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비=교육빚?
교육비=교육빚?
  • 이현주 기자
  • 승인 2007.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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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열풍에 흔들리는대·한·민·국

 

 

 

 

 

 

 

 

 

 

 

 

 

 

 

한동안 나라 전체가 ‘교복값’에 들썩였다. 한 벌에 100만원에 달하는 교복도 있다고 하니 학부모들의 허리가 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우리네 부모들은 자신의 처지를 떠나 아이들만큼은 제대로 교육시켜야 한다는 ‘투철한’ 교육관을 가지고 있기에 비싼 교복이라도 ‘남들만큼’은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교복값 문제를 제기했던 한 단체가 교복업체들로부터 돈을 받으려 했다느니, 교복 착용을 연기한다느니 하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결국은 대한민국 교육열의 한 단면이다.

노후대책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자식들 뒷바라지에 일생을 거는 부모들의 모습 한편으로는, 아예 아이를 갖지 않고 부부만의 행복한 노후를 설계하겠다는 신세대들도 존재한다.
사교육 열풍에 흔들리는 천태만상의 교육현실을 들여다본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30대 중반의 심모 씨는 8살, 4살의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10시간 파트타임으로 일을 한다. 아이들에겐 감성교육을 위해 미술을, 왕따를 당하면 맞서 싸우라고 태권도를 가르치는 정도라 한 달 학원비로 10여만 원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정부에서 유치원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 이 정도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크면 더 많은 사교육비가 들어갈 것이라 조금이라도 더 돈을 모으기 위하여 일을 한다.

아이들 앞으론 두세 가지 보험을 들어뒀는데 그중 두 개는 교육관련 펀드다. 아이가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할 때 뒷바라지를 못해줄까 제일 걱정이지만 다른 엄마들에 비해 자신의 교육열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이가 질려할까 염려되고 형편에 맞추려고 영어 과외나 학습지 과외는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마음이야 아이가 뒤처질까 걱정이고 학교에서 선생님께 미움을 받을까 걱정이다.

“아이들 편하고 자유롭게 살라고 시골로 가고 싶어요. 그런데 나중에 뒤처질까봐 시골로 못가죠. 아무래도 시골이랑 도시는 교육수준의 차이가 나니까.”
‘아이를 위해’ 시골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이를 위해’ 시골로 선뜻 가지 못한다는 심씨는 사교육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공교육에서 찾는다.

“요즘은 아이를 정말 아무 것도 안 가르치고 순진하게 초등학교를 입학시키면 안돼요.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면서 ‘가갸거겨’도 안 가르치고 첫마디가 ‘너희들 이건 다 알지?’하고 넘어간다니까요. 이런 건 엄마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학교 괴담이에요.”

 

 

남들이 보내니까 상황 봐서


길에서 만난 40대 가장은 아이들 교육을 부인에게 일임했다.
“애들 사교육? 이것 시키고 저것 시키고 애들 얼굴 보기도 힘들어요. 마누라가 직접 학원으로 태우러 다니니. 난 상관하지 않아요. 아내가 다 알아서 하니까.”

 

이처럼 골치 아파서 돈만 벌어다 준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교육관이 있어도 그냥 대세를 따르는 가장도 있다. 여의도 식당가에서 점심시간에 만난 한 40대 가장은 ‘대세론자’다.

“학원 줄이면 성적이 떨어져요. 성적 떨어지면 떨어진 과목 다시 학원 보내고 그러다 다른 학원으로 옮겨보고, 그때그때 바꿔서 지금은 무슨 학원을 몇 군데 보내는지 몰라요. 생각 같아선 안쓰러워 집에서 놀리고 싶은데 언론 보면 내 아이만 자꾸 처지는 것 같기도 하고. 걱정돼서 그냥 속 편하게 학원 보내죠.”

 

그런 부모들의 마음을 가장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가구매장에서 일을 하는 40대 주부의 말처럼 언론이다.

“우리 동네는 비슷비슷한 형편이라 별로 사교육 열풍 몰라요. 문제는 한번씩 언론에서 저 아랫동네(강남) 이야기를 마구 떠들어대니까 문제죠. 자꾸 위화감 들고, 이건 아니다 싶을 때도 있고. 제일 듣기 싫은 것은 교육수준의 대물림이 소득수준의 대물림으로 나타난다는 이야기예요.”

