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제복 뒤에 숨겨진 원죄
[주홍글씨]제복 뒤에 숨겨진 원죄
  • 참여와혁신
  • 승인 2004.12.10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성이 통제할 수 없는 유혹에 빠져드는 우리의 모습은?

▲ 최영순
한국고용정보원 선임연구원
오랜 공백기 때문에 영화배우인지, CF모델인지 잠깐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던 배우의 컴백은 관심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배우 3명과의 조우로 사람들은 더 관심을 가졌었지요.

영화 <주홍글씨>이야깁니다. 푸른 눈을 한 한석규, 이은주의 클로즈업된 포스터가 회자될 때쯤에는 이미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입소문이 난 뒤였고 언론과 제작사는 치정극이니, 은밀이니, 유혹이니 하는 단어를 써가며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 장르를 알 수 없도록 아리송하게 광고하고 있었습니다(영화를 본 후에도 장르는 계속 아리송합니다만).

강력계 형사와 세 여자의 사랑

<주홍글씨>는 한 남자, 그리고 세여자의 이야기이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또 모든 사랑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소 거칠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관점이 아닌 직업세계의 관점에서 굳이 영화를 들여다 보자면 <주홍글씨>에도 다양한 직업들이 등장합니다. 순종적인 아내와 열정적인 애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주인공 기훈(한석규)은 강력계 형사이며 순종적인 아내 수현(엄지원)은 첼리스트이며 열정적인 애인 가희(이은주)는 재즈가수입니다.

또 한 명의 여자인 경희(성현아)는 사진관을 운영합니다. 배우 한석규는 ‘텔 미 썸딩’에 이어 다시 한번 형사를 맡아 열연합니다. 그러고 보니 한석규는 영화 속에서 3류 건달이거나, 형사이거나, 특수요원이거나, 간첩이었으므로 쫓고 쫓기는 배역의 단골주인공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속 단골 직업, 경찰

사회의 정의를 위해 불의와 맞선다는 의협심 때문이 아니더라도 남자아이들이 세상을 알면서, 그리고 이 세상에 참 많은 직업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장래희망직업으로 꼽는 첫 번째 직업이 형사 혹은 경찰일 것입니다. 간혹 비리나 과잉진압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찰들은 오염 가득한 도로 한복판에서, 어두운 골목길에서, 사이버 상에서 국민과 사회의 안정과 평온을 위해 묵묵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찰제복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가 과연 몇 편이나 될까요?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직업이 경찰이라는 통계가 보도된 적도 있었으니까 감초직업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경찰이 등장하는 영화는 대부분 시원한 액션과 권선징악 구도를 가지고 머리로 진지해지기보다는 눈으로 즐기는 영화들이 많은데, 등장하는 장르가 다양한 것만큼이나 영화 속 경찰의 이미지도 가지각색입니다.

선을 대변하여 범법자를 쫓는 경찰의 직업윤리에 충실한 인물이 있는가하면 너무나 현실적인 경찰이 등장하기도하고 웬만한 범법자를 능가하는 각종 범죄를 일삼는 ‘나쁜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또 인간으로서 느끼는 연민과 냉혹함 사이에서 갈등하거나 너무나 나약하여 ‘웃긴 사람’으로 등장할 때도 있습니다.

반듯함 속에 감춰진 상처 그리고 죄

<주홍글씨>의 기훈은 단란한 가정, 보장된 성공가도, 거기에다 매혹적인 애인까지, 겉으로는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경찰입니다.

감독은 기훈을 통해 우리 인간이 가지는 원죄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가지고 싶은 것을 맘껏 탐하고, 소유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고, 이성으로는 제어가 되지만 결코 통제할 수 없는 유혹에 빠져드는 인간의 나약함을 기훈을 통해 욕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경찰일까요? 왜 수많은 직업 중에 경찰의 눈을 통해 모든 사람은 이기적임을, 모든 사랑에는 대가가 있음을, 모든 유혹은 재미있음을 보여 주려고 했을까요?

기훈의 경찰제복 차림처럼 반듯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겉모습과 달리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상처, 죄를 안고 산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요?

<주홍글씨>를 본 관객들의 평가는 엇갈립니다. 기훈이 모범 경찰관 표창을 받은 날 애인 가희와 함께 트렁크에 갇히게 되고 결국 비극의 끝에 다다른다는 충격적 반전(?)의 결과가 스크린에 펼쳐질 즈음 영화관 곳곳에는 관객들의 실소가 터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죄일까, 아닐까’라는 다소 심오한 철학 하나를 가슴에 담아 나오는 관객도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