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투자 위축이다
문제는 투자 위축이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04.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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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 투자·신산업 육성 위해 재벌 시스템 바로잡자
미국의 환율전쟁 선포와 한국경제의 위기, 그리고 시각의 전환
최배근 건국대학교 경상학부 교수

한국경제는 현재 중병을 앓고 있다. 일부의 지적처럼 한국경제가 걸린 병의 병명은 ‘준(準)공황’이다. 내수 침체가 심각한 가운데 수출 성장세마저 둔화되면서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이 4.6%에 그친 것으로 확인되면서 올해 5% 성장을 공언하였던 정부 당국의 자세가 “5% 성장 극히 희박”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사실 정부만 “하반기 들어 내수 회복세가 수출 둔화세를 보완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를 하였을 뿐 대다수 전문가들은 올 하반기가 상반기보다, 내년이 올해보다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예상을 하였다. 가계소비와 기업의 투자지출이 하반기에 개선될 어떤 요인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수의 극심한 침체에도 불구하고 상반기에 5%대의 성장이 그나마 가능했던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개선된 세계경제환경 덕택이었다. 수출은 지난해 3분기부터 회복되기 시작하여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23.6%, 26.9%, 27.2%로 3분기 연속 20%대의 높은 신장률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올해 3분기에는 수출신장률(17.6%)조차 크게 꺾였다. 이에 따라 경제성장에 대한 수출의 기여도는 상반기 8.6%에서 3분기엔 5.8%로 크게 낮아졌다. 무엇보다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던 중국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고, 부시의 재집권으로 약달러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성장률 3%대 추락 우려


(원/달러) 환율 급락으로 내년에는 수출이 한자리 수 증가에 그치면서 성장률이 3%대까지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즉 심각한 내수불황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마저 미국의 공격적 ‘약달러’ 정책으로 IMF 사태 이래 최대 위기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 11월 17일 “환율 가치는 금융시장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며 달러 약세기조를 바꾸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밝힌 미국 재무장관 스노의 ‘런던선언’, 그리고 지난 19일 “미국 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수요가 궁극적으로 줄어들 것이며 미국은 경제적 충격을 예방하기 위해 막대한 경상적자와 재정적자를 줄여야만 한다”며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밝힌 미국 연준의 그린스펀 의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강한 달러를 지속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부시 대통령이나 부시 행정부의 발언은 정치적인 수사에 불과함이 드러났다.

 

게다가 그린스펀은 미국이 앞으로 외자 유치 차원에서 금리를 계속 인상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달러 약세가 지속될 경우 국제자본의 탈출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달러 약세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경상 및 재정수지의 쌍둥이 적자와 더불어 미국 경기회복세에 대한 의구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4125억5300만 달러에 달하는 2004 회계연도(2003년 10월~2004년 9월)의 재정적자 규모는 GDP의 3.6%, 올해의 경상수지적자 규모(6270억 달러)는 GDP의 5.4%에 해당한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서 미국의 주식·채권이 전 세계 투자가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문제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이 이자율을 끌어올리고 미국경제에 부담을 주어 달러 가치를 더욱 하락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부시행정부의 본심은 ‘약달러-고금리’


사실 미국경제가 경상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간소비를 조정해야 한다. 경상적자 문제가 기본적으로 미국 경제의 수입 증가에서 빚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상반기 미국의 개인저축률은 사상 최저 수준인 1%대(1분기 1%, 2분기 1.2%)였는데 3분기에는 0.4%로 더욱 하락하였다. 저축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를 많이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동안의 초저금리에 따른 부동산 호황과 부시행정부의 감세정책으로 미국 가계가 풍부한 유동성을 누렸던 것이다. 미국의 민간소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 수준이다.


미국의 경상 및 재정적자는 이처럼 높은 민간소비 수준과 감세정책에서 비롯한다. 문제는 민간소비의 위축이 경기하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성장과 관계가 있고, 역으로 경상수지의 개선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성장의 둔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국은 구조적으로 ‘약달러’ 정책을 지속시킬 수 없다.

이처럼 부시행정부 2기의 본심이 ‘약달러-고금리’로 드러나면서 부시행정부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의 ‘플라자합의’와 비교되고 있고, 미국 내 많은 경제학자들 역시 ‘제2의 플라자합의’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플라자합의가 재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플라자합의가 성공한 유일한 이유는 참가국이 모두 각국 내부 사정 때문에 달러가치 하락을 바랬던 반면, 현재는 세계 각국이 달러 가치의 하락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나 외국인이 보유한 미국자산의 규모 그리고 유가 등 현재의 상황은 1985년과 전혀 다르다.

