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한 평가 공정한 보상이 리더십이다
엄정한 평가 공정한 보상이 리더십이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04.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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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리더쉽
<경제전쟁시대, 이순신을 만나다>의 저자
지용희 서강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잘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잘못하는 사람에게 벌을 주면서도 모든 사람이 수긍하게 할 수 있으려면 이순신같이 리더 자신이 깨끗하고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해야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흔히 사람들의 시기심을 빗대어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공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아 땅을 사거나 부자가 된 사람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속담이 생겨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만약 사촌이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먹는 것도 아껴서 푼푼이 모은 돈으로 땅을 샀다면, 과연 사촌 간에 배가 아플 정도로 시기심이 발동하겠는가.

승자는 존경 받고 패자는 승복하는 사회가 되려면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공정한 경쟁기반은 ‘평평한 경기장(level playing field)’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만약 평평한 운동장이 아닌, 경사져 기울어진 곳에서 축구경기를 한다면 언덕 위쪽의 골대에 공을 넣어야 하는 팀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서 경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불공정한 경기에서는 승자에 대한 존경도, 패자의 승복도 기대할 수 없다.

공정경쟁의 기반을 마련하려면 법과 제도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윗사람의 압력에 굴복하거나 혈연, 지연, 학연, 정파 등에 이끌리는 관행부터 타파해야 한다.


이순신은 훈련원 봉사라는 말단직으로 인사관계 업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 상관으로부터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을 특별승진시키라는 지시를 받고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서열을 건너뛰어 진급시키면 당연히 진급해야 할 사람이 진급하지 못한다. 이러한 불공평한 인사조치는 법을 위반하는 것이므로 서류를 작성할 수 없다.”

이 일의 직후 이순신은 좌천되었으며, 일년 반 후에는 결국 파면되고 말았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인사에서뿐 아니라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도 이순신은 부당한 방법으로 노력한 적이 없다. 이충무공전서에는 이순신의 명성이 매우 높았으나 뇌물을 바쳐 벼슬을 차지하려는 엽관운동을 하지 않아 출세할 수가 없어서 사람들이 이를 안타까워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강직한 성품 때문에 부당하게 8계품이나 강등당해서 다시 미관말직의 무관으로 근무하면서 활쏘기 연습에 열중하던 시절에는 지금의 국방장관 격인 병조판서가 이순신의 화살을 넣는 전통(箭筒)을 자기에게 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다. 병조판서에게 전통을 바치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은 다음과 같은 말로 병조판서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 전통을 대감에게 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감이 이 전통을 받으면 사람들이 대감을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또 제가 이를 드리면 사람들은 저를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별 것 아닌 전통 때문에 대감과 제가 수치스러운 말을 듣는다면 몹시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순신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는 커녕, 불이익을 각오하고 윗사람의 요구를 거절한 것이다. 자신의 직위를 좌우할 수 있는 상관에게 전통을 바침으로써 행여라도 특혜를 받을 것을 오히려 수치스러워 했던 정당한 소신의 발로였던 것이다.

이순신은 논공행상에서도 전공의 크기에 따라 공평하게 상을 주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당시에는 아무리 큰 전공을 세워도 신분차별 때문에 이를 인정받지 못했던 종들의 이름까지도 임금이 알 수 있도록 승전보고서에 기록하고, 이들에게 전리품을 우선적으로 나누어 주었다. 이러한 공정한 논공행상 때문에 천민들까지도 이순신을 따르고 용감하게 싸워 무적함대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순신은 공정한 보상의 바탕이 되는 엄정한 평가의 기준과 기회를 마련하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는데, 한산도에 과거 시험장을 설치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순신이 3도 수군통제사에 임명될 무렵 수군들에게는 실력을 공정하게 평가 받고 그 결과에 따라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당시 무과 시험이 있었으나, 수군들은 해상 활동으로 인하여 시험을 치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과 시험은 통제사의 권한으로는 행할 수 없었으므로, 이순신은 임금에게 장계를 올려 한산도에 수군을 위한 시험장을 특별히 설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당시 무과 규정 중 ‘말을 달리면서 활 쏘는 것’은 한산도에 말을 달릴만한 땅이 없었으므로 편전(片箭)을 쏘는 것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이순신의 이러한 노력은 수군 근무로 인하여 과거시험을 치를 기회마저 박탈당했던 군사들에게 공정하게 평가받고 그 결과에 따라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여 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함이었다.

이순신은 부하를 사랑하고 종들의 공로까지 최대한 포상하려고 노력했지만 부하들의 범죄는 용납하지 않았다. 난중일기에는 이순신이 도망병 등 부하들의 범죄를 처벌한 건수가 96건이나 기록되어 있다. 남의 개를 잡아먹은 부하에게 80대의 곤장을 때리는 엄중한 벌을 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전쟁 중에 각종 범죄가 난무하는 가운데 군율을 칼날같이 세우기 위해서는 부하들의 죄를 엄격하게 다룰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순신이 부하들의 죄를 엄격하게 다루어도 이순신 자신의 몸가짐이 깨끗하고 공정하게 모든 업무를 처리하였기 때문에 부하들이 이를 수긍하고 존경하였던 것이다.

 

열심히 하거나 말거나 간에 성과를 똑같이 나누어 가진다고 공정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공정성은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그만큼 더 많은 몫을 주는 것이며, 이래야만 동기부여가 되어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경영자가 공정한 불평등(equal inequality)을 실현하는 기업의 경쟁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혈연, 지연, 학연, 정파 등에 따른 개인적 이익이나 정에 이끌려 일처리에 공정성을 잃으면 경쟁에 져도 승복하지 않는다.

 

잘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잘못하는 사람에게 벌을 주면서도 모든 사람이 수긍하게 할 수 있으려면 이순신같이 리더 자신이 깨끗하고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해야 한다.

특히 지금과 같은 지식정보화시대에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조직구성원 간의 지식과 정보의 공유가 중요하므로 리더는 공정한 업무처리를 통하여 상호신뢰의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기업의 경영자 등 모든 조직의 리더들은 공정한 경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경기장을 수평이 되게 바로잡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