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여, 자녀 교육의 주체가 돼라”
“아버지여, 자녀 교육의 주체가 돼라”
  • 이승욱_심리학 박사
  • 승인 2007.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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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교육에 대한 자녀의 무관심은 부모 책임

이승욱 심리학 박사
납부타의 숲 상담클리닉 원장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의 흐름을 주도해 온 중요한 집단은 대학생들이었습니다. 4.19 혁명도,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투쟁들도, 기어이 6.29 선언을 끌어낸 87년 6월 항쟁도 대학생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역사들이었죠.


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흔히 정치적 세력집단으로 분류해서 386으로 부릅니다. 그리고 이들을 학습세대·운동세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올바른 정치적 인식을 갖기 위해 다수의 행복을 위한 세계로 변혁하기 위해 밤 새워 토론하고 학습하고 실천적 운동을 했던 세대였기 때문입니다. 한 달에 적어도 서 너 권 이상의 독서를 해야 했고 수많은 문건과 대자보를 읽고 신문을 탐독해야 했던 시절에 그들은 살았었습니다. 80년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선봉에 섰던 이들이 대개 60년대 생들이었죠.

 

 

사회·현실 문제, 학생들 “나는 모르쇠”


그런 386들이 이제 중고등학생들의 부모가 됐습니다. 빠르게는 대학생 부모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지금 아이들의 독서 수준과 사회적 인식 수준 그리고 더 나아가 사고 수준의 유치찬란함을 접하고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의 부모들은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무렵을 청년으로 살았던 이들입니다. 그 격변의 시대에 살면서 겪었던 구구절절의 인생경험이 아이들에게 전혀 전해 지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필자는 모 대학에서 강의를 합니다. 특히 교사가 되겠다는 학생들, 예비 교사들을 위한 과목을 가르칩니다. 게다가 이 대학은 한국 내 대학순위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명문이라고 할 만한 학교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수업시간에 이 학생들에게 교육계의 뜨거운 논쟁 현안인 삼불정책(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 본고사 금지)에 대한 의견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모두들 ‘뜨아’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싶어 이 정책에 대해 아는 사람들을 손들어 보라고 했더니 이런 정책과 현안의 문제에 대해 귀동냥으로나마 들어 본 적이 있다는 비율이 겨우 10% 남짓이었습니다.
 

또 놀라운 건 내친김에 현 정부의 교육부 총리의 이름을 물어 보았더니 아뿔싸, 100 명 중 정확한 이름을 기억하는 학생들이 통틀어 다섯 명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 물론 모르는 게 뭐가 문제인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학생들은 교사가 되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가 속할 단체의 수장의 이름을 아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요.

 

아버지, 교육에 결정적인 역할 해야

 

그냥 임용고사 합격해서 철밥통 하나만 꿰 차면 다 된다는 발상으로 교사가 되겠다면 그건 이 나라의 교육이 허무맹랑해졌다는 것임을 인정하실 겁니다. 교사를 천직이라고 부르는 것은 진작에 포기해야겠지만 이런 마음가짐으로 교사가 되면 장래의 한국 교육은 더 형편 무인지경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글쓰기 과제를 내 주었더니 분량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학생들이 30%가 넘고 내용 없이 구태의연한 소리만 하는 학생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런 학생들이 교사가 되면, 과연 우리 부모들이 공교육을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런데 이 학생들을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많은 이들은 이건 교육의 문제라고, 학교가 책임이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이건 상당한 부분 부모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의 책임은 막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우리 아버지들은 교육의 현장에서 엑스트라 급 조연의 역할도 안하고 있는 형편이죠.

 

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학부모 학교 방문 및 담임 면담 행사에 가보면 눈 씻고 찾아 봐도 아버지는 저 말고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들도 신기한 반응을 보이십니다.

 

심리와 교육 분야의 전문가로서 말하자면 아이들 교육에서 어머니는 기본을 담당하는 사람이고 아버지는 아이들의 수준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역할을 강조하지 않는 교육, 심리 전문가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론적인 강압은 차치하고서라도 인간적으로 내 새끼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선생님과 학습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먹고 살기 바쁘다고 핑계대지 맙시다. 일 년에 한번 고작 두 시간 정도 시간 못 낼 직장은 없지 않나요? 성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핵심적 교육 현안에 무관심하고 책이라고는 쥐뿔도 읽지 않고 글쓰기 실력은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이 예비교사들을 보면서 이건 정말 부모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아이(교사)들이 또 다른 내 아이들의 장래를 말아 먹지요.

 

그러니 아이들과 대화하세요,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세상을 가르쳐 주세요, 여러분들이 겪은 그 파란만장한 격변의 세월과 지금 감당하고 있는 세상의 무게를 이야기 해주세요. 역사는 청사를 통해서만 전해지지 않습니다. 애비의 입을 통해 인간의 삶은 그렇게 전승됩니다.

 

아쉽지만 <가족 보듬기> 연재는 이번 호까지입니다. <가족 보듬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누구도 제대로 가족을 보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건 내 자신도 보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자꾸 내 삶을 침략하고 훼방 놓습니다. 어떤 보이지 않는 구조 속으로 나를 밀어 놓고는 농락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세상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만, 나는 이런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를 보듬기는 힘이 겹습니다. 이것은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일입니다. 애비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망울은 가슴이 메입니다. 이런 세상을 나처럼 똑 같이 살아야 하는 내 새끼들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내 몸이 터지더라도 내 가족을 보듬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완벽하게 할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족 보듬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욕망을 내려놓지 않으면? 자신도 가족도 보듬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은 내 욕망에 비해 너무 거대하기 때문입니다. 건강, 평안하십시오. 그 동안 황량한 제 글을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