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를 깊게 파는 것이 진정한 명장 "
“한 분야를 깊게 파는 것이 진정한 명장 "
  • 박인희 기자
  • 승인 2007.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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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코아테크 이홍우 대표

1975년 2월~1996년 6월 LG전자(주) 통신기기 연구소 책임연구원 근무 1996년 코아테크 설립

이홍우 대표의 이력서를 채운 이 단 두 줄은 짧지만 많은 것을 이야기 한다. 기계제도에서 시작해 통신기기기구설계 업체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기까지 바로 ‘노력과 인내’로 오랜 시간 외길을 걸어온 그의 인생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누구보다 학업에 대해 열정을 가진 꿈 많은 소년이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야만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기능을 배우면서도 대학에 진학해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겠다는 그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추천으로 기계제도를 처음 시작하면서 ‘이 기술을 열심히 연마해 꼭 내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해야 겠다’고 다짐했고 그 다짐과 함께 꿈을 향한 도전과 노력들을 시작했다.

 

끊임없는 훈련이 빚어낸 값진 성과

조립도나 부품도를 설계도면에 작성하는 기계제도의 달인이 되기 위해 이 대표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시켰다.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은 결과, 1974년 7월 경기도 실고생 기능경진대회에 출전해 기계제도 부문 일등을 차지했다.

이것을 시작으로 300여명의 학생이 지원한 금성통신주식회사(현 LG전자) 실습채용 시험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금형설계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방대회에 우승한 그는 본격적으로 회사일과 전국기능경기대회 준비를 병행하게 되었다. 일곱 시 반에 출근, 제도용 연필을 깎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다섯 시 반까지 회사업무를 통해 실무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업무가 끝나는 6시 이후부터는 대회 준비를 위한 자기훈련을 시작해 새벽 두세 시까지 전년도 과제를 복습하며 훈련에 열중했다. “당시 집까지 걸어서 한 시간 걸리는 거리를 20~30분 만에 뛰어가서 기능대회 과제를 하나 하나 풀어나가며 대회 준비에 몰입했죠”

결국 그의 노력은 전국기능경기대회 기계제도부문 1등을 차지해 국제대회 출전자격을 얻게 되는 성과로 돌아왔다. ‘국제대회 우승’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긴 이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국제대회 우승을 위해 다시 한번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기계제도 부문 최초 금메달리스트

1976년 12월 24일.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성탄절 분위기에 취해 있을 때 이홍우 대표는 홀로 경북 영천 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바로 국제대회 준비를 위해 군에 있는 선배에게 설계검토를 받기위해 찾아가게 된 것이다. 이홍우 대표는 “당시 성탄절을 상관할 겨를도 없었어요. 선배에게 도면을 검토받기 위해 전날 저녁까지 훈련한 자료를 둘둘 말아 아침 새벽에 영천으로 향했죠”라며 그때를 회상한다.

외출 나온 선배와 함께 그는 근처 여인숙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설계도면 지도를 받았고, 완행열차를 타고 안양에 도착해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당시 눈이 많이 왔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도 그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의 그 고생이 없었으면 지금의 제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혼을 다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는 1977년 네덜란드 유트리히트 시에서 열린 제23회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기계제도 부문 우리나라 최초 금메달리스트로 기록되었다. 특히 그해는 우리나라가 종합우승이라는 큰 성과를 거둬 그 기쁨은 더욱 컸다. “기계제도를 처음 접할 때 이 분야를 열심히 해 꼭 성공하자는 꿈을 꿨는데 그 첫 번째 꿈이 이루어 진거죠 그리고 다시 한 번 깨달았죠. 열심히 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구나”

이런 그에게 회사 측은 3개월간 입시학원을 수강할 수 있게 배려해주었고 그 해 12월 한양대 기계공학과 야간대학에 합격하게 되었다. 평소 기술을 배우면서도 늘 공부하고 싶어했던 그의 두 번째 꿈이 이루어 진 것이다. 하지만 회사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주경야독’하는 것이 이 대표에게도 결코 쉬운 일 만은 아니었다.

