면 좋겠네.     뭐, 사실 이렇게 한다 해서 협상이 중단 되는 것도 아닌데. 솔직히 우리 것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 우리나라 자원도 부족한데 개방해야죠. 우리나라에서 생산 못 하는 품목은 받아들이고 생산해 팔 수 있는 것은 미국에다 많이 팔고. 이제 한미 FTA는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된 것 같아요.

대학생 박모 씨(32세)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
학교 근처 지나면서 반대집회 많이 봤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찬성하는 입장이에요. 저 뿐만 아니라 같은 과 친구들도 많이들 찬성해요. 왜냐하면 자동차와 같이 미국에 수출하는 품목에 관세가 철폐되면 우리나라 기술력으로 미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을 건데 경쟁을 통하면 가격은 낮아지고 품질 은 더 높아질 거라 생각해요. 우리나라 현대차가 품질에서 미국차에 밀리지 않잖아요. 우리나라가 미국과 경쟁하면 무조건 불리하다고만 볼 수 없죠.

버스운전기사 전모 씨(50세)
희생이 따르지만 거스르면 더욱 불리해질 것
뭐, 협상이 잘 이루어지면 이익이 많다는 소리인데, 농민들한테는 희생이 따르겠죠. 그래도 그 몇몇을 위해서 무조건 거부할 수도 없잖아요. 밖에서는 매일 FTA 때문에 시끄러운데 우리는 매일 하는 게 운전이니 크게 생각하지도 않고 버스기사들 모여봤자 FTA에 대해 얘기도 안 해요. 만약 협상이 무산된다면 미국이 가만 있겠어요? 어떤 식으로도 압력을 넣겠죠. 결론적으로 지금 추진하지 않으면 더욱 불리해지지 않겠어요?

취업준비생 백모 씨(23세)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반대 한다
한미 FTA, 당연히 반대죠. 멕시코 보세요. 선진자본으로 국영기업의 민영화가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도 급여의 60%를 수도세로 내는 날이 올 걸요. 지금 미국이 몇 해째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데, 한미 FTA는 미국이 아시아 시장을 경제적인 돌파구로 삼으려는 전략이에요.
특히 쇠고기 수입 같은 경우는 국민들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우리가 당당하게 거부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 정부는 정당한 권리도 포기한 채 협상체결에만 급급해 근시안적으로 협상을 진행시키고 있어요.

고등학교 과학교사 전모 씨(42세)
미국은 타짜다
사실 전 반대도 아니고 찬성도 아닌데, 그래도 한미 FTA는 이제는 피해갈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었다고 봐야죠. 그렇다면 문제는 이제 협상력인데. 사실 이제 와서 찬반으로 나누어지기보다 한미 FTA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드네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협상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지만 이건 얻을 건 얻고 내줄건 내주는 협상이 아닌 우리가 일방적으로 퍼주는 거 아니에요? 우스갯소리로 도박판에 비교하자면 우리는 풋내기 노름꾼에 불과하고 미국은 지금 꽃놀이패를 쥐고 있는 타짜 아닌가요.


집회장에서 만난 6인과 집회에 참가하지 않은 5인이 바라본 한미 FTA. 이들의 의견이 전문적인 견해는 아니지만 한미 FTA를 둘러싼 우리 사회에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오늘의 풍경을 볼 수 있다. 한미 양국의 생존게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하지만 공론을 거부하는 정부와 이런 정부를 철저히 불신하고 있는 국민들 사이에서 우리사회는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느 한 계층을 위한 FTA가 아닌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FTA가 되기 위해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열려있는 ‘공론의 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프로파간다 VS 농심(農心)의 눈물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이하 체결지원위원회)와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가 내놓은 한미FTA 찬반 광고가 눈길을 끌고 있다.

체결지원위원회의 광고는 오랜 시간 개척정신으로 살아온 우리 민족의 자긍심과 긍지를 내세우며 지상파 및 지하철, 거리대형광고판에서 대대적으로 방영되고 있다. 체결지원위의 광고를 접한 시민들은 “국민들의 혈세를 홍보비용으로 사용하며 한미 FTA에 대한 장밋빛 미래만을 보여준다”고 질타하며 “정책홍보가 아닌 프로파간다(선전선동)일 뿐”이라고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반면 범국본의 한미 FTA 저지광고 ‘고향에서 온 편지’는 농촌을 배경으로 한미 FTA에 최대 피해자인 농민을 등장시켜 농민의 눈물을 통해 절박함을 나타내고 있다. 방영금지로 인터넷상에서 범국본의 광고를 클릭한 많은 누리꾼들은 “한미 FTA는 벌써 시민들의 합법적인 권리인 ‘집회의 자유’마저 차단하고 있다”, “(농민의 눈물이) 정말 찡하다”,“(FTA는) 국민을 상대로 한 게임이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