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고용’과 ‘노동’의 새로운 화두를 던지다
대우조선, ‘고용’과 ‘노동’의 새로운 화두를 던지다
  • 함지윤 기자
  • 승인 2007.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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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자 재입사로 고용과 기술력 확보한 대우조선해양 노사
16일·9일에 달하는 장기 휴가 … 여가활용 프로그램이 관건

 

1972년 우리나라가 조선업을 시작했을 때 모두가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최고의 기술력을 지닌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조선대국이 되었다. 이런 성장 뒤에는 젊은 시절을 배 만들기에 바친 조선업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증가와 반자동화로 인한 노동강도 강화 등 조선업의 화려한 성장만큼 노동자들은 그늘에 가려졌다. 특히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는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산업차원에서도 현장 전문인력의 급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과 ‘노동’에 대한 노사간 합의는 쉽지 않은 문제였다. 노동자에게 고용은 노동을 통해 삶을 유지·변화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기회’이지만, 사용자에겐 적은 비용을 통해 많은 이익을 내야하는 ‘생산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 문제에 새롭게 접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우조선해양(주) 노사가 2006년 4/4분기 노사협의회를 통해 ‘퇴직자 지원프로그램’을 마련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처음이라서, 우리나라에 모델이 없어서, 힘들었다”는 대우조선노동조합 양현모 정책실장의 말 속에서 앞으로 가야할 길도 쉽지 않음이 느껴진다.


급증하는 고숙련 퇴직자, 일자리 찾아 방황
조선업은 상당히 많은 부분이 노동자들의 수작업에 의해서 이뤄지고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다. 그러다보니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도 많고 여타 다른 업종보다 고령화 정도도 심하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도 평균 연령이 43세다. 결국 최근에는 매년 퇴직자가 늘어나 전문인력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상황은 회사의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다. 우리나라 조선업의 호황으로 수주물량은 증가하는데 숙련된 전문인력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자칫 회사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자들의 상황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평균 수명의 증가로 이젠 너무 젊은 나이가 되어버린 50대에 직장을 그만두게 된 대부분의 퇴직자들은 퇴직 후 일자리를 찾아 방황하고 있다. 그나마 협력업체로 취직을 한 경우는 운이 좋은 경우. 생전 해보지 않은 경비원이 되거나 개인사업으로 퇴직금을 날리기 일쑤다.


이에 대우조선노동조합은 2006년 임단협에서 정년퇴직을 기존 57세에서 58세로 연장시켰을 뿐 아니라 퇴직자 재입사 문제를 4/4분기 노사협의회 때 논의하기로 했다. 그리고 2006년 4/4분기 노사협의회에서 노사는 ‘퇴직자 지원프로그램’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첫째, 퇴직자 재입사 및 취업알선 제도 ▲둘째, 퇴직자 건강지원 제도, ▲셋째, 아웃플레이스먼트(Outplacement)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임금보다 고용을, “난 일하고 싶다”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제도는 ‘퇴직자 재입사 및 취업알선’ 부분이다. 이 제도는 정년퇴직한 사람이 본인의 희망에 따라 퇴직 전의 업무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거나 협력업체의 취업을 알선해 주는 것이다. 양현모 정책실장은 “58세 정년 이후에도 일을 하고 싶은데 일자리가 없어 밖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다”며 “기술력 확보 측면과 최소한 60세까지의 고용유지를 위해서 이 제도를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노동조합은 퇴직자들 중 협력업체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임금수준을 조사해 본 결과, 평균 연봉이 2800만원 정도였다. 그리고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2차례의 간담회와 설명회에서 퇴직예정자들은 “임금이 중요하지는 않다”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면서 이 제도에 대한 높은 호응도를 보였다. 노사는 퇴직자 재입사 제도의 임금테이블을 협력업체의 평균연봉보다 상향해서 설정해 놨기 때문에 많은 퇴직자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노동조합 서행철 조사통계부장은 “2차례 간담회에서의 해당자들의 호응도를 볼 때 요양 중인 사람을 제외하고 한 90%는 재고용을 희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우조선해양 인사2팀 정성대 이사 또한 “퇴직자들 거의 전부가 재고용을 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외에도 아웃플레이스먼트(Outplacement)를 순차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이는 퇴직예정자들이 재직 중에 최소한 퇴직 2년 전에 퇴직 이후의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회사가 교육이나 행정적인 지원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제도다.

 

쉴 땐 쉬고 일할 땐 일하고
대우조선해양 노사는 또 국내 대공장으로는 처음으로 휴일근무를 조정해 여름휴가를 16일, 추석연휴를 9일로 확정했다.