게다가 미국의 ‘약달러-고금리’ 처방이 성공하려면 일본이나 EU가 금리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 플라자합의 당시 미국은 달러가치 급락에 따른 국제자본 탈출을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였으나 독일과 일본의 동반 금리 인상으로 효과를 내지 못하였고, 그 결과가 주식 및 채권시장에 재앙을 가져다 준 1987년 10월 19일의 블랙먼데이였다.

이를 계기로 미국 연준의 의장이 볼커에서 그린스펀으로 교체됐는데 그린스펀이 같은 상황에 직면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내년 환율 900원대 대비해야


이처럼 미국의 ‘약달러-고금리’ 정책의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구조적 내수 침체와 상대적으로 높은 물가상승률에 놓여 있는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파괴적이다. 내년에는 외환위기 발발 직전인 1997년 가을의 환율 수준인 900원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 모두가 동의하는 한국경제의 당면문제는 국내투자의 기피현상이다. 일각에서처럼 이를 기업의 사보타주로 이해한다면 문제해결은 어렵다. 투자율의 하락을 구조적 문제로 이해하지 않는 한 투자활성화는 기대할 수 없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한국 경제성장의 쌍둥이라 할 수 있는 재벌체제에 대한 이중적 시각을 바로잡아야 한다. 계열기업간 상호 보조를 통해 재벌체제가 과감한 대규모 투자와 장기적으로 전망 있는 산업의 육성, 즉 장기적인 성장동력의 확보를 가능케 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반면, 재벌체제는 채산성 없는 부실기업을 지탱시키고 계열사 연쇄 부실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위험과 손실의 규모는 국민경제를 담보로 하고 있다. 이익의 보장이 불확실할 때는 나눔이 독점보다 유리하다.

 

재벌 규제는 풀되 분배 전제돼야


재벌체제는 자신이 실패할 위험을 사회 전체적으로 분산시킨 시스템이기에 재벌체제가 유지되기 해서는 분배가 전제될 수밖에 없다. 즉 현재의 분배는 미래에 대한 보험인 셈이다. 국민들이 재벌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나눔은 없이 위험만 분산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벌기업이 출자총액제한제나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의 폐지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나눔의 지혜를 깨달아야 한다.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자칭 개혁진영 역시 재벌체제의 장점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향후 한국을 먹여 살릴 미래 성장동력의 확보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출자총액제한제의 강화나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경영권의 중앙 집중에 따른 재벌체제의 폐해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재벌기업과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내부감시체계의 강화를 통해 재벌총수와 주주와 사회적 이익이 합치하도록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투자 위축과 관련하여 또 다른 원인으로 금융의 중개기능 약화를 지적할 수 있는데 이는 무분별한 금융자유화 정책으로 외국계 자본의 금융시장 장악과 금융주권 상실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로 회귀할 수는 없다.

한때 근시안적 이익 때문에 금융자유화를 요구하였던 재벌기업이 최근 관계지향형 금융시스템의 필요를 주장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국내금융시장에 대한 외국인 자본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된 상황에서 외환위기 이전의 관계지향형 금융시스템의 구축은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연기금에 ‘사회책임투자’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연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도모하면서 주식시장 활성화를 통해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된다는 점, 건전한 기업경영 관행을 정착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 외국 투기자금에 노출돼 있는 우리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 등으로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연기금이 사회책임투자를 주도하게 되면 기업경영자는 시장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경제성, 사회성, 환경성을 함께 고려하는 경영방식을 채택하게 될 것이기에 노조나 지역사회나 사회단체가 기업과 반목할 이유도 사라질 것이다.

재벌을 장기적인 성장동력의 틀 안에서 바라볼 때 증대하는 재정팽창의 압력을 해소시킬 수 있는 길도 보인다. 우리 사회는 현재 재정여건이 급속히 악화되는 가운데 사회복지재정 지출의 증대나 공적연금 등 사회부담의 증대, 그리고 자주국방 및 통일 재원의 마련 등 재정팽창 요인들이 크게 증대하고 있다. 장기적 성장 원천을 조속히 구축하지 않을 경우 재정건전성의 악화는 오히려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