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 가수에서 ‘뽕짝’ 가수로
‘락’ 가수에서 ‘뽕짝’ 가수로
  • 최영순
  • 승인 2007.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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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필의 인생역전 <복면달호>

최영순
한국고용정보원 선임연구원
라디오, 혹은 턴테이블의 바늘을 통해서 귀에 익은 음악을 즐길 수 있었던 아련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악을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게 되었고, 더구나 전문 음악인이 아니어도 자신의 음악성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많아져 아마추어들을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입맛이 모두 다르듯 음악에 대한 취향도 마찬가지입니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있는가 하면 우리네 정서를 감칠맛 나게 표현하는 트로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전,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를 편 가르기 좋아했던 입방아꾼들은 클래식 음악은 우아함, 고상함의 상징이요. 트로트, 일명 뽕짝음악은 서민적이되 수준 낮은 것으로 인식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개성은 있고, 그 개성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요즘, 트로트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진 것이 사실입니다. 더욱이 지금의 한국가요 근간과 시장의 성장에는 뿌리 깊은 트로트 음악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원작은 일본의 <엔카의 꽃길>

음악과 음악인을 소재로 한 영화 개봉이 부쩍 늘어난 요즘 트로트 가수를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되어 이목을 받았습니다. 바로 개그맨 이경규씨가 제작을 맡아 더욱 화제가 된 영화 <복면달호>입니다.


<복면달호>는 <사무라이 픽션>으로 잘 알려진 일본작가 사이토 히로시가 쓴 작품으로 일본에선 1997년 <엔카의 꽃길>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엔카는 알려진 대로 일본의 전통음악입니다. 흔히 우리의 트로트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양 나라 국민의 정서와 감수성이 다른 만큼 공통점이 있되, 차이도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제작에 쓴맛을 본 경험이 있는 이경규씨가 일본유학시절 <엔카의 꽃길>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원작자를 설득하여 판권을 미리 구입하여 훗날 영화 제작을 하기로 일찍이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물론 원작영화인 소재인 엔카는 트로트로 바뀌었지요. 

 

▲ 영화 <복면달호>
뽕짝멜로디가 영화의 매력

 

언젠가는 락 가수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키우던 달호는 어느 날 ‘큰소리 기획’의 장 사장(임채무)에게 픽업되어 전속계약을 맺게 됩니다. 장 사장은 상품이 될 만한 가수지망생을 찾기 위해 전국을 찾아 헤매다 우연히 달호를 보고 스타성을 예감합니다.


가수로 데뷔시켜 스타로 만들어주겠다던 장 사장의 말을 믿고 밴드멤버와 결별한 채 그를 따라나선 달호, 그러나 그토록 꿈꾸던 락 가수가 아닌 트로트 가수가 되어야 하는 숙명을 안고 허름한 연습실에서 시작된 혹독한 트레이닝은 그를 실망시키지요. 트로트 가수가 되는 것을 거부하던 달호는 목욕탕에서 장 사장의 용문신을 본 후 그의 결정에 따르기로 합니다.


트로트에 필수적인 ‘꺾기’ 발성에서부터 반짝이 의상, 그리고 락 가수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긴 머리를 8:2 가르마로 변화시키기까지 모든 것이 낯설고 내키지 않았던 달호지만 장 사장의 피나는 노력이 어우러져 드디어 ‘봉필’이라는 예명의 트로트 가수로 데뷔 무대를 갖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완벽한 준비를 마친 데뷔 무대에서 라이벌이자 자신을 무시했던 가수를 발견한 순간 자신이 트로트 가수가 된 사실을 숨기고 싶어 어쩔 수 없이 복면을 쓴 채 무대에 오릅니다.


장 사장은 갑작스런 달호의 행동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복면을 쓴 봉필의 등장은 신비주의 컨셉으로 받아들여져 팬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되고, 그의 노래 역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봉필에게 언제까지나 행운이 함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보내야 하는 아픔, 그리고 그것을 노래에 담아 부르는 슬픔을 견뎌내야 하지요.


<복면달호>를 보고 있으면 영화 내내 우리 귀에 익숙한 트로트 멜로디에 흥이 납니다. 꺾기 연습을 하는 달호가 드디어 가수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며 트로트 가수의 감칠맛 나는 노래솜씨에는 피나는 노력이 숨어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복면달호>는 코미디 영화에 탁월한 소질을 보이는 연기력과 가수 역할을 위해 실제 락과 트로트를 맹연습했다는 차태현의 열연이 있어 그 재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임채무, 이병준 등의 오버연기, 그리고 봉필의 디테일한 무대의상, 우리나라 최고의 복면제작자들이 만들었다는 화려한 복면 등이 가세해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영화 속 이 직업>  트로트 가수
2004년 전국은 ‘어머나’의 열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통 트로트에 장윤정이라는 신세대 가수의 음색과 귀에 쏙쏙 들어오는 노랫말이 더해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장윤정의 ‘어머나’는 그동안 침체기에 빠져있던 트로트 가요계의 판도를 바꾸어놓았다고들 합니다.

 

이른바 신세대 트로트 가수들이 대거 등장하였고 이들이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입니다. 트로트라고 하면 나이 지긋한 어른들만 부르고 좋아한다는 선입견이 깨지고 2,30대 젊은 가수들이 부르는 신나고 경쾌한 노래들이 밤무대를 뛰어 넘어 공중파 프로그램 여기저기에서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덩달아 가수들의 인기도 올라 여느 가수 못지않은 팬클럽이 생기는가 하면 기획사에서도 소위 상품성이 있는 젊은 트로트 가수들을 물색하려고 앞장섭니다. 2007년, 이제 10대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룹인 슈퍼 주니어까지 트로트 음반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만큼 트로트의 인기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 정서를 가장 잘 반영한 국민가요로 트로트가 손색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황인 가요계는 트로트 가수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됩니다. 예전보다 생명력이 짧아지고, 팬들의 인기를 끌지 못한 수많은 트로트 가수들이 실패의 고배를 맛보기도 합니다. 또한 요즘은 음반판매에 별다른 희망이 없어 벨소리 다운로드 등 음원판매에 마지막 희망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활동무대와 팬 층이 넓어진 반면 갈 길이 더 멀어진 것이 작금의 트로트 가수가 넘어야 할 현실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