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가 ‘무섭게’ 몰려온다
FTA가 ‘무섭게’ 몰려온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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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환경의 변화, 어떤 영향을 미치나
쏟아지는 FTA 추진 정책 속
경제ㆍ산업 고려는?

바야흐로 ‘FTA의 해’가 밝았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4월 최초로 한·칠레 FTA 발효에 이어 11월 말 싱가포르, 연중 한일 FTA 체결을 위한 실무협상 지속 등으로 자유무역협정 체결 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올해에는 2월 중 유럽자유무역연합과의 공식협상 개최,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예비 실무협의가 예정되어 있다. 이 외에도 정부는 총 7개 협상대상, 22개 나라와 동시다발적으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다는 방침을 세워 놓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비교적 교역규모가 작은 국가들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유일한 FTA 체결국인 칠레에 대한 수출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기준으로 0.27%에 불과하다. 최근 협정이 타결된 싱가포르에 대한 수출 비중도 전체의 2.4% 정도일 뿐이다. 이처럼 교역규모가 작은 나라와의 협정 체결이 먼저 시작된 것은 우리나라가 FTA 후발국이기 때문에 본격적 체결 전 ‘실험용’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거대 경제권과의 FTA, 저부가가치화 우려

하지만 교역규모 2위 국가인 일본과의 FTA 체결 논의를 ‘실험용’으로 생각했다가는 ‘큰 코를 다치고 말 것’이라는 의견은 이미 폭 넓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자동차, 기계·부품 등 일방적 피해가 예상되는 업계에서는 정부에 ‘신중 추진’과 ‘관세철폐 유예’ 등의 요구를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자유무역협정은 산업구조조정과 동일한 효과를 가지고 있으므로 산업구조의 고부가치화를 위해서는 중장기 산업정책 측면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지난 11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업계별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FTA 로드맵 보완과제’를 발표했다. 이 발표는 “FTA 상대국의 우선순위 문제는 국제 분업구조에서 우리산업의 부가가치구조를 결정하는 중대한 변수이므로 단기적 추진 대상과 장기적 추진 대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하고 “거대경제권과의 추진보다는 시장잠재력이 큰 국가와의 추진을 우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전경련 회원사 400곳을 대상으로 FTA가 산업구조조정에 미칠 피해를 조사한 결과 응답 업체의 68.4%가 ‘선진국과의 FTA 체결 시 우리 산업이 저부가가치 중심 구조로 특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대답했고, 7%는 ‘매우 높다’고 답했다.

FTA 추진, 경제 실익 고려는 '추상적'

실제로 한국의 주력 수출제품인 공산품에 대한 일본 및 미국의 수입관세율은 1~2%에 그쳐, FTA 체결에 따른 수출 및 시장접근 기회 확대 효과는 미약하다. 반면, 중국이나 멕시코, ASEAN, 인도 등과의 FTA는 최고 29% 이상의 관세 인하 효과를 가지고 있어 추진될 경우 실질적 시장접근 기회를 넓혀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자유무역협정 추진 로드맵’은 이와는 반대의 순서를 설정하고 있다.

시기별 대상국을 보면 현재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일본이 단기 추진국으로, 우리나라 최대의 수출국인 중국이 장기적 추진 대상으로 되어 있다.

이런 가운데 제2기 부시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그간 장기적 논의 대상이었던 한미 FTA 논의는 더 속도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단기적으로는 피해가 확실한 한일 FTA와 장기적 이득이 불투명한 한미 FTA가 우선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경제연구소 조영제 박사는 “부시 행정부의 재정적자 타개책의 일환으로, 앞으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 대한 개방 압력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면서 “특정국가와의 FTA를 통해 주변국이 경쟁적으로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도록 하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부시 행정부가 재정적자의 축소를 약속했는데도 불구하고 국방비 지출로 인해 실제 실현 여부가 불투명해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대 중국 위안화 절상압력, 기준금리 인상을 비롯해 자유무역주의 확대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

한미, 한일 FTA 로드맵, 군사지도 위에 그렸나

 

우리 정부는 세계 최대시장의 안정적 확보와 경제적 유대 강화를 통한 한반도 안보유지 차원에서 미국과의 자유무역 협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효과는 ‘명분’일 뿐, 한반도를 둘러싼 중-미-일의 패권 경쟁과 정치·군사적 안보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시각도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신대학교 국제경제학과 전창환 교수는 “한미 FTA뿐 아니라 한일 FTA도 미국과 일본이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면서 “한일 FTA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문제가 많은 협정이 아니라 외교·안보적으로도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적 차원에서 한중 FTA는 한국경제에 ‘득’이 훨씬 많다는 것이 중론인데도 외교통상부가 한중 FTA에 관해서는 연구 용역조차 한 건도 발주하지 않은 채 한미 FTA부터 논의하는 것은 미국이 공식적으로 한중 FTA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교수의 주장이다.

중국도 미국과 일본의 포위 전략에 적극적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중국은 광범위한 내수시장과 원활한 외자유치로 인해서 FTA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일본의 중국 포위를 ‘탈출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2002년 서둘러 중-ASEAN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상대적으로 많은 양보를 하면서까지 중국이 아세안과의 자유무역지대 창설에 동의한 것은 FTA가 ‘안보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외교통상부 FTA 1국 김모 사무관은 “한미 FTA가 정치·안보적 측면에서 중요성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경제적 이유가 무시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업자원부 입장은 조금 다르다.

최근 산자부에서는 기술력 차이가 확실한 미국과의 FTA가 세밀한 계획과 경제에 미치는 파장에 대한 고려 없이 진행될 경우 주력산업에 대한 피해와 사회갈등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외교통상부와의 갈등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산업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산자부와 외교 정치 논리를 우선 고려하는 외통부와의 갈등은 한일 FTA 체결 논의 과정에서도 공공연하게 표면화되기도 했다.

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구체적 진단 없이 외교·안보 논리에 치우쳐 진행되는 FTA가 사회갈등과 국내 산업에 대한 피해를 예고한다는 우려 속에서 ‘FTA 체결 추진 원년’이 밝았다. 엄청난 사회갈등을 유발한 한·칠레 FTA와 뒤늦게 산업과 고용에 미칠 피해를 놓고 갑론을박이 오가는 한일 FTA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도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