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기 맞아 시민의 추모와 기억 의지 표명 잇따라
4주기 맞아 시민의 추모와 기억 의지 표명 잇따라
  • 윤찬웅 기자
  • 승인 2018.04.2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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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의 교훈, 방식과 내용 모두 고민 필요
[커버스토리]세월호, 우리, 나 ⑨참여

세월호 4주기를 맞아 2017년 인양된 세월호가 거치되어 있는 목포에는 대규모 추모 열기가 일었다. 다양한 집단과 단체, 개인의 참여로 각양각색의 추모 행사가 열렸다. 세월호 참사 이후 4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기억하라, 그리고 행동하라’라는 시민들의 선언은 그 아픔을 온전히 겪어온 이들의 가슴에 분명히 각인됐다. 잊지 않겠다는 말은 많은 시민의 세상을 향한 집단 선언이자 스스로를 향한 약속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또래의 감수성이 만난 세월호

14일에는 목포 신항에서 목포중고등학생연합의 ‘416 기억 및 다짐행사’가 열렸다. 목포 지역 대부분의 중고등학교 학생회를 포함, 많은 학생들이 행사에 참여해 합창 등 공연을 선보였다. 이튿날인 15일에는 ‘기억하라 행동하라’ 문화공연 및 다짐대회가 있었다. 무대는 기억마당, 행동마당, 다짐마당으로 나뉘어 노래, 시 낭송, 마임 공연, 무언극, 기타산조 공연과 서예 퍼포먼스, 인형극, 몸짓극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

행사에 참여한 한 학생은 “공연 기회를 얻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하고 세월호 진상규명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다”며 “세월호는 내 또래 학생의 친구들이 겪은 일이기 때문에 더 안타깝고 이맘 때면 지역 모두가 추모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신항 한 켠에는 목포지역 중·고등학생들의 세월호 추모 전시물이 설치되기도 했다. 그 또래 학생들의 감수성으로 쓰인 편지와 그림이 지난 참사를 새삼 돌이켜보도록 해 눈길을 끌었다.

신항은 거치된 세월호를 관람하고 기림 행사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추모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신항을 찾은 한 목포시민은 “4월 16일이 결혼기념일인데 해마다 세월호 사건이 떠올라서 매번 추모행사에 오려고 했다”며 “하루 빨리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

광주에서 왔다는 한 시민은 “차라리 구조되었다는 오보를 보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날 하루 동안의 기억은 평생 잊을 수 없다”며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포장하여 이야기한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추모를 넘어 자발적으로 행사 진행에 도움을 주러 나선 자원봉사자들도 눈에 띄었다. 한 고등학생 자원봉사자는 “신항에 설치될 솟대에 걸 노란 천에 시민들의 글귀를 쓰는 것을 돕고 있다”며 “원래는 대학생만 가능하다고 했지만 마음에 세월호 참사에 대한 울림이 있어 직접 인터넷을 통해 신청해서 자원봉사를 하게 됐다”고 전했다.

세월호,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목포 신항을 찾은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 가운데, 잊지 않겠다는 이야기만은 반복해서 등장했다. 4년 전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세월호 참사가 시간이 지날수록 잊히고 희미해져 가는 데에 대한 시민들의 반성과 반향이 존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한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성립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넘어 세월호를 과연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분명한 규정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할지 지금 어떻게 이야기하느냐”며 “세월호 이후를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세월호 진실 찾기를 방해하고 있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새 정부 들어 ‘특조위 2기’가 출범했고 세월호 선체는 곧 직립할 예정으로 어느 때보다도 진상 규명과 이에 대한 관심 증대가 중요한 시기라는 게 유가족의 뜻.

그러나 세월호 진상을 규명하는 일과 시민들의 비극을 잊지 않고자 하는 움직임 자체를 평가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다. 당장 4주기를 맞아 철거된 정부합동분향소 이후 문제를 고민해볼 때 더욱 그렇다. 합동분향소는 세월호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상징과도 같았다. 광화문의 세월호 천막 역시 철거 여론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눈에 보이는 상징물에 대한 논의는 진상규명에 대한 여론 조성과 맞닿아서도 고민할 지점이 있다.

