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일]경쟁력과 고용안정 함께 추구하는 상생 협상
[독 일]경쟁력과 고용안정 함께 추구하는 상생 협상
  • 참여와혁신
  • 승인 2004.12.10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폴크스바겐 노사의 미래협약
이상민 한국노동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수년 전부터 독일의 여러 기업에서 체결되기 시작한 ‘고용보장과 경쟁력 강화 노사협약(Bundnisse zur Beschaftigung-ssicherung und Wettbewerbsstarkung)’은 최근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노사협약이 독일에서 대두된 요인으로는 무엇보다 변화된 경제적 환경을 들 수 있다. 독일 경제는 1993년에 심각한 경기 불황을 경험했고, 이에 따라 실업률이 가파르게 상승하게 되자 노동자들의 고용보장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게 되었다.


한편, 경기 악화와 국제 경쟁의 격화로 기업들은 존립의 위기를 느끼고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에 몰두하게 되었는데, 유럽통합이 가속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은 수준인 동유럽으로 생산설비를 이전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독일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더욱 가중되었다.

고용보장과 경쟁력 강화 노사협약 체결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의 기업 수준 노사관계 당사자들은 노사협약 체결을 통해 기업의 이익과 노동자의 효용을 동시에 높이고자 시도했다.

기업측은 독일 현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고용수준을 유지 혹은 확대할 것을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종업원평의회(Betriebsrat)는 근로시간, 작업조직, 임금제도에 관한 경영혁신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을 명시적으로 약속하는 방식으로 고용보장과 경쟁력 강화에 관한 노사협약을 체결했다.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 산하 경제사회과학연구소(WSI)는 1999년과 2000년에 1390개 사업장평의회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업체의 약 30%가 국내 입지와 고용 유지를 위한 사업장협약을 체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러한 결과는 1997/1998년에 조사된 결과와 비교해 약 6% 증가한 수치이다.

고용보장과 경쟁력 강화 노사협약에서 담고 있는 사용자측의 수행 약속 조항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전체 협약의 66%가 정리해고를 일정 기간 동안 (일반적으로 향후 2년간) 배제하는 내용의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고, 37%가 국내 투자 확대에 관한 조항을, 20%가 생산설비의 해외이전을 배제한다는 내용의 조항을, 19%가 아웃소싱 자제 조항을, 14%가 현재 고용수준 유지에 관한 조항을, 11%가 채용 확대에 관한 조항을 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즉, 국내투자 확대, 생산설비 해외이전 배제에 관한 조항들이 독일 국내에 자본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사용자측의 약속이라면, 정리해고 일정 기간 배제, 아웃소싱 자제, 현재의 고용수준 유지, 채용 확대 등과 관련된 조항들은 국내 고용을 유지 내지 확대하겠다는 약속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고용보장과 경쟁력 강화 노사협약에서 종업원평의회측이 약속한 내용들은 크게 근로시간, 조직, 임금 관련 사항들로 대별된다. 전체 협약의 82%가 근로시간 관련 조항을, 72%가 조직 관련 사항을, 19%가 임금 관련 사항을 담고 있다.

근로시간에 관한 조항들은 연장근로에 대하여 연장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대신에 노동자들의 자유시간을 확대하는 방안(63%), 고령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단시간근로제 도입(38%), 연장근로시간 단축(36%), 단시간 근로제의 확대 시행(26%), 근로시간 연장(12%), 연장근로수당이 지급되지 않는 토요근무제 도입(10%), 집단휴가(10%), 임금 보상 없는 근로시간 단축(5%) 등 주로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확대하고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한 방안들이다.


조직 관련 사항들은 기업구조 개편(49%), 교육훈련 강화(46%), 작업조직 현대화(36%) 등 조직구조의 합리성을 신장시키고 기능적 유연성을 강화하여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들이다. 이러한 방안은 노동자들의 소득 감소를 가져오지 않고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7년간 해고 없다

