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한을 안고 날개를 펴다
천년의 한을 안고 날개를 펴다
  • 최영순
  • 승인 2007.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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恨의 정서를 소리로 담아낸 <천년학>

최영순
한국고용정보원 선임연구원
최근 들어 무려 천만명의 관객이 관람한 한국영화가 매년 기록을 갱신하며 등장하고 있지만 이처럼 한국영화 수적 호황의 역사가 그리 긴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터닝포인트로 꼽을 만한 영화 가운데 <서편제>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1993년 당시 1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국민영화로 자리 잡은 서편제는 한국인의 뿌리 깊은 정서인 한(恨)을 절절한 남도소리에 담아 많은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더욱이 전국의 빼어난 사계절 풍경을 눈이 부시게 풍성히 스크린에 담아낸 임권택 감독의 연출력, 오정해라는 소리꾼 배우의 열연 등으로 청소년부터 노년층까지 극장을 찾는 이들의 연령대 폭을 넓혀준 영화이기도 합니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서편제가 개봉된 지 15년이 가까워오는 지금,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천년학>이 개봉을 하였습니다. 또한 이 영화는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라는 수식어까지 붙어 있던 터라 세인들이 더욱 관심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서편제와 마찬가지로 <천년학>에서도 유봉, 동호, 송화 이 세 주인공의 운명과 소리가 그 중심축을 이룹니다.

▲ 영화 <천년학>
이청준의 소설 <남도소리>가운데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한 <천년학>은 <서편제>와 주인공 이름도 동일하여 속편 격에 속하지만 정작 스토리라인은 서편제를 살짝 벗어난 느낌이며 오정해를 제외한 주연배우들은 전편과 다른 배우들이 맡아 관객들 역시 서편제와는 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남남이지만 소리꾼 아버지 아래에서 함께 자란 동호(조재현)와 송화(오정해). 동호는 판소리가 생활고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고, 더욱이 오래전부터 연인의 감정을 느낀 송화를 누나로만 생각해야 함을 괴로워하다 결국 집을 나가 버립니다. 몇 년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송화가 눈이 먼 채 소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동호는 이제 송화를 누나가 아닌 연인으로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그녀를 찾아 길을 떠납니다.

 

가슴 아프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

하지만 두 사람의 운명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인연의 끈을 연결시켜 주지 못하고 각자 득음을 위해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닐 뿐이며 간혹 마주친다 해도 소리로만 두 사람의 애틋한 마음이 연결됩니다. 부인과 아들의 죽음을 맞게 된 동호, 젊은 나이에 부잣집 노인의 첩으로 들어간 송화, 그야말로 두 사람 모두 한(恨)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서편제>가 소리의 완성과 소리꾼의 애절한 삶에 포커스를 맞추었다면 <천년학>은 가슴 아프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더 무게중심을 두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장 감독의 이 100번째 영화는 개봉3주 만에 종영되어 전편과는 비교가 안 되는 초라한 흥행실적을 거두고 맙니다. 

 

제작과정에서 투자사와 제작사가 변경되고, 캐스팅된 주연배우들이 중도하차를 선언하는 등 그 시작부터 잡음이 있었던 것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지장을 주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서편제>를 능가하는 스토리가 없고 대부분 전편에서 다루었던 내용이라 관객들이 다소 지루해 하였다는 점, 그리고 전편의 감동을 다시 느끼기에 15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었다는 점 등이 그 이유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수려한 볼거리와 심금을 울리는 우리의 소리만으로는 그동안 영화를 보는 눈이 높아 질대로 높아진 관객들의 발길을 잡기에는 역부족 이었나봅니다.

 

 

<영화 속 이 직업>  전통의 맥을 잇는 국악인

영화 속 유봉, 동호, 송화는 득음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한평생 모든 사사로운 것을 버리고 정진하는 소리꾼들 입니다. 이처럼 과거에는 기존 국악인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도제식으로 소리의 완성을 만들어갔다면 요즘은 체계적인 국악교육을 받고 우리의 음악을 전승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입문 시 국악에 문외한인 것은 아니며 여타의 음악 장르와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부터의 관심과 자질이 무척 중요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통예능인이라고 불리는 이들까지 포함해 4,000여명의 국악인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대졸이상이 70%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한 이들의 진출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공도 서양음악과 마찬가지로 기악, 성악, 작곡, 이론 등으로 세분되어 있으며 실기의 비중도 매우 높습니다.


국악인들이 활동하는 곳은 국공립 혹은 사설 국악연주단체를 비롯해, 국공립 박물관, 국악방송국, 국악 관련 교육기관 등 다양하며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우리의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이 증가하여 국악공연도 매년 증가추세에 있고 여러 문화 분야에서 국악을 활용한 대중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전국 대학의 국악 관련학과도 27개에 이르고 있고 매년 100여개의 국악경연대회가 개최되고 있어 앞으로도 우리의 소리를 보존할 전문인력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이며 이들의 활동영역도 확대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읍니다.

 

하지만, 여타의 문화관련 종사자들이 그러하듯 이들 역시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에 어려움이 커서 많은 국악인들이 교육기관에서 후배들을 양성하거나 개인레슨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도모해야 하는 애로가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