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슬러 위기에서 배우는 교훈
크라이슬러 위기에서 배우는 교훈
  • 참여와혁신
  • 승인 2007.04.05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변화에 대한 반응 속도 느리면 위기는 반복된다

 

심장희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원>

 

미국 자동차산업의 마지막 보루였던 크라이슬러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크라이슬러는 지난 2004년과 2005년만 해도 대형 세단인 300과 미니밴인 타운앤컨츄리, SUV인 그랜드체로키의 호조로 미국 자동차업체 중 유일하게 판매가 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4월에 판매가 큰 폭으로 감소한 이후 판매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7월에는 SUV, 픽업 등 상용차의 부진으로 판매가 전년동월 대비 약 40% 감소했다. 이후 다소 개선되다가, 지난 2월에는 판매가 10% 가까이 줄며 다시 부진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크라이슬러 월별 미국 판매 실적>

 

판매 감소에 따른 재고 비용 증가도 크라이슬러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크라이슬러의 재고일수(공급이 없다는 가정 하에서 현재 보유중인 재고가 모두 판매되는 데 걸리는 시간)는 지난해 3월에 적정 수준인 65일이었으나, 판매 부진에 따라 8월에는 93일까지 올라갔고 지난 2월에도 높은 수준인 78일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일부상용차 모델의 재고가 과도하게 많다는 것인데,

 

램 픽업의 재고일수는 111일, 다코다는 135일, 컴패스는 115일을 기록하고 있다.
판매 부진 및 재고 증가에 따라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가격 할인이 계속 늘어나는 것도 크라이슬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3월 대당 평균 할인액은 3,662달러였으나 이후 계속 증가해 올해 2월에는 포드보다 799달러, GM보다 1,476달러가 많은 5,482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주요업체들의 할인액 변화>

 

구조조정에 이어 매각추진까지
가뜩이나 판매 부진으로 이익이 줄고 있는 크라이슬러는 재고 비용 및 할인액 증가까지 겹쳐 경영 실적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2005년까지만 해도 흑자를 기록했던 크라이슬러는 2006년 14억 달러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크라이슬러의 부진으로 모기업인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재무실적도 크게 악화됐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메르세데스벤츠 사업부와 트럭 사업부가 호황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라이슬러의 부진으로 2006년 순이익이 전년대비 40% 감소했다.


이에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지난 2월 중순에 크라이슬러를 대상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2개의 공장을 폐쇄하고 1만3천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크라이슬러는 지난 2001년에 이미 16개 공장을 폐쇄하고 2만6천명을 감원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 바 있다. 또 다시 1만3천명이 감원됨에 따라 구조조정이 완료되는 2008년경에는 직원 수가 최대였을 때에 비해 절반 정도로 줄어들 전망이다.


또한 다임러크라이슬러의 CEO인 디터 체제는 “우리는 크라이슬러에 대해 최선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어떤 선택사항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라고 하며 크라이슬러를 매각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사실상 크라이슬러의 모기업인 다임러벤츠는 J.P 모건을 주간사로 결정하고 크라이슬러의 매각을 추진 중이다. 이에 성급한 언론들은 GM, 르노-닛산, 폭스바겐, 피아트, 현대차 등 여러 업체들을 크라이슬러의 인수 가능업체로 언급했다. 그러나 GM을 제외한 모든 업체들은 크라이슬러를 인수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1990년대만 해도 강력한 오프로드 이미지를 기반으로 많은 SUV 차량을 판기를 꺼리는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심지어 다임러크라이슬러 주주 2명은 크라이슬러라는 이름이 기업 이미지를 해치고 있어 기업명에서 빼버리자는 정관변경안을 제출하기까지 했다.

 

환경변화 대응 느려 위기 초래
그러면 크라이슬러는 왜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까지 처하게 되었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미래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이유로는 첫째, 장기간 정체되고 있는 미국 판매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크라이슬러의 전세계 판매 중 미국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로 매우 높다. 그런데, 지난해 미국 판매가 전년대비 2.6% 감소하자 크라이슬러의 판매도 7.0% 감소하며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둘째, 최근 자동차 시장의 추세와 맞지 않는 차급구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연평균 휘발유가격은 갤런당 2.57달러를 기록해 전년보다 0.3달러 상승했다. 이에 따라 저 연비인중·대형차 판매가 많은 (전체 중 약 80%) 크라이슬러는 판매 실적이 크게 나빠졌다.


주택경기가 둔화되고 고금리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도 중·고가 차량을 판매하는 크라이슬러에게 부담이 되었다. 특히 주택 경기 둔화는 램, 타코다 등 크라이슬러의 간판 픽업트럭 판매를 크게 감소시켰다.

 

이는 픽업트럭의 수요 중 가장 많은 부분이 건설용이기 때문이다. 크라이슬러를 비롯한 미국업체들은 이익의 상당 부분을 고가이며 마진이 높은 픽업 트럭 판매에 의존하고 있었으나, 지난해 픽업 트럭 판매가 크게 감소함에 따라 판매는 물론, 재무실적도 크게 악화되었다.


셋째, 경쟁업체에 비해 신모델 출시가 적어 모델들이 노후됐기 때문이다. 도요타, 혼다 등 아시아업체들은 승용차의 호조를 기반으로 상용차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으며, 계속 신모델을 출시하고 있다. 실례로 픽업트럭 모델이 없었던 혼다는 지난 2005년 초 릿지라인이라는 소형 픽업트럭을 출시하며 새롭게 시장에 진출했다.

