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터의 보이지 않는 성차별 여전
한국 일터의 보이지 않는 성차별 여전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4.30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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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룰, 직장 내 차별 명분 돼선 안 돼
[리포트] 노동시장 성평등

올해 1월 용기를 낸 한 검사가 과거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했다.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엘리트 조직 내에서 무려 8년 동안 묵인된 비상식적인 사건에 시민들은 경악했다. 이후 연예계와 연극계, 정치권으로 미투(#Me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확산됐다. 유명인을 중심으로 이어지던 미투 선언에 일반인들이 동참하면서 미투 운동은 혁명으로 불렸다.

불과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미투 운동은 ‘펜스룰(Pence Rule)’이라는 예상치 못한 반작용을 만났다. 펜스룰이란 지난 2002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철칙으로, “아내 외의 여성과는 절대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한국의 미투 정국에서 남성들이 성추문을 피하기 위해 여성동료와 하는 업무·회식·출장 등을 꺼리는 현상으로 확대 해석되면서 여성 배제의 명분으로 차별을 정당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펜스룰’ 엄연한 성차별 행위로 불법

지난 3월 9일 고용노동부는 ‘고용노동부 익명 신고센터’를 개설했다. 채용과정이나 직장 내 성희롱·성차별행위에 대한 신고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이날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채용 면접과정에서 ‘성폭력 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등의 면접자를 압박하는 질문을 하는 사업장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사법처리 하겠다”며 “펜스룰을 명분으로 업무에서 여성을 제외하는 것에 대해서도 성차별적 행위로 엄정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에 따르면 채용과정에서 남녀를 차별하면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내려진다. 1987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은 현재까지 20여 차례 개정됐다. 처음에는 모집과 채용, 교육·배치 및 승진, 정년·퇴직 및 해고에서의 성차별을 금지했다. 이후 법이 개정되면서 임금과 임금외 금품으로 차별 금지 범위가 확대됐다. 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사업주 형사처벌 규정도 개정되는 과정에서 매번 강화됐다.

문제는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남녀 간 사회 경제적 격차는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녀고용평등법이 사용자의 고유한 권한이라고 여겨졌던 채용단계에서의 성차별을 금지하는 등은 여성의 노동권을 보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면서도 “별도의 차별판단기구나 구제기관을 두고 있지 않다”는 한계를 지적했다.

이로 인해 성차별 피해자는 지방노동행정기관와 노동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구제를 받게 되는데, 지방행정기관과 노동위원회는 차별 문제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성차별이 있었는지 입증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할 수 있지만, 차별이라는 결과가 나와도 권고에 그치기 때문에 피해자는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남녀고용평등법이 실질적인 차별 해소로 이어지려면 차별 피해자가 상담을 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다양한 창구가 마련돼야한다”며 “현행보다 법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차별시정제도를 도입하는 가운데 전담하는 기관을 둬야 한다. 이 역할은 노동위원회가 맡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유리천장지수 만년 꼴찌

한국의 유리천장지수(glass-ceiling index)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늘 꼴찌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발표한 2018년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주요 29개국 중 29위를 기록했다.

유리천장이라는 말은 1970년대 미국의 경제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여성이 직장에서 승진을 하는데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하는 현상을 전하며 사용한 표현이다. 한국에서는 ‘두터운’유리천장 ‘콘크리트’천장이라는 말이 더 보편적으로 쓰인다.

유리천장지수는 남녀 경제활동 참여 비율과 고위직 여성 비율, 남녀 소득격차 등 10개 항목의 데이터를 기초로 해서 매겨진다. 한국은 거의 모든 항목에서 평균을 밑돌았다. 2017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2.6%로 전년보다 0.8%p 상승했지만, 여성 경제활동인구는 1172만 7,000명으로 남성 경제활동인구보다 412만 6,000명 적다.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74%에 달한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는 “평등의전화 상담 사례를 정리한 자료를 봐도 성차별에 대한 사례는 많지 않다”며 “이미 여성들이 구조적으로 너무 견고한 성차별을 경험해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채용단계에서부터 성별 직군 분리가 이뤄지는 금융권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은행에서 수납업무를 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권한이 적고 승진이 제한적인 비정규직이다. 이 직군에는 여성들을 주로 채용하는 반면 관리자로 승진이 용이한 직군에는 남성을 중심으로 뽑는다는 지적이다.

취업 후에도 여성들은 차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배 공동대표는 “직장 내에서 일을 하면서도 성별 분리는 또 다시 발생 한다”며 “남성들에게는 주요업무를 맡기고 여성에게는 보조업무를 준다. 같은 사무직이라도 여성들은 열심히 해도 티가 잘 나지 않고, 회사의 주 업무로 인정되지 않는 관리업무를 주는 식”이라고 말했다.

