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來·不·似·春·
·春·來·不·似·春·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5.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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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하승립
봄은 봄이로되 봄이 아니로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입니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가 제법 기세를 떨치고 있지만, 달포 남짓이면 봄기운이 완연해 질 터입니다. 그렇게 봄인가 싶다가 또 여름이 성큼 다가오는 것이 요즘의 날씨입니다. 그런데 코 앞에 놓인 봄이 ‘봄이 아닌’ 것을 가장 절감하는 쪽이 노동운동 진영일 것입니다.


여전히 갈등의 골은 더 깊어만 가고,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봄을 맞을 채비보다는 겨울의 추위에 몸을 피하고 있습니다.

 

본디 춘래불사춘이란 말은 중국 전한 시대 원제 때의 일에서 유래했습니다. 기원전 33년, 원제는 걸핏하면 침략을 일삼는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반반한 궁녀 하나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 때가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하기 3년 전인데, 궁녀 왕소군의 미모 또한 클레오파트라 못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일이 묘하게 꼬였습니다. 원제는 궁중화가 모연수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틈 날 때마다 그 화첩을 뒤적거렸던 모양입니다. 모든 궁녀들이 원제의 사랑을 얻기 위해 모연수에게 갖은 뇌물을 써서 초상화를 잘 그려줄 것을 ‘청탁’했는데, 도도한 왕소군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모연수는 그 보복으로 왕소군을 ‘못난이’로 그렸고, 실물을 본 적이 없어 저간의 사정을 알 턱이 없는 원제는 왕소군을 흉노족에게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나중에 왕소군을 본 원제가 땅을 치며 후회했다고 하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뒷이야기에 따르면 궁중화가 모연수는 목이 달아났답니다.


어쨌거나 흉노족에게 보내진 왕소군이 타향에서의 쓸쓸한 심정을 이렇게 읊었다고 합니다.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胡地無花草) / 봄이 와도 봄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


지금 노동계에 필요한 것은 ‘사실’을 직시할 의지와 ‘사실’을 사실로 바라보는 눈입니다. 멀리 떠나 보낸 노동자들이 ‘봄은 봄이로되 봄이 아님’을 한탄하기 전에 말입니다.

 

이번호에서는 노동운동의 위기를 심층진단했다. 다소 거칠고 입에 쓴 얘기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귀를 닫는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돌 맞을 각오’로 현장의 독설들을 그대로 전합니다. 부디 이 ‘고언’들이 묻히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고용위기의 현장에서 거리로 내몰린 채 좌절과 아픔을 겪고 있는 퇴직자들의 현실도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노동운동의 몫입니다.


전미제조업협회가 갑자기 한국과의 FTA 체결을 서두르는 속사정도 들여다봤습니다. 아울러 호주와 미국의 노동자들의 FTA에 맞서 공동행동에 나선 배경도 들춰봅니다. 독일 폴크스바겐이 새로운 혁신모델을 찾아가는 과정도 소개했습니다.


진짜 봄을 향한 많은 이들의 아픈 속내와 소중한 제언들을 놓치지 말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