어떻게든 아이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기를 바라는 부모 맘이 어떤 부모인들 다를까. 불안감에 무리를 해서 학원이라도 하나 보내면 그나마 위로가 된다고 말한다.

 

 

 

나만의 교육관이 있다
“예체능은 사교육 안 해요. 주요과목으로만 해요. 법조계에서 일하려면 아무래도 성적이 우선 아니겠어요.”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40대 후반의 여성은 아이들을 법조인으로 기르는 게 꿈이다. 그렇기에 나름대로 자기만의 흔들림 없는 교육관을 갖고 있다. ‘성적’이 모든 것을 말해주기 때문에 아이의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사교육만 시킨다는 것이다.
설 준비를 위해 중학교 3학년 아들과 함께 나온 한 여성은 아들을 전혀 학원을 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애가 다니기 싫다고 해서 안 보내요. 보내달라고 하면 보내주겠지만, 억지로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지가 알아서 하겠죠.”
아이도 어머니도 사교육에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은 너무나 담담해 비현실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18개월 된 아이를 둔 30대 전업주부는 경험에 의한 교육관이 확고하다.
“제가 유치원 교사였어요. 교사 시절 5살 아이가 유치원에 와서 꾸벅꾸벅 졸고 아이들하고도 어울리지 않아서 알아봤더니 학원을 영어, 발레,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를 하더군요. 부모의 경제적 능력을 떠나서, 정서적 발달에 오히려 해만 끼치는 것을 보고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전 제 아이에게 전집도 안 사줘요.”

 

사실 지금 학부모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부모 세대는 ‘돈이 없어서’ 혹은 ‘자기 먹을 복은 자기가 타고 나기 때문에’ 그저 학교만 제대로 마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부모가 된 지금, 우리는 너무나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대세는 “아이가 원한다면…”

사교육 열풍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 교육관을 갖고 있는 부모도 아이가 원한다면 최대한 지원을 해주겠다고 말한다. 자녀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녀의 선택’마저도 힘에 겨운 사람들도 있다.

운수업에 종사하는 50대 박씨는 가족이 월세 옥탑방에 거주하며 노후대책은 꿈도 꾸지 못한다. 전세보증금까지 빼서 작곡을 공부하는 외동딸에게 투자한 때문이다. 박씨에겐 하나밖에 없는 딸이 노후대책인 셈이다.

“고등학교 때는 사교육비만 달에 120만원이 들었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해오던걸 그만두게 할 수는 없잖아요. 모르죠. 그걸로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성공해도 그게 그렇잖아요. 부모 인생은 부모 인생이라는 생각. 뭐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요. 학자금대출도 이자가 일년에 90만원 들어가요. 이제 2학년 올라가니 앞으로 더 들어가겠죠. 원금이야 나중에 지가 알아서 갚으면 다행이고.”

 

2002년 11월부터 2006년 7월까지 신용회복 지원 신청자들의 연체 발생건수 122만7301건 중 10.6%가 교육비 때문이다. 또한, 노후대책은 국민연금 정도이고 월급의 30%가 넘는 금액이 교육비로 사용된다. 문화생활비는 고사하고 식·생활비를 줄여도 교육비는 마지막까지 재고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에 대한 학원비는 그나마 평범한 수준. 일명 특목고, 예체능고를 자녀가 지원하면 자녀에게 거는 기대만큼 부모의 뒷바라지 부담도 크게 증가한다.

아이가 원한다면 부모의 도리로 어디까지 뒷바라지를 해 줘야 하는 것일까? 교육 때문에 기둥뿌리를 뽑아준다는 말은 노후대책에 있어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핵가족화를 넘어 가족붕괴라는 시점에서 자식에게 올인을 하여도 얹혀사는 미래 자신의 모습을 자식이 좋아할지 생각해 보라고 경제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해결책으로 부모의 경제사정에 맞게 투자할 수 있는 교육비를 아이에게 정확하게 알려주고 교육비 대비는 펀드 형식으로 바꾸어 노후대책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라고 충고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사교육 열풍에 땀나는 서민 
사교육 열풍은 양극화 심화 및 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저출산 및 이민의 급증 양상을 보이며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집안 형편이 괜찮은 경우 캐나다 혹은 미국으로의 유학이 늘었을 뿐만 아니라 형편이 되는대로 인도나 아프리카 등 교육비, 생활비 부담이 적은 곳으로 유학의 범위도 확대됐다.

