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계가 초혼한 제주의 아픔
예술계가 초혼한 제주의 아픔
  • 노효진 기자
  • 승인 2018.04.2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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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중심에서 4.3을 외치다
[리포트] 제주 4.3 추모

온 동네가 같은 날 제사를 지냈다. 연좌제라는 이름의 대물림은 살아남은 이들에게도 상처를 안겼다. 도민들은 슬퍼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속으로 곪은 상처를 끌어안았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심방이라 불리는 무당 앞에서만 겨우 억눌린 슬픔을 표현할 수 있었다.

제주도민 30만 명 중 약 3만 명, 무고한 제주도민이 사망한 대학살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아픔이 아물지 않았다.

▲ 제주 4.3 대한민국을 외치다 퍼포먼스 ⓒ노효진기자 hjroh@laborplus.co.kr

제주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거장들이 모였다. 뮤지컬 투명인간, 화순 등 창작 뮤지컬 연출가로 활발히 활동하는 연출가 류성,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와 아이리스, 영화 홀리데이 등 굵직한 작품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영화감독 양윤호, 국내 최정상 발레리노이자 ‘쓰리 볼레로’로 큰 사랑을 받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김용걸까지.

세 명의 연출진, 그리고 한 명의 프로듀서는 광화문 광장에서 403명의 일반인 참여자들과 43분간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그들만의 특별한 몸짓 언어로 대중에게 화해와 상생, 인권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 제주 4.3 대한민국을 외치다 퍼포먼스 ⓒ노효진기자 hjroh@laborplus.co.kr

산에 산에 하얗게 눈이 내리면 들판에 붉게 붉게 꽃이 핀다네

님 마중 나갔던 계집아이가 타다타다 붉은 꽃 되었다더라 (…)

붉은 애기 동백꽃 붉은 진달래 다 같은 우리나라 곱디 고운 꽃

남이나 북이나 동이나 서나 한 핏줄 한 겨레 싸우지 마라

애기동백꽃의 노래 (최상돈)

주민들을 초등학교로 오라고 한 뒤 집을 불태우고…

“그 밭에서 죽은 사름들이 몽창몽창 썩어 거름되연

이듬해에는 감저 농사는 참 잘되어서.

감저가 목침 덩어리만씩 큼직큼직해시니까.”

순이 삼촌 (현기영)

 

▲ 류성 연출가 ⓒ노효진기자 hjroh@laborplus.co.kr

류성 연출가

“우리나라의 제주 4.3은 이름이 없다. 항쟁도, 학살도 아닌 그냥 제주 4.3이다. 제주 4.3은 그 이름을 지을 수도, 부를 수도 없는 비극이었다. 이번 퍼포먼스의 목표는 잃었던 4.3의 기억을 찾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게 목표다.

제주에는 무덤 안에 시신이 없는 ‘헛묘’라는 게 있다. 제주 4.3 당시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라 시신이 없다고 한다. 시신이 없는데도 묘를 만들어 벌초를 한다. 반면, 무덤은 있지만 비석이 없는 데도 있다. 이름 모르는 사람을 묻은 경우인데,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린 아이들이 많이 죽어 그렇다고 한다. 사람은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때 그 존재가 생긴다. 제주 4.3은 빨갱이로 낙인찍힐까 무서워 차마 그 이름을 지을 수도, 부를 수도 없는 비극이었다. 이번 퍼포먼스를 통해 제주 4.3을 70년 만에 불러보는 거다. 70년 전에는 희생자였던 영령들이 70년이 지난 2018년에 비로소 시민이 될 수 있게. 제의적인 느낌이 나는 장치를 넣었다. 이번 퍼포먼스에서 어느 한 그룹은 세월호 추모 광장을 지나오고, 다른 한 그룹은 미 대사관을 향해 간다. 어떤 사람들은 광화문 지하차도 안에서 올라온다. 중앙광장에 도착 했을 때, 예전에 자기가 외쳤던 글귀가 쓰인 만장 네 개가 흔들리고, 그 아래서 어떤 가수가 제주 노래를 부르는 걸 보며 기억을 되찾는다. 머드 분장을 한 단원들과 연습할 때 울지 못하게 하는데 자꾸 검은 눈물을 흘린다”