독일 금속노조(IG Metall)와 폴크스바겐사가 2004년 11월 3일에 체결한 ‘미래와 고용의 장기적 개발을 위한 협약(약칭 미래협약)’은 이러한 고용보장 및 경쟁력 강화 노사협약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노사 양측은 미래협약을 통하여 2011년 12월 31일까지 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종업원 해고 조치를 배제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양 당사자들이 종업원 고용안정을 위하여 매년 체결한 협약에서 해고 조치의 배제를 약속한 기간은 대개 1년이었으며 그 대상자에도 제한이 있었으나, 이번 협약에서는 그 기간이 무려 7년에 달했고 그 대상자도 독일 내 6개 사업장에서 종사하는 10만3000명의 모든 종업원과 직업훈련생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고용안정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독일 내 모든 6개 사업장의 생산 및 투자계획을 명시하고 있다. 노사 양측은 참여적 생산과정 설계, 직무다각화, 수평적 위계구조, 과정통합적 조직학습 등과 같은 혁신적 작업조직을 통하여 고용보장과 기업경쟁력 강화를 추구하기로 했다.


또한 폴크스바겐은 현재 폴크스바겐에서 일하는 모든 직업훈련생들을 2005년 9월에 전원 정규직 종업원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이들 직업훈련생들 중에서 85%는 폴크스바겐에서 채용하기로 하고, 나머지 15%는 AutoVision과 같은 폴크스바겐 자회사에서 채용하기로 했다. 이를 위하여 폴크스바겐은 자회사 AutoVision의 185개 일자리를 새로이 만들기로 했다.

사용자측이 제공한 미래의 투자 보장과 고용안정의 대가로 노동조합은 2004년 현재의 임금수준을 2007년 12월 31일까지 28개월 동안 상승시키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그 대신에 사용자는 2005년 3월에 직업훈련생들을 제외한 모든 종업원들에게 일시불로 1000유로를 지급하기 약속했다.

또한 노사 양측은 한동안 시행해 오다가 2004년 현재 중단되었던 집단성과급제도를 2006년부터 다시 도입하기로 합의했고, 집단성과의 지표는 기업의 성과를 기초로 하여 경영진과 종업원평의회가 공동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소득은 줄지만 시간은 마음대로

대부분의 독일 사업장들은 업종별 단체협약을 체결하는데 업종별 단체협약은 다시 독일 국내에서 몇 개 권역으로 분리되어 체결된다. 폴크스바겐은 자동차 제조업체로 금속업종에 속해 있으며 독일 연방주의 하나인 니더작센(Niedersachsen) 주에 속해 있으므로 업종별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게 되면 적용 기준은 금속업종 니더작센 주의 단체협약이다.

그러나 독일에서 폴크스바겐을 비롯한 일부 기업들은 기업별 단체협약(Haustarifvertrag)을 체결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사의 단체협약에 따라 폴크스바겐 현재 종업원들은 금속업종 니더작센 주 단체협약에 따른 임금 수준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아 왔다. 반면에 다임러 크라이슬러는 주요 공장들이 위치한 독일의 연방주 바덴뷔르텐베르크 주의 금속업종 단체협약의 적용 대상인데, 같은 금속업종에 속해 있더라도 바덴뷔르텐베르크 주 금속업종 단체협약에 따른 임금 수준은 니더작센 주 금속업종의 그것에 비하여 높은 편이다.

미래협약을 통해 폴크스바겐 노사 양 당사자들은 지금까지 시행하여 오던 근로시간계정제도를 협약으로 명문화했다. 종업원들은 마치 마이너스 통장과 같이 정규근로시간 이외의 추가적 근로시간을 근로시간계정에 적립하고, 정규근로시간에 못 미친 근로시간을 근로시간계정에서 차감하게 된다.

이를 통하여 종업원들은 필요한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재량시간이 늘어나고 ‘시간주권(Zeitsouveranitat)’을 강화하게 된다. 반면에 연장근로수당을 받을 수 없으므로 소득 감소를 감수해야만 한다.

폴크스바겐에서는 연간 정규근로시간에서 최고 400시간의 추가적 근로시간을 근로시간계정에 적립할 수 있으며 반대로 연간 정규근로시간보다 최고 400시간 부족한 상태로 근로시간계정을 유지할 수도 있다.

만약에 적립된 근로시간이 400시간을 넘어선 경우에는 주 35시간을 정규근로시간으로 놓고 추가적인 근로시간에 대한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고, 적립된 근로시간이 0 이상이고 400시간 이하인 경우에는 주 40시간을 정규근로시간으로 놓고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이와 같이 방식으로 주 28.5시간을 정규근로시간으로 채택하고 있는 폴크스바겐은 연장근로수당 지급에 필요한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