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분.석.>미국 양자간 투자협정 2004년 표준안
<긴.급.분.석.>미국 양자간 투자협정 2004년 표준안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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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BIT 표준안 어떤 내용 담고 있나
“미국 자본이 한국 정부도 규제할 수 있다”
노동 및 환경 규제 완화·금융서비스 완전 개방 등 ‘무제한 자유’ 요구

우리정부와 미국정부가 올 1월부터 한미 FTA 체결을 위한 예비 실무회담을 개최하기로 한 가운데 미국 무역대표부가 지난해 11월 ‘양자간 투자협정(BIT) 2004년 개정안’을 확정, 외교통상부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BIT 표준안은 94년 만들어져 98년 한 차례의 개정을 거쳤고, 2004년 2월 ‘2004 Model BIT’라는 개정안을 바탕으로 다시 제정됐다. 지난 11월 외통부에 통보된 개정 표준안은 94년 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방의 수준과 대상이 방대하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개정안이 무리한 수준의 개방 요구를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미 BIT 협상의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BIT의 궁극적 도달점이 바로 FTA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최초로 우리나라에 투자협정을 제안한 것은 1994년 캐나다, 멕시코와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당시다.

이 때 미국이 우리나라에 제안한 안은 북미자유무역협정 중 투자부문의 조항만을 분리시킨 것으로, 양국간 투자협정이 자유무역협정의 전 단계로 인식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또, BIT 없이 바로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들어간 미국-호주, 미국-칠레간 FTA에서 미국의 BIT 표준안이 자유무역협정 상 ‘투자 및 금융’ 부문 협상문으로 그대로 반영되기도 했다.

 

미 국무성과 무역대표부가 공표한 ‘BIT 2004의 목표’는 “BIT 프로그램은 투자자의 권리가 기존협정 (현대적 우호, 교역, 항해조약 또는 FTA)을 통해 보호받지 못하는 국가에 대한 해외 투자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중 ‘FTA’ 부문은 94년의 추진 목표에서는 빠져 있었던 부분이다.

모든 부문의 무제한 자유조치 요구

그렇다면 2004년 투자협정 표준안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단적으로 말해 2004년 개정안은 투기자본·투자자본을 구별하지 않고 국내의 모든 자본시장, 유무형의 가치, 자산의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94년 표준안에서도 일관되게 관철되던 원칙으로, 미국의 BIT 표준안은 직접투자와 M&A 투자 외에도 주식 수익을 노리는 ‘포트폴리오 투자’(간접투자)까지 투자 대상으로 명시한 바 있다.

하지만 2004년 개정 표준안은 이보다 더 많은 범위를 포함한다. ‘BIT 2004’는 투자의 대상에 선물, 옵션, 기타 파생상품까지 포함시켜 투자 폭과 대상을 대폭 넓혔다. 또, 투자의 정의도 ‘투자자가 직접적, 간접적으로 소유 또는 통제하는 모든 자산(every asset)’으로 규정, ‘자산’개념을 적극 도입했다.

 

94년 표준안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부문도 투자 대상으로 대폭 추가됐다. 투자대상을 명시하고 있는 2조 (a)항은 ‘국영기업 혹은 체결국 일방이 국영기업에 적용하는 모든 규제, 행정, 정부 권위를 행사하는 기타 인물’ (b)항은 ‘체결국의 정치적 하부 단위’까지 투자대상으로 명시해 공기업, 공기업 노동자, 지자체에도 BIT가 적용됨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결국 모든 자본시장, 금융상품, 자산 외에도 사실상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거나 가지게 될 모든 유무형의 가치가 투자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 이해영 교수는 “국내의 금융, 자본, 산업과 경제의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허무는 무제한 개방화 조치”라면서 “전 산업이 무차별적으로 외국자본에 노출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외국자본이 정부를 규제한다”

94년 안과 2004년 안을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의 하나는 ‘투자분쟁조항’이다. 94년 안에는 단지 하나의 항목으로 구성되어있던 투자분쟁 관련 사안이 개정안에서는 아예 하나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규정 조항은 양국간 분쟁이 일어날 경우 해외 투자자가 투자유치국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국제법적 절차를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정부의 규제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외국자본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낼 경우 심리는 세계은행 산하의 국제분쟁조정센터나 국내 법원에서 진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자본 입장에서는 굳이 국내 법원에서 심리를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소송은 대부분 국제분쟁조정 센터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정부 입장에서는 노동, 복지, 환경, 금융 등 자국민과 국민경제를 위한 정책을 구사하는 데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외국자본과 투자유치국 정부간 소송권이 불공평하다는 것도 문제다. 외국자본은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정부는 외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정부가 외국자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자본이 정부를 통제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 외에도 2004년 개정안에는 △최고경영자 및 이사회의 국적 제한 금지 △ 노동 및 환경규제의 완화 △ 금융서비스 완전 개방 등 기존 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던 규정들이 대거 포함됐다. 특히 새롭게 포함된 금융서비스 부문의 조항은 국내에서 시행되는 모든 금융 규제를 사전에 공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의 11조 2항은 ‘(a)금융서비스와 관련 일반적으로 적용될 모든 시행예정 규제를 사전에 공표해야 하며 (b) 시행 예정인 규제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합당한 기회를 이해당사자와 상대국에 제공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일반적으로 ‘건전성 규제 조치’는 금융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지만 한미 BIT처럼 투기성 투자마저도 적용대상이 되어 있는 조건에서는 오히려 외국 투기자본이 국내의 규제조치를 미리 파악하고 법망을 피해갈 수 있는 조건마저 제공하는 것이다.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 이해영 교수는 “대폭 강화된 2004년 BIT 표준안은 사실상 ‘미니 FTA’와 다름 없다”며 “BIT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이 노리는 ‘국민경제 기반 붕괴’의 무서운 후폭풍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