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4주기, 목포신항의 사람들
세월호 4주기, 목포신항의 사람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8.04.2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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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행동하라’ 다짐의 시간
[커버스토리] 세월호, 우리, 나 ⑩ 실천

4월의 두 번째 주말, 서울과 안산, 그리고 목포에서는 세월호 4주기를 기리기 위한 행사가 다채롭게 열렸다. 특히 목포에서는 세월호가 거치된 신항을 중심으로 4월 14일과 15일 이틀에 걸쳐 문화제와 기획 전시가 열렸다. 앞서 13일에는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연극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가 목포시민들에게 선보였다. 17일과 18일에는 세월호를 주제로 한 독립영화가 상영됐다. 여기에는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있다.

사람들은 왜 목포로 향했나

“박근혜가 내려오자 세월호가 올라왔다.”

목포신항의 세월호 4주기 행사장 한쪽에 전시된 사진에 적힌 설명이다. 정부는 지난해 3월 22일 세월호 인양 작업에 착수해 해저 바닥에서 1미터 가량 배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세월호가 9명의 미수습자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지 1,073일 만이다.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을 내린 3월 10일 이후 12일 만이다. 세월호 선체 인양이 처음 추진된 때는 2014년 5월로 무려 3년 가까이 작업이 지연된 셈이다. 막상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 뒤로 허무하리만큼 빠른 속도로 선체가 올라왔다.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는 선체 곳곳에 뚫린 구멍과 오랫동안 쌓인 개흙으로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세월호는 3월 31일 반잠수식 선박에 실려 동거차도 인근 해역을 출발해 목포신항으로 향했다. 해양수산부는 모듈 트랜스포터를 이용해 세월호를 육지로 옮기기로 했다. 지난해 4월 9일 밤 세월호는 목포신항 부두에 완전히 거치됐다.

세월호가 목포신항으로 온다고 알려지면서부터 목포지역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됐다. 선체를 목포신항에 둬서는 안 된다는 반대 목소리 때문은 아니었다. 목포시민들은 세월호를 맞이할 준비를 시작했다. 시민들은 한 사람 또는 한 가구당 8천 원에서 1만 원씩 자발적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서해안고속도로 종점에서부터 목포시내로 들어오기까지 길거리에는 시민들의 메시지가 담긴 걸개가 걸렸다. 동창회, 동호회 할 것 없이 걸개 걸기에 참여했다. 세월호잊지않기목포지역공동실천회의(공동대표 송정미·최송춘, 이하 ‘목포실천회의’) 관계자는 “당시 (걸개가)너무 많이 모여서 다 못 걸 정도였다”며 “2천 개는 훨씬 넘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목포실천회의는 2016년 9월 무렵 목포지역 4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결성됐다. 목포실천회의는 지난해 세월호 3주기를 맞아 4월 11일부터 16일까지를 추모기간으로 정했다. 이 기간 동안 목포실천회의는 목포신항 일대와 시내 주요지점에서 ‘4월 16일의 약속, 함께 여는 봄’을 주제로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그해 12월에는 목포실천회의와 유가족이 함께 김장을 담가 시민들과 나눴다.

▲ (왼쪽부터) 송정미 공동대표, 양현주 집행위원장, 김창모 실무위원

목포는 세월호를 잊지 않는다

세월호가 오면서 유가족들도 진도 팽목항에서 목포신항으로 거점을 옮겼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처음 도착했을 때 목포신항에는 아무런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목포실천회의 관계자들과 유가족들은 세월호 거치 장소로 들어가는 입구 근처에 천막을 쳤다. 그리고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시설이 있어야지 않겠느냐고 목포시를 설득했다. 하루는 컨테이너가 생기고, 또 하루는 에어컨이 들어오고, 다른 날은 간이화장실이 생기면서 아스팔트 포장만 된 자리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세월호 잊지 않기’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목포실천회의는 다양한 방법으로 세월호를 기억했다. 선체조사위원회의 활동을 감시하고, 세월호 2기 특조위 구성에 관해 유가족들과 같은 목소리를 냈다. 또한 지난해 말부터 추모객들이 목포신항만에 남긴 리본, 카드, 엽서 등 기록물을 영구 보존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유가족에 대한 물품 후원과 목포신항만 일대 환경 정리, 리본 제작 등 활동도 지속해 오고 있다. 목포실천회의는 유가족들과 함께 목포신항을 지키는 등대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목포실천회의는 지난해에 이어 4주기인 올해에도 ‘잊지 않기’를 이어갔다. 올해 행사의 주제는 ‘기억하라 행동하라’이다. 행사의 세부 기획마다 다양한 주체가 참여해 의미를 살렸다.

