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모습 드러낸 ‘조선산업 발전전략’
드디어 모습 드러낸 ‘조선산업 발전전략’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04.2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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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생태계 언급했지만… 구체적인 실현방안 부족
[리포트] 조선산업 발전전략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1/4분기 안에 ‘조선산업 혁신성장방안’을 내놓을 것을 밝혔다. 그리고 지난 4월 5일, 정부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주재로 개최된 ‘제15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원가·기술·시스템 3대 혁신을 통한 ‘조선산업 발전전략’을 확정·발표했다.

마침내 드러난 ‘조선산업 발전전략’의 내용은 무엇이고, 조선업계는 정부의 ‘조선산업 발전전략’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살펴보았다.

“구조조정, 수주 경쟁력 향상 필요”

조선산업 살리기 위한 6대 발전전략 추진방안

정부가 발표한 조선산업 발전전략(이하 발전전략)에 따르면 “글로벌 시황은 점차 회복 중으로 2022년경 과거(2011~2015년 평균) 수준의 회복으로 수주량 확대도 예상되나, 2022년까지 공급능력 과잉은 지속되므로 적절한 구조조정 및 수주 경쟁력 향상을 통한 간극을 메우는 노력 병행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조선산업의 체계는 친환경, 자율운항, 생산 자동화로 빠르게 전환 중이고, 경쟁국은 M&A 등을 통한 경쟁력 제고도 추진 중이므로 이를 활용한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혁신과 상생으로 재도약하는 조선산업 ▲친환경·4차 산업혁명 시대의 조선산업 ▲소득 4만 불 시대를 향한 질적 고도화된 조선산업 등 3대 비전을 제시하며 6대 발전전략 추진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조선사 간 경쟁 구도 및 사업재편에 들어간다. 빅3로 불리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은 자구계획을 이행하고,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중장기적으로 주인 찾기를 검토한다. 중형조선소로 대표되는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은 각각 회생절차와 구조조정을 추진, 업계 자율의 합종연횡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견조선사로 육성할 계획을 밝혔다.

중소형 조선사 수주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액화천연가스(LNG)연료추진 중소형선, 자동 곡가공장치, 하이브리드 용접기술 등의 연구개발, 새로운 수요·고부가 선박 설계지원, 한국형 스마트야드(K-Yard) 건설에 들어갈 예정이다.

또한 친환경 전환을 위한 LNG연관선박 중심의 선제적 시장창출과 5조 5천억 원 규모의 공공발주를 통한 일감확보에 주력한다. 자율운항 기자재, 시스템 개발을 통해 2022년까지 중형 자율운항 컨테이너선을 개발·제작하고, 노후 예인선의 LNG 연료선 전환 및 국가 기자재 탑재에 따른 차액 지원 등 자율운항과 친환경 미래시장 선점을 위한 투자 확대도 시행할 계획이다.

이어서 전후방 산업, 대-중-소 상생을 통한 산업 생태계 강화를 위해 ‘조선-해운-금융’ 상생 협의체 운영 등을 통한 해운(선박 발주, 자율운항선박 실증 등) 및 금융(RG발급, 제작금융 등)과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구조조정에 따른 일자리 유지 및 호황 대비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퇴직자 재취업을 지원하며,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기간을 올해 6월에서 12월로 재연장했다. 또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빅3를 중심으로 신규채용을 불황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 위한 노력과 연평균 3,000명의 채용 목표를 제시했다.

정부는 발전전략을 통해 2022년에는 수주비중 31.7%(2011~2015년 평균)에서 33%로 상향(55만CGT 추가 수주 목표)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번 발전전략 추진 상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면서 조선산업 상황변화에 따른 보완대책도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발전전략에 대한 조선업계의 전반적인 반응은 “이전 정부가 내놓은 정책보다는 진보했다”는 평이다.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은 “산업의 경쟁력, 장래성, 지속성은 없는 채로 금융주도 구조조정이 주였던 2016년 조선산업 대책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진보한 산업 정책이라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라고 말했다. 금속노조와 조선업종노조연대(이하 조선노연)는 발표 당일 성명서를 내고 “대형부터 중소형 조선소와 기자재 산업을 아우르는 산업 생태계의 관점에서 조선 정책을 바라보는 것은 지금까지의 정부 정책과는 다른 긍정성이 있다”며 “중소형 조선소에 특화된 설계, 생산 시설의 개발이나 자율운항, 친환경 등 미래시장 선점을 위한 투자 확대와 같은 방식은 정부가 정책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긍정적인 평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업계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는 발전전략을 ‘어떻게’ 실행에 옮길지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 중형조선소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당장의 실효성 있는 구체적인 정책을 원하는데 큰 그림만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발전전략을 “양두구육 정책의 전형”이라고 평가하며 현실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현장에서 오는 ‘혼란’ 조선업종 차원 대화 필요해

이번 발표에서 가장 화두가 된 것은 ‘고용’이다. 정부는 발전전략에서 2022년까지 지속되는 공급능력 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적절한 구조조정이 필요함을 밝혔다. 여기서 문제는 같은 시기에 신규 일자리 창출 계획도 함께 밝혔다는 것이다. “대형조선소 빅3를 중심으로 신규채용을 불황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노력을 전개하며,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연평균 3,000명 채용을 목표로 하겠다”는 것이 세부 내용이다. 이에 따라 올해 3월 기준 10만 명인 조선산업 고용인원을 2022년에는 12만 명 수준으로 회복할 것을 전망했다. 구조조정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상반되는 두 개념이 충돌하게 된 것이다.

