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를 뛰어넘는 공동체를 형성하다
울타리를 뛰어넘는 공동체를 형성하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04.2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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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이후 안산지역의 공동체회복 담론과 실천
[커버스토리] 세월호, 우리, 나 ⑤ 모색

세월호 참사 4주기 안산지역 준비위원회는 올해 안산지역 4주기 행사명을 ‘기억하고 희망하는 봄’으로 결정했다. 4년이 지났음에도 수많은 공동체가 그날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어떤 희망을 품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는 가운데, 정원옥 중앙대 문화연구학과 박사는 4.16토론회 <세월호와 촛불, 그리고 나라다운 나라> 세 번째 발제에서 세월호 이후 안산지역에서 어떤 공동체가 만들어졌는지 설명한다.

세월호 이후 안산은 “기억하고 회복하자”

2014년 4월 16일 이후 안산은 세월호의 슬픔을 상징적으로 투영하는 지역이 됐다. 안산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가장 큰 인적 피해를 입은 지역인 만큼 지난 4년 동안 지역 안에서 사회적 고통(Social Suffering)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이 전개됐다. 정원옥 박사는 안산에서 전개된 4.16 관련 활동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4.16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보존·기록하려는 추모·기억실천이다. ‘정부합동분향소’, ‘4.16기억전시관’, ‘4.16기억교실’ 등 장소를 매개로 하는 기억실천이 이루어졌으며, 희생자의 백서 발간, 유가족에서부터 일반시민에 이르기까지 4.16의 경험을 폭넓게 기록한 구술 작업 및 아카이빙 작업 등 시간을 매개로 한 기억실천도 함께 이루어졌다.

두 번째는 안산시가 주체가 되어 추진하고 있는 4.16 관련 활동들이다. 안산시는 2016년 7월, 유가족, 주민대표, 사회단체, 전문가, 안산시 및 중앙부처 공무원 등 24명이 참여하는 ‘416세월호참사 안산시 추모사업 협의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2017년 12월 15일에는 안산시 최초로 8,796명의 주민발의를 거쳐 마련된 ‘4.16 정신을 계승한 도시비전 수립 및 실천에 관한 기본조례(이하 4.16조례)’가 안산시의회를 통과하였으며, 2018년 2월 20일에는 제종길 안산시장이 희생자 봉안시설을 포함한 ‘4.16생명안전공원’을 화랑유원지에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마지막 세 번째는 4.16 관련 시설 및 단체들의 활동이다. ‘안산온마음센터’, ‘힐링센터 0416 쉼과힘’, ‘치유공간이웃’, ‘안산생면센터’, ‘복지관네트워크 우리함께’ 등이 대표적인 예로, 피해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돕고 공동체회복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정원옥 박사는 “세월호 이후 만들어진 이러한 시설 및 단체들은 피해자에 대한 심리적 안정과 공동체 회복을 주요 활동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난 이후 사회적 고통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현장”이라고 평가했다.

피해자와 비피해자가 함께 만드는 공동체, 하지만…

정원옥 박사는 재난 이후 사회적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자 지역사회의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 공동체회복 담론이라고 말한다. 실제 ‘416 희망과 길찾기 결과보고서 : 1000인이 말하다’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무엇을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안산 시민들은 진실규명에 이어 공동체의 활성화를 우선적 과제로 꼽았다. 안산 시민들 역시 4.16이 낳은 사회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자 과제로서 공동체의 역할에 기대를 걸었으며 앞서 나열한 활동들을 실천해 온 것이다.

정원옥 박사는 “재난의 수습 및 해결 과정이 오롯이 피해당사자의 몫으로 치부되어왔던 한국사회에서 4.16 이후 다양한 공동체들이 등장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안산 지역에서는 공동체회복을 표방하는 활동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며 “이웃과 공동체야말로 재난 이후 안산 지역사회가 새롭게 눈을 뜨게 된 대안적 가치였다고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지역공동체의 모습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재난이 수습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더 흔하게 목격하게 되는 것은 피해지역 내부가 극심한 갈등과 분열에 휩싸이게 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기억교실의 이전을 둘러싸고 단원고 재학생 학부모들과 유가족들 간의 지난한 갈등 과정이 있었고 4.16조례가 통과되기까지의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4.16생명안전공원의 설립 계획이 발표되고 난 현재까지도 지역공동체는 회복되기보다는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고 있다.