출산·육아? 당연히 여성의 몫

출산과 육아를 전적으로 여성의 책임으로 돌리는 한국사회의 인식이 이 같은 현상의 뿌리다. 여성이 직장을 다니다 아이를 낳으면 으레 회사를 관둔다고 생각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될 위험성이 있는 여성은 남성에 비해 투자비용 대비 얻을 수 있는 결과가 낮은 불량 인력인 셈이다. 이로 인해 부당한 성차별은 채용단계에서부터 발생하고, 여성을 채용을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중요한 업무나 승진에서 배제하는 문화가 생긴다.

불과 2년 전, 주류업체 금복주는 결혼퇴사제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홍보팀 여성노동자가 2개월 뒤 결혼한다는 소식에 사측은 퇴사를 강요했다. 직원이 이에 응하지 않자 사측은 언어적 모욕과 업무배제, 인사상 불이익 등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여성노동자는 사표를 냈다. 이후 여성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대를 역행하는 관행이 사회에 알려졌다. 금복주 회사 관계자의 “창사부터 50년이 넘도록 결혼한 여직원은 사무직에는 없다. 회사 일을 못해서 나가는 게 아니라 결혼하고 난 뒤 다니는 여직원이 없기 때문이다”는 입장은 공분을 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금복주 진정사건을 조사하면서 인사노무관리 전반에 성차별적 고용 관행을 발견하고, 직권조사를 실시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는 결정문 주문서에서 “여성 직원에 대한 결혼 퇴사 관행, 여성을 부수적인 직무 및 낮은 직급에 배치하거나 간접고용 위주로 채용하는 관행, 여성을 주임 이상 승진에서 배제하는 등 장기간 지속된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 계획을 수립하고, 공정하고 성평등한 인사운영 기준을 마련하여 시행 하라”고 권고했다. 아울러 고용노동부는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회사 회장과 대표이사를 검찰에 송치하고,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다.

남녀 임금 격차 최대

이는 비단 금복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남녀 간 임금 격차가 가장 크다. 전세계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23% 적은 임금을 받는데, 한국은 그 수치가 37%에 이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성별 임금 격차와 시사점(2015년)’ 보고서에서 남녀 간 임금 차이가 큰 원인에 대해 여성이라서 받는 ‘차별’이 62.2%로 근속연수나 직장규모, 교육수준 등에 따른 ’남녀차이‘ 37.8%보다 크다고 분석한 바 있다.

2016년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 일자리 중 좋은 일자리의 비중은 남성 노동자의 4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이 때 좋은 일자리의 정의는 정규직이면서 적정소득 이상(중위소득의 125% 이상)을 받으며 고용안정성이 높은 일자리였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은 저임금 비정규 일자리에서 일한다. 작년 3월 기준 여성 임금근로자 중 41.1%가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이는 같은 시점 남성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68만 1,000명(14.7%) 더 많은 것이다. 여성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2007년 이후 40%대를 유지하는 반면, 남성의 경우 2007년(32.6%) 이래 증감을 반복하다가 2017년 26.4%로 떨어졌다.

배 공동대표는 “미투 관련 기사의 댓글에 여자들이 일을 못한다는 이야기가 많다”며 “일을 못하는 여성이 있을 순 있지만, 한 개인의 문제를 여성이라는 대상으로 집단화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극명한 편견이자 고정관념”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여성이 임금이 높은 이공계를 전공하는 비율이 남성에 비해 낮다는 점을 임금 격차가 발생하는 주요한 차이의 예로 드는 것에 대해 “여성이라서 극단적으로 정규직이 못 되는 상황”이라고 반박한다. 2015년 여성과학기술인력활용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공학계열 졸업 성별 비율이 남성은 68%, 여성은 31%이긴 하지만, 이들이 정규직으로 고용되는 비율은 각각 93%와 7%로 그 격차가 현격하다는 지적이다.

또 여성단체들은 한국사회가 여성의 노동을 평가 절하한다고 비판한다. 나지현 전국여성노조 위원장은 “여성들이 하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라는 편견이 있다. 임금이 낮고, 저평가 된다”며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직종에는 급식보조원, 사무보조원, 실무보조원 등 보조라는 말이 붙는 것이 그 방증”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경제활동을 그만두고, 원해서 시간제 일자리를 찾는다는 현상분석에 대해서도 사회의 문화와 제도라는 맥락 속에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여성을 위해 확대한 시간제 일자리는 애초에 여성이 경력단절이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여성노동을 저임금의 유연한 노동으로 포장해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고, 경제성장의 지렛대로 사용한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아가 배 공동대표도 “정부가 여성들이 성차별을 겪고 있는 상황을 포착했다면, 실제로 어떤 매커니즘으로 차별이 순환되고 반복되는지 확인하고 차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성차별에 대해 엄하게 처벌해야한다. 노동시장에서 성평등은 고용률이나 출산율 등의 지표와 연동할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돼야 한다. 성평등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완성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작년 12월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여성일자리 대책’에는 ▲차별 없는 여성일자리 환경 구축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예방 ▲여성 재취업 촉진이라는 3대 핵심 정책과제가 담겨 있다. 과거 정부와 달리 성차별적인 고용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행정감독과 구제제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여전히 고용전반에 걸친 성차별적인 요소를 개선하는 데는 미흡하다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