지난달 현대중공업은 유휴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근속 10년 이상 근무자이면서 만 55세 이상인 근무자는 조기정년선택제를, 근속 10년 이상인 근무자는 희망퇴직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중공업은 “3,000명의 유휴인력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연말에 수천 억대의 적자가 예상돼 불가피한 희망퇴직을 실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은 이전에도 몇 차례 구조조정을 실시해왔다. 현대중공업노조에 따르면 2015년 1월 26,158명이었던 정규직 노동자는 2018년 동월 19,189명으로, 26.6%가 감소했다. 사내하청 노동자 역시 2015년 1월 40,783명에서 2018년 동월 59.9%가 줄어든 16,320명으로 감소했다. 노조는 희망퇴직 실시를 반대하고 있다. 발생하는 유휴인력을 교육 휴직, 휴업을 통해 유지하면서 이후 다가올 호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렇듯 현장에서는 인력 감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정부가 말하는 2022년까지 연평균 3,000명을 신규채용한다는 목표가 실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 대형조선소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을 포함해 회사별 인력 조정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정부 발표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종식 전문연구원은 “정부 발표대로라면 2022년까지 수주비중을 33%까지 올리기 위해서 국내에 필요한 인력이 12만 명 정도인데, 회사별 자구계획이행을 보면 사람을 줄여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며 “2016년에 비해 금융주도 구조조정의 성격이 퇴색된 건 사실이지만 자구계획이행에서는 여전히 옛 관행들이 남아 내부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중형조선소 역시 마찬가지 혼란을 겪고 있다. 지난 3월 정부가 발표한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의 2차 실사결과와 이번 발전전략이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8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구조조정 등에 따른 지연 지원대책’이 발표됐다. 발표 결과 성동조선해양은 법정관리를 밟고 STX조선해양은 노사가 만든 자구계획안을 고려해 구조조정을 하기로 결정했다.

STX조선해양 노사는 인적 구조조정이 없는 자구계획안을 마련했지만 경영정상화를 위한 무급휴직 6개월에 합의했다. 3월 20일부터 4월 17일까지 114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했으며 같은 기간 43명이 아웃소싱 전환을 신청했다. 성동조선해양은 4월 20일 회생절차개시결정이 났다. 업계에서는 성동조선해양 역시 STX조선해양과 비슷한 수준의 회생계획서를 작성하게 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박종식 전문연구원은 “발전전략의 큰 그림은 대형, 중소형, 기자재가 함께하는 견고한 생태계 조성인데, 이는 2차 실사결과의 전반적인 기조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태정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정부가 생각하는 중형조선소인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 자체가 죽어가고 있다”며 “정부는 두 중형조선소를 어떻게 살릴지를 이야기한 다음 중형조선소 지원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정부가 실상에 맞지 않는 대책을 내놓으며 조선소의 비정규직화를 용인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박경태 성동조선해양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정부가 중형조선소를 살린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없고 실상과 맞지 않은 이야기만 있다”며 “앞서 STX조선해양의 아웃소싱 사례를 봤을 때 정규직을 줄여 부족한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려하는 것은 말 그대로 껍데기만 남은 회생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박종식 전문연구원은 이번 발전전략에서 빠진 부분과 혼란을 야기하는 부분은 업종 차원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는 제시한 발전전략을 실현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인력이 필요하고 이 안에서 사무직, 엔지니어, 생산직 정규직, 사내하청의 비율은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고용구조를 제시해야 한다”며 “회사는 설비 및 기술에 대한 투자, 노후 설비 교체 등 기술 향상에 대한 고민을, 노동자는 기술 숙련에 대한 고민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 금속노조는 4월 9일 국회 정론관에서 정부의 조선산업 발전전략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부가 이번 발전전략에서 언급했듯이 조선산업은 국내 경제 발전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수출 및 고용의 7%를 차지하고, 제조업 생산의 4%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그에 맞는 문제해결과 미래전망이 필요하다. 지난 2016년에 발표된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이 지금도 비판의 대상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문제해결과 미래전망이 없이 인력 감축에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이후 1년 6개월 만에 나온 발전전략이 비판의 대상으로만 남지 않기 위해서는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정부 정책을 논의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