“밤 11시경에 학교수업이 끝나면 집이 있는 안양까지 걸어들어 갔고 다시 새벽에 회사로 출근하며 4년을 보냈습니다. 주말에도 밀린 회사일과 공부로 몸은 고단했지만 제 꿈을 이루었기에 마음만은 행복했죠.”

“영원한 엔지니어로 남고 싶다”

이 대표가 고교시절 현장실습 때부터 회사 생활을 시작해 학업과 업무를 병행하며 한 회사에 몸을 담은 시간만도 22년이다. 통신기기 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며 그동안 틈틈이 후배양성에도 힘을 기울여 지도한 후학만 해도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3명, 은메달 1명이다. 하지만 이홍우 대표는 여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1996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20여년 넘는 세월동안 직장에서 통신기기 개발업무에 종사하며 쌓은 그동안의 경력을 바탕으로 통신기기 설계 및 개발 엔지니어링 업체인 (주)코아테크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의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영원한 엔지니어로 남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오랜 시간동안 실무경험을 쌓을 수 있었지만, 관리자로 올라가게 되는 시스템은 영원한 엔지니어를 꿈꾸는 그에게 손과 발을 잃게 되는 것과 같았다.

또한 제품을 대할 때 면 늘 ‘내 손으로 설계하면 더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느꼈고, 제품이 완성된 뒤에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훌륭한 제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은 끝이 없었다. 그래서 ‘내 실력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 보자’라는 신념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사업을 시작해서도 많은 이들이 그의 오랜 경력에 신뢰를 나타내었고 회사는 SK텔레텍의 첫 휴대폰 모델인 ‘SKY'의 외장케이스를 개발하고, LG전자와 팬택 휴대폰 개발에 참여해 휴대폰 관련 실용신안 3건, 의장등록 1건 등을 획득하는 등 빠르게 성장을 했다.

이홍우 대표는 “기구설계는 제품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한 치의 오차도 허락되지 않기에 꼼꼼한 테스트를 거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아올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죠. 그럴때 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과거 열심히 기능훈련을 받았던 경험들이 모두 지금의 토대가 되어 주는 것 같습니다”라고 설명한다.

 

끈기를 갖고 인내하라

얼마 전 사회의 귀감이 되는 기능인에게 주어지는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된 이홍우 대표는 “최근 실업계고등학교 진학률이 낮은데, 후배들이 우수한 기술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기능직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이어져야 한다”고 당부한다.

우수한 기술이 다음세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그의 신념처럼 그는 요즘 사업과 함께 후배 양성에도 적극적이다. 국제기능올림픽 및 각종기능대회 심사위원과 특강을 통해 학생들을 만나는 그는 쉽게 직장을 선택하거나 옮기는 등 쉽게 얻고 쉽게 버려버리는 요즘 세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학생들이 한 직장에 오랜 머문 저의 경력에 놀라는 경우가 많지만 저도 직장을 다니며 힘든 적도 많았죠. 하지만 ‘5년에서 10년까지는 회사에서 배운 만큼 내가 보답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10년 이후 20년까지는 ‘회사와 나 그리고 나라를 위해 봉사 하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다양한 경력으로 이력서를 채우기 바쁘지만 한 분야에서 진정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끈기와 인내’인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한 분야에 전념해왔지만 이홍우 대표는 20년 이상 해온 이 일이 연구할수록 무궁무진하다고 밝힌다. 그리고 명장을 꿈꾸며 오늘도 현장에서 땀 흘리는 모든 이들에게 당부했다. “전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 분야에 대해 달인이 되려면 좁은 부분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야 만이 진가가 나옵니다. 오랜 노력 끝에 얻어진 확신과 자부심 이야말로 자신을 지탱해주는 진정한 힘이 됩니다”

▷노력, 인내, 끈기를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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