이와 맞물려 현재 건립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안산 생명안전공원을 둘러싼 지역민과 유가족의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도 요원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생명안전공원을 세월호 추모를 넘어선 세계적 명소로 조성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화랑유원지 부지에 추모공원, 봉안시설이 들어선다는 결정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산 지역 일부 시민단체 및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의 생명안전공원에 대한 비판도 거센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에 대한 명확한 맺음 없이 시간이 흐르면서 추모 애도의 동력은 물론 점차 시민들의 연대의식까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15일 목포 신항을 찾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안산의 생명안전공원 관련 논란에 대해 “안산 시민들이 걱정하거나 반대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이것이 전체적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안산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세월호라는 하나의 사건을 기억하는 일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생명 안전에 대한 가치관을 사회적, 문화적 차원의 상징물로 담아내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박 의원은 “모두가 각자도생의 삶에 익숙한 것이 문제”라며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진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온 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하고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세월호 참사”라고 지적했다.

말보다 강한 이미지의 힘 고려해 볼 필요 있어

결국 시간은 흐른다. 과거 존재한 수많은 비극에 대한 기억이 그랬던 것처럼 유의미하고 분명한 노력 없이는 세월호의 기억 역시 언젠가는 처음의 선명함을 잃을 수밖에 없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폴란드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박물관 전시장에 걸려 있는 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말처럼 역사를 기억함으로써 다시금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세월호의 교훈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제주 4·3 항쟁 추모에 대한 역사의 굴곡을 돌이켜 볼 때 세월호를 둘러싼 추모 역시 수모의 과정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에서 열린 ‘세월호와 촛불, 그리고 나라다운 나라’ 토론회에서 이와 관련한 유의미한 제안이 있었다. 토론에 참여한 주윤정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트라우마란 언어의 매끈한 서사로 서술되고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에 각인되는 것”이라며 “인류가 끔찍한 고통의 경험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통해 세월호를 기억해 나가는 데에 참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주 선임연구원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 가운데 하나인 아우슈비츠의 예를 들었다. 주 연구원이 주목한 아우슈비츠 박물관의 주된 참상의 기록 방식 가운데 하나는 현재 부재하는 것에 따옴표를 치는 일이다. 아우슈비츠 박물관에는 안경, 가방, 혹은 신발 등이 수북이 쌓인 전시 공간들이 있다. 수없이 쌓인, 누군가가 소유했고 사용했을 일상적 사물들 앞에서 관객은 사물의 주인을 자연스레 떠올린다. 이는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있어야 할 사람들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으로,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설명하는 데에 그 어떤 언어적 기록보다도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 선임연구원은 “아이들의 휴대폰, 쓰이지 못한 구명조끼들, 과적으로 인해 수북이 쌓여 있던 자동차, 선체 자체 등을 보존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며 “세월호의 기억은 하나의 매끈한 서사가 아니라 파편화된 기억으로서, 사물을 통해 기억을 환기하게 만드는 장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어떤 말이나 기록보다도 강력한 이미지의 힘을 강조하는 말.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불러온 이미지가 등장한 바 있었다. 지금은 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에 위치한 ‘416 기억교실’의 단원고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텅 빈 교실에 미수습자 학생들의 책상 한두 개만이 덩그러니 남은 것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유가족이 되고 싶다던 미수습자 가족의 절규가 떠오른다.

주 선임연구원은 “이미지를 통해 한국사회의 악, 야만성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철저히 기억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며 “세월호를 한국사회의 변곡점으로 삼으려는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에 대한 추모는 명확한 진상규명과 끊임없는 회고, 이 두 가지 기조 아래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 세월호를 찾은 많은 시민들의 공통적 증언이었다. 진상규명과 동시에 세월호를 진정한 우리 사회 변곡점이자 긍정적인 계기로 만들기 위해서 추모와 기억을 효과적으로 끌어내는 노력 역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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