정원옥 박사는 “그 과정에서 상처받는 사람들은 유가족들만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기억교실을 이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단원고 재학생 학부모들과 4.16생명안전공원이 건립될 화랑유원지 인근 지역주민들 또한 상처를 받는다”며 “4.16 이후 안산 지역에서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우선적 과제로 제시되었던 공동체회복 담론 또한 공동체에 대한 이러한 환상에 기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반문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피해자들은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비피해자들과 같은 입장일 수 없으며, 피해자들과 비피해자들이 ‘우리’라는 공동체로 형성되어가는 과정은 결코 아름답거나 조화로울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원옥 박사는 “자식을 잃고 남은 생을 던져 싸우고 있는 유가족들은 비당사자들이 하루빨리 만들고 싶어 하는 공동체 내부로 결코 조화롭게 포섭될 수 없으며 유가족들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사건이 해결되어갈수록 피해자 공동체 내부에서도 새로운 갈등과 분열은 끊임없이 발생하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이러한 입장의 격차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분할선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공동체회복 담론은 피해자들에게도, 피해자들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되었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비피해자들에게도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며 “피해자와 비피해자는 ‘우리’가 아니라는 것, 비피해자들도 상처를 받으며, 피해자와 비피해자를 나누는 경계가 열리지 않는 한 재난 이후의 공동체는 상상될 수 없다는 점에 대해 먼저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타리 넘어 공동체를 향하여

그렇다면 공동체란 어떤 것일까? 이날 토론회에서 정원옥 박사는 안산시 상록구 일동 마을공동체인 ‘울타리넘어’ 사례를 소개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던 2014년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서 ‘동네촛불’을 조직해 동네사람들과 함께 촛불을 들었던 김영은 씨는 그 과정에서 이웃과 공동체의 가치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됐다. 이후 김영은 씨는 동네촛불에 참여했던 이웃들과 함께 마을공동체 운동을 시작했고, 마을의 공동육아 모임이었던 울타리넘어를 확장하여 지역아동센터와 분리하고, 2015년 11월에는 협동조합마을카페 ‘마실’을 개업하면서 본격적인 마을공동체 만들기 운동에 뛰어들었다.

울타리넘어의 회원은 40명이며, 협동조합마을카페 마실의 출자조합원은 100명에 이른다. 마실은 울타리넘어 회원들이 출자금과 개인대출, 건물 담보대출을 통해 7억 상당의 건물을 매입하면서 현실화되었다. 총회를 통해 정관을 만들고, 운영진을 꾸렸으며 정식 가입을 통해 회비 납부를 하는 회원조직도 꾸렸다. 현재 울타리넘어는 ‘우리동네 지역아동센터’, 협동조합마을카페 ‘마실’을 운영하며 마을,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다양한 교육·문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영은 씨는 울타리넘어의 규모가 커지고 발전하면서 울타리넘어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봉착했다.

“4.16이 터지고 1년간 촛불행동을 하면서 각성들, 다짐들을 하면서 울타리넘어에서 마실로 확장을 했는데, 울타리넘어의 할 일이 많아지면서 또다시 울타리넘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많이 나왔어요. 저한테는 왜 울타리넘어에 집중하지 않고 자꾸 외부로 뛰려고 하느냐는 문제제기도 들어오고요. 마실은 운영이 어려운데, 울타리넘어도 뼈대가 부실하고, 예전에는 모두 같은 생각이었는데 달라진 부분도 있어서 끌고 가기가 너무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제가 작년에 생각해낸 게 공부를 하자는 거였어요. 우리는 왜 울타리넘어를 하려고 하는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내 삶은 이 안에서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가, 삶의 연대로서 울타리넘어는 이웃과 어떤 관계를 지향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함께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촛불도 혼자였으면 못했겠지만, 지금도 혼자라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요. 그동안 꿈꾸었고 공동체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부분을 실행할 수 있는 정책들이 올해 굉장히 많더라고요. 욕심부리지 않고 잘 가려서 해보려고요.”

(2018년 1월 7일, 협동조합카페 마실에서 진행된 김영은 씨 인터뷰)

정원옥 박사는 김영은 씨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지금 혼자라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는 김영은 씨의 말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인데, 결국 공동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구하기 위한 공부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여전히 공동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의 토론자 중 한 명이었던 조형근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HK연구교수는 공동체가 가진 내재적 문제를 지적했다. 미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의 말을 인용해 “공동체적 관계와 협력이 선의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익히고 훈련해야 할 하나의 기술”이라고 말했다. 리처드 세넷의 주장에 따르면 선의가 특정한 사회적 관계와 구조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선의가 확인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 즉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정원옥 박사에게 정동(情動)과 기술을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 질문했다.

정원옥 박사는 “공동체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동에 의해서 공동체가 구성되지만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기술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이어서 “기술이란 것은 공동체 내에서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며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수평적 권력을 만드는 것, 내부에서 타인과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등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원옥 박사는 4·16 이후 동네촛불을 들었던 이웃들이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한 마을공동체운동 울타리넘어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다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것, 그리고 나와 이웃, 삶의 연대로서의 공동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울타리넘어는 완성형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으로서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발제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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