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일어서다
시민, 일어서다
  • 윤찬웅 기자
  • 승인 2018.04.2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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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시민의 각성, 기존 운동에 대한 반성
[커버스토리] 세월호, 우리, 나 ④ 애도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깊고도 다양하다. 국가의 재난 대응 시스템 부재 비판, 경제성과 효율성 추구라는 명목으로 사회 전반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에 대한 경계 의식이 촉발됐다. 세월호 유가족과 특별법에 대한 오해와 진실 공방을 둘러싼 시민 간의 갈등도 뿌리 깊게 남았으며 대통령 탄핵 인용이라는 헌정 초유의 사건을 유발한 촛불 혁명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2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출범에도 진실 규명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의 눈초리가 남아 있다. 안산 생명안전공원 건립을 둘러싼 지역 사회의 갈등은 봉합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그 골이 깊다. 다양한 형태의 비극에 대한 트라우마 극복은 우리 사회 전반에 남겨진 과제라 할 수 있다. 그중 일군의 시민들이 보여주는 비극 극복 의지에 착목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목격자에 의한 비조직적, 자발적, 정치적 애도

14일 목포지역실천회의, 한국사회학회, 참여와혁신이 주최한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에서 열린 ‘세월호와 촛불, 그리고 나라다운 나라’ 토론회에서 유해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재난을 목도한 시민들의 비조직적이고 자발적인 정치적 애도에 주목했다.

정치적 애도는 애도가 슬픔 자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 훼손에 따른 극도의 비통함을 사회 변혁 요구로 잇는 것을 말한다.

사회운동과 접점이 없던 생활인들이 자발적으로 추모 커뮤니티에 참여, 직접 피켓을 만들어 광장으로 나섰다. 서명 용지를 인쇄하고 노란 리본을 만들어 문화제에 참여했다. 이들은 매체를 통해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국가 권력의 부재와 무능을 몸으로 체감했다. 국가 기능에 대한 환상이 처참히 깨지면서 참사에 대한 애도는 동정과 연민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력구제가 불가능한 사회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고자 하는 지속적 정치 활동으로 이어졌다.

기존의 사회운동과의 차이점은 그 주체 측면만이 아니다. 기존의 운동이 활동가들에 의해 여의도 등 주류 정치와의 접점의 영역에서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이루어졌다면 시민들의 정치적 애도는 생활인으로서 자기 삶의 터전에서 이뤄졌다.

유 연구위원은 “보통 사람들은 매일 광화문, 국회에 갈 수가 없다”며 “애도 키우고 생업, 학업도 해야 하는 사람에게 불가능한 영역이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지속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제는 광화문 광장이 아니라 우리 집 앞에 구청, 동사무소, 전통시장으로 시위를 하러 간다. 그래야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피켓을 들 수 있고 리본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는 것.

또한 운동이 개인화하면서 자신의 역량과 취향에 맞는 애도가 이뤄졌다.

유 연구위원은 “애도라는 전통적 형식, 피켓, 시위 등이 아니라 자기가 일상에서 제일 잘하고 지속해서 재밌게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행위가 이뤄졌다”며 “페이스북 등을 통한 자기활동의 외화가 서로를 응원하고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아이들의 꿈을 모아 꿈 목걸이를 만드는 바느질을 한다거나, 아이들의 생일마다 직접 케익을 갖다 놓는 등 개인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섰다. 결국 자기 삶의 영역과 반경, 그리고 역량 내에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려 했던 것이 새로운 애도의 주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삶의 재건이라는 새로운 애도

한편 유 연구위원은 새로운 애도의 특징으로 시민의 각성을 통한 삶의 재건을 꼽았다. 유 연구위원은 “가장 기억나는 표현은 세월호를 통해 시공간과 인간관계가 달라졌다는 것”이라며 “예전에는 회사 끝나고 술 마시고 주식이니 집값이니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제 모임을 하더라도 세월호 관련 책도 읽고 리본도 만드는 등 가치관이 변한 것”이라고 밝혔다.

생활인으로서 잊고 있던 시민의 역할에 대한 각성과 그에 따른 관계와 삶의 변화 정도가 그 과정만큼이나 극적이었다는 지적이다. 유 연구위원은 애도 행위를 통한 자기 삶의 변화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자신감을 줬다는 게 시민들의 공통된 응답이었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세속적인 몰두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무엇이 될까, 어떻게 돈을 모아서 아파트를 장만할지, 우리 아이 교육을 잘 시켜서 어떻게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을지가 주된 고민이었다.

이제는 그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가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을지, 주변에 아파하는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굉장히 소중하고 힘이 될 수 있는 존재라고 느낀다. 이와 같은 변화는 ‘삶의 재건’으로까지 표현된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이러한 행위 양식의 형성에는 기존 운동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활동가들의 용어나 정형화된 운동 방식이 익숙하지 않아 동화되지 못한 것과 더불어 사회 문제에 접근하는 사회운동 단체의 방식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

유 연구위원은 “운동단체들이 세월호에 대한 활동을 줄이고 다른 활동으로 넘어가는 데에 대해 시민들은 아이들이 아직 돌아오지 못했는데 어떻게 떠나갈 수 있느냐는 배반감으로 단체에 소속되길 거부하기도 했다”며 “유가족만이 유일한 좌표였고 당장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도 유가족과 동행하고 자리를 채우는 것으로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화된 운동과 고립된 기존 운동 방식의 갈등이 현대 민주주의 시민운동의 한계를 보여주는 단편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 연구위원은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집합적 행동의 개인화로는 해소될 수 없는 운동사회의 정치사회적 책무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비조직화된 시민들의 사회운동자적 의미와 그에 대한 보완을 우리 운동이 돌아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상대 사회학과 김명희 교수는 “세월호 참사는 첫째 세월호가 침몰한 사건, 둘째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 셋째 국가가 진실을 은폐하려는 사건 등 세 가지 프레임이 겹쳐있다”며 “기존의 참사들처럼 단순히 피해자와 목격자의 범주에서 구분이 아니라, 언론이나 공론장을 대신해 진실을 전달하는 일종의 진실집단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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