사실 조선업의 경우, 용접 등 화염작업이 많기 때문에 여름에 작업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 특히 8월 한여름 뙤약볕 아래 철판 위에서 용접 등의 작업을 하다보면 체감온도는 50도에 가까워 절로 숨이 막힌다.


이에 따라 2007년에 시범적으로 실시해 보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이로써 대우조선해양은 식목일(4월5일)과 제헌절(7월17일), 광복절(8월15일), 개천절(10월3일), 회사 창립기념일(10월11일) 이렇게 5일을 근무하는 대신 6일의 추가휴가와 휴가비 50만원을 인상하기로 했다. 그 결과 이번 여름휴가는 7월28일부터 8월12일까지 장장 16일 동안 쉬게 되고, 9월 말에 있는 추석에는 9월22일부터 30일까지 9일 동안 쉬게 된다. 휴가기간에 근무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회사에 신청하고 특근을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노동중독에 걸려 있어요. 쉴 때는 모든 것을 잊고 푹 쉬어야 하는데 주말 이틀 쉴 때도 월요일에 뭘 할까 생각하니 쉬는 것 같지 않죠.” 노동조합 양현모 정책실장은 이 제도가 충분히 쉬고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처음 실시되는 제도다보니 현장에선 다소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서행철 조사통계부장은 이번 휴가일수 조정에 대한 현장의 여론이 반반이라고 전한다. “절반 정도는 휴가기간에 특근을 원하는 것 같고, 나머지는 막연해 하는 것 같아요.”
조합원들의 이런 반응은 놀이문화, 휴가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풍조에서 비롯된 것이라 노동조합은 보고 있다. 따라서 늘어난 휴가기간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조합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고민 중이다.

 

정규직 되는 길 열고 조합원 7천명 유지
대우조선해양의 비정규직 수준은 전체 인원의 절반을 넘는다. 협력사가 생산의 60%를 차지하고, 직영이 40%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 그러다보니 비정규직 인원만 해서 1만6천명으로, 조합원 7천명과 사무직 3천명을 합한 정규직 인원수보다 많은 실정이다. 여기에 자회사까지 포함하면 대우조선해양 소속의 정규직 인원의 비율은 더 적어진다.


노동조합은 정규직 감소인원을 최대한 줄이고 그 인원만큼 채용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에 조합원 7천명 유지를 회사와 합의해 2005년부터 해마다 다음해 채용인원을 노사합의로 결정하고 있다. 그래서 2006년에는 200명을, 2007년에는 220명을 신규채용하기로 합의했다.


신규채용에는 협력사 비정규직들을 대우조선해양의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하여 2006년에는 35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올해에는 신규채용 220명 중 50명을 협력사 비정규직에서 채용하기로 했다. 이러한 신규채용 및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일정 조합원을 확보해 노동조합의 힘을 키우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희망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규직들의 고숙련을 바탕으로 높은 품질 및 무사고 등을 유지해 회사의 경쟁력도 높이고 있다.


이외에도 노동조합은 매년 있는 해외연수를 확대실시하고 거기에 협력사 노동자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등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도 잊지 않고 있다.

 

단협 같은 노사협의회로 매각 대비

대우조선해양 노사는 노사협의회를 강화했다. 노동조합은 “매년 1년에 한번 있는 단체교섭만으로는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분기별 노사협의회를 단체교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기 위해서 노사협의회에 나온 안건은 그것이 회사안이든 노동조합안이든 합의하기로 했다.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한 대부분 회사의 노사협의회는 사실 지금까지 논의를 하다가 합의가 안 되면 그냥 서로의 안을 나열하고 끝나기가 일쑤였다. 대우조선노동조합은 그러한 노사협의회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합의제로 운영하기로 했다.

 

그 결과 노사는 노사협의회를 통한 정책경쟁을 하게 됐다.

양현모 정책실장은 “회사 안건도 합의를 해야하는 아픈 부분도 물론 있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신규채용건 등 우리가 얻어낸 것도 상당히 많다”며 “물론 노사관계가 항시 대립적인 구조를 갖고 있지만 앞으로 지속적이고 발전하기 위해선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노사관계는 매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노동조합은 기대하고 있다. 매각이라는 큰 판에서 노사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이냐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노사협의회의 합의제 운영과 신규채용건, 휴일근무조정 등이 모두 이런 고민에서부터 비롯된 것들이다.


이들의 행보가 대한민국 노사관계와 작업장에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 퇴직자 재입사 제도 주요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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