“아이 한명 교육비 다 합치면 일억이 넘는다고 하잖아요. 유학 보내면 오히려 더 싸게 먹혀요. 또 타문화권에서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고 좋잖아요. 아이들 보러 일년에 두 번씩 부부가 여행 삼아 가는 재미도 쏠쏠해요.”

 

아프리카에 자매를 유학 보낸 40대 중반의 주부는 직접 현지에 방문하여 기숙사 및 교육과정을 확인하였다며 자신의 결정에 흡족해했다.

조기유학을 떠난 아이들의 일탈, ‘조기유학 붐’과 함께 사회문제화하고 있는 ‘기러기 아빠’ 문제, 교육 때문에 아예 온 가족이 이민을 가는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유학이민 프로그램’ 박람회가 성황을 이루고 한해 30만 명이 유학·이민을 선택하여 나라를 떠난다고 한다.

또 다른 사회적 화두는 저출산이다. 물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나타나는 사회현상이겠지만 교육비도 한몫을 하고 있다.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 교육비로 인해, 차라리 편안한 노후를 보내자는 생각이 확산되면서 아이를 하나로 한정짓거나 아예 무자녀를 계획하는 추세인 것이다.

 

16개월 된 아이를 안고 백화점 문화강좌에 나온 30대 주부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기로 부부가 합의 했다. “교육보험은 따로 들어 놓은 것은 없어요. 이제 준비해야죠. 그나마 하나만 낳기로 하니 부담이 좀 덜해요. 지금 이 문화강좌도 아기 감성발달 프로그램이에요. 여러 명 낳아서 남들처럼 못해주는 것 보다 한명에게만 신경 쓰는 게 더 좋잖아요.” 

물론 정부가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방과 후 교실 및 교육방송의 수능 반영도를 높여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예산을 확대했다. 불법고액과외 단속에 포상금까지 내걸었다. 그러나 아직 피부에 와 닿는 효과는 없고 부작용에 대한 우려마저 있는 게 2007년의 현실이다.

 

결국 획기적인 대안이 없는 한 비정상적으로 부풀어오른 사교육 열풍은 계속 될 전망이다. 그에 비례해 서민들의 사교육비 부담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개천에서 용’나기 힘든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 더욱 좋은 교육환경을 마련하고,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다시 좋은 직장과 부를 대물림하고 있다.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부모들은 자신의 가난을 그대로 자식에게까지 이어주게 된다.

 

이런 ‘신계급사회’는 어느 순간 폭발할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바로 지금, 교육비가 교육빚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라잡지 않으면 안 된다.
 

 신조어로 보는 대한민국의 교육

▲과파라치-사교육 열풍을 부채질하고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불법고액과외 신고포상금이 최대 200만 원까지 올라가면서 포상금을 노리고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

▲티처보이-다른 나라 교육계에는 없는 독특한 트렌드 용어. 학원·과외에 중독 되어 이젠 혼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학생을 마마보이에 빗대 만든 신조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사교육 열풍의 사회상을 보여준다.

▲교육가전(敎育家電)-교육을 하거나 받는 데 필요한 가전제품. 컴퓨터(PC), 텔레비전(TV), 비디오플레이어(VCR) 따위를 이른다.

▲에듀테인먼트-온라인 학습시장이 차별화되는 서비스를 부각시켜 브랜드 이미지를 확고히 하려는 업체들의 광고열기에 교육이란 뜻의 ‘에듀’와 오락을 의미하는 ‘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 ‘에듀테인먼트’라는 신조어까지 발생하였다. 온라인 학습의 인기를 실감하게 하는 용어.

▲컨닝게이트(cunning gate)-핸드폰 등 집단적 수능 부정행위와 관련된 의혹

▲독수리 아빠-언제든지 해외유학중인 자녀와 아내를 만나러 갈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되는 아빠를 부르는 신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