행사 진행을 위해서 많은 이들의 자발적인 헌신이 줄을 이었다. 양현주 집행위원장과 김창모 실무위원은 13일부터 15일까지 주요 행사가 이어지는 동안 잠시도 한 자리에 머무를 틈 없이 동분서주했다.

13일 저녁에는 세월호로 자식을 잃은 엄마들이 배우로 나서 감동을 전했다. 14일 토론회는 한국사회학회의 참여가 돋보였다. 15일 목포신항 행사장의 각종 체험부스를 지키고 안내를 도맡았던 자원봉사자들의 역할이 컸다.

바닷가 칼바람에도 학생들 참여 돋보여

이번 행사에는 목포지역중고등학생연합(이하 ‘목포중고생연합’) 소속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준비한 공연도 마련됐다. 이들이 참사 당시 단원고 학생들과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또래라는 점에서 각별함을 더했다. 목포중고생연합은 학생 자치활동 활성화를 목표로 목포시내 중·고등학교 학생회로 구성됐다. 목포중고생연합에서 활동 중인 한 학생은 “매월 열리는 정기회의에서 세월호 4주기 행사에 참여해 보자는 안건이 나왔다”고 말했다.

목포덕인중학교 학생 30명은 합창곡으로 <잊지 않을게>와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준비했다. 자신을 학생회장이라고 소개한 박재홍(16) 학생은 “학생들도 세월호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참여 계기를 밝혔다. 목포마리아회고등학교 3학년 학생 8명은 중간고사를 2주 앞두고 4주기 행사에 나왔다. 목포여자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추모곡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불렀다. 목포혜인여중 학생들은 무대 왼편에 마련된 전시회를 준비했다.

4주기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때때로 자신들의 주관을 명료하게 밝히기도 했다. 김소연(16) 학생은 “(참사의)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정치인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며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에 비협조적인 일부 정치인에게 일침을 가했다. 이어 “학생에 관한 정책에는 학생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며 “학생들에게도 생각이 있는데, 선거권이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행사에 참여한 또 다른 학생은 “목포신항에 세월호가 거치돼 다른 지역보다 세월호에 대한 각별한 느낌이다”라며 “어른이 되어서도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조합도 “잊지 않겠습니다”

목포신항에서 진행된 세월호 4주기 행사가 유달리 뜻 깊었던 이유는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가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하라 행동하라’는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연구자들, 중·고등학생들과 대학생 자원봉사자들, 지역 문화예술인, 그리고 유가족이 함께 만든 자리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너나 할 것 없이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에 이름 석 자를 적고, 노란리본 배지를 달고,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섰던 모습이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노동조합의 역할도 빼놓기 어렵다. 한국노총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와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과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등 금융과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의 기금 후원이 줄을 이었다. 아울러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과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도 소정의 금액을 행사 주최 측에 전달했다.

이중 금융노조는 산하 33개 지부가 후원에 동참해 이목을 끌었다. 금융노조는 지난 4월 12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 로비에서 열린 2018년 산별 중앙교섭 출정식을 통해 후원금 1,280만 원을 전달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출정식에 참석한 대표자들은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올해 금융업 노사의 산별교섭은 3년 만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무너졌던 산별교섭 체제를 복원하는 첫 걸음이다. 세월호 4주기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감춰두고 싶어 했던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시작이라는 점에서 금융노조의 참여는 남다르다.

이와 더불어 오는 5월 10일 출범을 앞두고 있는 4.16재단에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노동조합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노동조합의 역할을 기금 후원으로만 한정할 수는 없다. 가령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목표를 향해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모을 일은 차고 넘친다. 직장에서의 산업안전 문제는 노동자들에게 직접 연관된 사안이다. 또한 직장 밖의 안전 역시 놓쳐서는 안 된다. 박래군 4.16연대 공동대표는 이러한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해 “노동조합과 시민을 분리시키는 게 지배세력의 프레임”이라며 “직장에서는 노동자이지만 밖에서는 시민인 만큼 ‘나도 시민’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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