▲ 김용걸 한예종 무용원 교수 ⓒ노효진기자 hjroh@laborplus.co.kr

김용걸 한예종 무용원 교수

“인생 작품 세 편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퍼포먼스다. 나 같이 클래식 발레만 해온 사람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에 참여할 기회가 많지 않다. 이번 퍼포먼스는 그동안 해오던 작업과 180도 다른 만큼 더 큰 보람이 있었다. 이번에 제주 4.3 퍼포먼스를 준비하면서 몰랐던 것에 대한 반성도 많이 했다. 발레라는 아주 괜찮은 예술을 하고 있는 만큼 발레를 기본으로 음악, 연극 등을 접목해 더 큰 시너지를 만들고 싶다. 퍼포먼스를 준비하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클래식 발레를 버려야 된다는 거였다.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의 특성 상 즉흥이 많은 만큼 절대 발레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용수들과 가장 많이 했던 게 제주 4.3에 대한 영상을 보는 거였다. 무용수들이 돌아가신 령이 되어야 실제 퍼포먼스에서도 그 느낌이 나오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자극이 와서 또 새로운 작품을 만들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을 화나게 한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이 중립을 지키면 나는 또다시 작품을 만들 것 같다. 그게 예술가의 책무다. 항상 핍박당하고 희생당하는 것은 소수다. 100명 중에 한 명이 다치면 나머지 99명은 자기에게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모른 체 한다. 하지만 그런 비극적인 일은 또 일어난다. ‘또 그런 비극이 발생하기 때문에 당신 차례일 수 있다’가 아니라 우리는 하나니까, 남의 아픔도 감싸줄 줄 알고, 죄책감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 양윤호 영화감독 ⓒ노효진기자 hjroh@laborplus.co.kr

양윤호 영화감독

“제주 4.3에서 가장 큰 트라우마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할 수 없다는 거다. 씨족사회인 제주의 특성 상 피해자와 가해자가 겹칠 수밖에 없다. ‘내가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더라도 나의 친척, 나의 형제는 충분히 가해자일 수 있기 때문에 ’내 탓’이라는 자학을 하게 된다. 어떤 상처든 치료를 하려면 병의 원인을 알아야 하는데, 원인을 내부에서만 찾았다는 게 문제다. 우리 집만 해도 친가와 외가, 양가 모두 희생자가 있다. 그만큼 민감하고 복잡한 문제가 제주 4.3이다.

이제 마음의 병을 말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제주 4.3의 상처 치유가 시작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두고 아프다고 말하는 과정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행사는 의미가 크다. 영화나 촬영은 감독 마음이지만 퍼포먼스는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느낌이 제일 중요하다. 퍼포먼스의 흐름 속에서 개인이 가진 느낌을 얼마나 잘 담을 것인지, 퍼포먼스 하는 동안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4.3 전국화, 세계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제주 4.3 범국민위원회의 광고도 연출했다. 같은 제주도 안에서만 아프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육지 사람에게, 다른 나라 사람에게 내가 아프다고 말하는 거다. 광고는 제주 4.3으로 본의 아니게 제주도를 떠나야 했던 사람들, 특히 일본으로 건너 간 사람들에 집중했다. 그 사람들이 다 비참하게 살았다. 제주 4.3 때 제주도를 도망 나와 일본에 도착하는 순간 바로 빨갱이로 낙인찍히게 되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본명을 감추고 살았다. 주민들은 내가 ‘누구’라는 말을 못 했기 때문에 북송선을 타고 정말 어렵게 살았다. 이번 광고 영상에서 그분들을 다뤘다. 제주 4.3으로 비참하게 제주를 떠나야 했던 사람들. 그분들 말을 들어보면 나이 70이 넘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제주사람임을 밝힌 적이 없다고 한다. 트라우마가 정체성을 지우게 했다“

▲ 김지호 총괄 프로듀서

김지호 총괄 프로듀서

“퍼포먼스에서도, 문화제에서도 ‘내 이름은 ○○○’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 퍼포먼스의 핵심은 잃었던 자기 이름을 밝히는 거다. 제주 4.3이 70주년이 됐지만 ‘폭동’이나 ‘사태’로 명명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건의 본질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 본질을 알리고 제주 4.3의 이름을 제대로 찾아주고자 하는 의도가 강했다. 그전까지 제주 4.3은 섬이라는 공간의 특수성 때문에 알리지 못한 점도 있었고, 정치적 이유로 침묵을 강요한 것도 있었다. 권위주의 정권이 제주 4.3 공론화를 터부시하고 빨갱이로 낙인찍어 침묵을 강요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야 국가 차원의 논의가 시작됐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 서울의 중심 광화문 광장, 그 중심에서 침묵을 깨자는 취지가 강했다. 광화문 광장이 촛불집회를 했던 상징적 장소인 만큼 퍼포먼스를 하려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403명을 목표로 모집했다. 열흘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많은 분들이 자발적으로 와주셨다”

▲ 제주 4.3 대한민국을 외치다 퍼포먼스 ⓒ노효진기자 hjroh@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