 

이에 반해 미국업체들의 대응은 미미했으며, 특히 크라이슬러는 적시에 모델 교체가 이뤄지지 않아 경쟁력을 잃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16종의 상용차 모델 중 3종이 2000년에, 2종이 2001년에 출시되었다. 지난해 5종의 신모델을 출시해 판매 확대를 노렸으나 대부분이 연비가 떨어지는 중·대형차였던 관계로 판매는 크게 늘지 않았다. 승용차의 경우는 더욱 심한데 12종의 모델 중 3종이 2000년 이전에 출시된 모델이고 2종이 2000년에 출시되었으며, 2004년 이후 출시된 모델들은 차저, 캘리버 등 3종에 불과했다.

 

현지화하지 못한 다임러의 경영전략
크라이슬러가 대외 환경 변화에 따른 대응을 하지 못해 부진을 겪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다임러벤츠와의 합병에 따른 부작용을 잘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첫째, 크라이슬러에 무리하게 다임러의 방식을 적용시킴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실례로 크라이슬러는 기능 간 유기적 협력을 통해 기존 플랫폼을 활용한 틈새 상품을 저비용으로 신속하게 개발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합병 이후 크라이슬러의 제품개발방식을 배제하고, 성능이 우수한 차량 개발에 자본, 시간 등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제품개발과정이 이전보다 길어졌고 신제품 출시도 줄었다.


또한 크라이슬러의 경우 합병 이전에 조직 및 상하 간 벽을 없애고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통해 창조적인 아이디어 제공을 장려하는 분위기였던 반면, 다임러벤츠는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 하에서 직책과 직무에 따른 단계별 의견을 공식적으로 수렴하는 절차를 중시했다. 다임러벤츠식 의사결정 문화가 크라이슬러에 일방적으로 주입되면서 적지 않은 반발이 생겼고 창의적인 제품이 나오는 일도 줄었다.


둘째, 합병에 따른 부작용으로 경영환경 변화를 탐지하는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합병 이후 양사 통합 과정에 신경을 쓴 나머지 경영환경 변화를 감지해 이에 대응하는 역량을 키우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또한 합병 이후 크라이슬러의 미국인 경영진이 대거 퇴임하고 다임러벤츠의 독일인 경영자들이 수뇌부를 차지하면서 미국 시장의 환경 변화를 감지하는 레이더가 무뎌져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더불어 조직이 커지고 유럽과 미국 등 두 개의 지역으로 나눠짐에 따라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의사 결정이 지연됐다는 점도 크라이슬러가 위기에 빠지게 된 배경이다.

 

한국 기업에 주는 교훈
그렇다면 한국의 기업들이 크라이슬러의 위기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리스크 관리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 시 여러 곳에 분산 투자함으로써 위험을 회피하는 것처럼 기업도 사전에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업의 리스크 회피는 지속가능경영(Sustainability), 즉 영속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하다.

 

 크라이슬러의 경우 미국 판매 비중이 80%이며, 상용차 판매 비중이 80%로 매우 높은 데도 한 곳에 집중된 사업을 다른 영역으로 분산하는 일에 소홀했다. 만약 크라이슬러가 GM이나 포드 같은 다른 미국업체들처럼 신흥국 공략에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거나, 고 연비차 판매 확대를 위해 승용차 및 CUV 신모델 출시를 크게 늘렸다면 현재 닥친 위기를 피할 수 있었거나, 적어도 위기 수준을 현재보다 낮출 수 있었을 것이다.


크라이슬러는 지난해에 이르러서야 북미 외 지역에서 판매를 늘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또한 아반떼급 준중형차인 캘리버를 출시했고, 중국업체인 체리와 소형차 생산 제휴를 체결하는 등 고 연비차의 판매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같은 크라이슬러의 전략들은 적절한 것이나 너무 늦었다고 판단된다. 해외 지역에서 브랜드를 알리고 판매망을 확대하는 데에는 적어도 수년이 필요하다.

또한 중국업체와 합작해 소형차를 생산하는 것도 2008년 이후가 되어야 가능할 전망이다.


둘째,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기업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현대는 불확실성의 시대이며 아무리 위험 관리를 잘한다고 할지라도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따라서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크라이슬러의 경우 고유가 상황에 미리 대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 고유가가 본격적인 이슈로 등장한지 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업체와 항상 비교되는 도요타는 일본 외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 인도 등에 현지 생산 시설을 늘려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에 대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라인에서 여러 종류의 차량을 생산할 수 있어 고객 선호 변화나 경영환경 변화에 따른 대응이 빠르다. 또한 차량 개발에 소요되는 기간도 미국업체들보다 약 6개월 짧은 18개월이어서 트렌드에 맞는 제품을 신속히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세계화의 진행과 BRICs를 비롯한 신흥국가들의 약진으로 향후 세계 경제는 과거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띌 것이다. 따라서 기업에 닥친 위험을 예견하며 빠르게 대응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미래는 기마 민족의 정신이 필요한 때
혹자는 현재를 기마 민족의 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일컫기도 했다. 이는 정착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농경사회의 마인드가 아닌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빠르게 적응해 문제를 해결하는 진취적인 마인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기업들 특히, 제조업과 관련된 기업들은 환율 하락과 원자재가 상승으로 영업이익이 감소해 위기를 맞고 있으며, 향후 일본과 중국 기업 사이에 끼여 넛크래커 속의 호두 신세가 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만약 우리 기업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손쉬운 미봉책을 시행하는 데 그친다면 구조조정 이후 6년이 채 안돼 다시 위기가 닥친 크라이슬러처럼 위기가 반복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위기를 계기로 변화에 대한 예측력과 대응력을 강화시키는 등 기업의 근본 체질을 변화시킨다면 현재의 위기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