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쳇바퀴 공부는 불안 만 조성할 뿐
12년 쳇바퀴 공부는 불안 만 조성할 뿐
  • 참여와혁신
  • 승인 2004.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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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감'을 안고 사는 아이
20대 10년동안 ‘제대로 된’ 공부 해보자

 
요즘 아이들의 정서적인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저는 불안이라고 하겠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 진로에 대한 불안, 취업에 대한 불안, 더 좁혀서 표현하자면 먹고 살아갈 일, 즉 밥벌이에 대한 불안이지요. 이 불안감은 정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든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든 별반 다르지 않더군요.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제가 교사로서 아이들과 씨름하는 것의 90%가 이 불안감을 잠재우는 일이라고 생각할 정도랍니다. 아이들의 불안은 끝이 없어 보이지요. 처음에는 작았던 불안이 점점 커지더니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단기적인 조치를 아무리 취하고 또 취해 봐도 금세 불안은 더욱 커져서 사람을 계속 불안하게 만들더군요.

고장난 한국 교육체제

고민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지요. 10대와 20대에 걸쳐 한국 사회의 젊은 세대에게 나타나는 이 공통된 불안감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요? 그냥 불안은 당연한 것이려니 생각하고 인생 내내 불안하게 살면서 불안감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는 것일까요? 혹은 불안감에 기대 초조하게 급박하게 살다보면 뭔가 이루게 되는 것일까요?

가장 썰렁하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한국의 경제 체제와 교육 체제가 일으킨 거대한 고장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는 것이지요. 알다시피 이제는 대학 졸업장을 갖고 있다고 해서 기업이 선뜻 고용해 주지 않습니다. 저성장 고실업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경제 원리가 달라진 것이지요. 대학 졸업장에, 각종 자격증에, 온갖 인턴 경력을 들이대도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세상입니다.

그런데도 국가는 여전히 대학 졸업장을 따면 뭔가 될 것처럼 교육 체제를 운영하고 있지요.

 

초·중·고 12년의 교육 과정이 오직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 공부로 짜여져 있으니까요. 교육 개혁을 한다고 몸부림을 치지만, 어찌된 일인지 누구도 믿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조건 대학에 가고 봐야 한다는 생각은 더 단단해지고 있으니까요.

이리하여 기업도 국가도 보장하지 않는 고용의 좁은 길을 향해 너도나도 일단 대학에 들어가고 보자는 심리로 12년 청춘을 송두리째 대학 입시에 내다 바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지요.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일면 속이 편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어차피 나만 불안한 게 아니라 너도 불안하고 모두 불안한 것이니까 좀 편하게 생각하자는 심리겠지요. 내 탓이 아니라 경제와 교육을 책임지는 사람들의 잘못 때문이고, 특별히 나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라 모두가 불안감에 떨고 있다고 생각하면 잠깐이나마 불안감이 자취를 감추는 것 같으니까요.

그럼 아이들에게 이렇게 설명을 해주면 되는 것일까요?

만약 그런 설명을 해주고 나서 ‘그러니 어쩔 수 없다, 그냥 공부해라’고 말한다면 아이는 엄청나게 무기력해질 겁니다. 12년 청춘을 불안에 떨면서 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대학생이 되어도 다시금 4년을 또 불안에 떨면서 공부만 해야 한다면, 그렇게 16년 세월을 보낸 젊은 사람이 이후 생애를 과연 행복하게 당당하게 살아갈까요? 아마 그 아이는 불안에 사로잡힌 나머지 눈치만 보면서 평생 다람쥐 쳇바퀴만 돌리게 되지 않을까요?

교과서가 아닌 실생활 체험 필요


아이들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부모님 세대를 보고 자랐으니까요. 청소년기에 죽어라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거나 직장에 들어가서 돈 좀 벌다가 아이 기르고 나면 중년을 넘고 그때부터 각종 질병과 노후 대책에 골머리를 앓는 인생살이를 다 지켜본 겁니다. 아, 나도 저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구나 생각하면서 아이들은 불안해진 것이지요. 부모도 학교도 기업도 국가도 오직 저렇게 살아가는 방법밖에 이야기를 안 해주니까, 일찍부터 허무해지고 불안감을 먹고 불안감을 느끼며 하루하루 살아가게 된 것이지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제는 먹고 살아가는 일을 20대에 해결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12년 청춘을 불안에 떨면서 보냈다면 20대 10년 동안이라도 불안해지지 않는 진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교과서 외우고 예상 시험지 풀어 보는 공부가 아니라, 이 세상을 알 수 있는 갖가지 체험을 하면서 20대를 보내야 그나마 남는 인생 장사입니다. 그러고서 30대에 이르러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신이 할만한 밥벌이’를 조율하는 게임을 해야 하지요.

 

요즘 아이들의 불안은 한 마디로 시험을 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입니다. 12년 내내 그것만 해봤으니까요. 취업도 시험을 봐야 들어가지요. 그러나 시험 문제가 불안을 해소해 줍니까? 아니지요. 그러나 해 본 것이 그것뿐이니 불안해지면 아주 무기력해지거나 아니면 또다시 시험공부를 하는 수밖에요. 자신이 직접 도전해 보고 이것저것 해법을 찾아 시도해 보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자신감이라는 자원을 만들어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지요.

 

‘불안’이 아닌 ‘자신감’으로

앞서 살펴보았듯 학교도 기업도 국가도 그런 자신감을 주지 않습니다. 1명의 성공을 위해 99명의 불행과 불안을 양산하는 몹쓸 체제에 갇혀 꼼짝달싹 못하고 있지요. 용기와 현명함을 갖춘 부모와 교사와 선배만이 불안 대신 자신감을, 불행 대신 행복을 선택하는 공부의 길을 권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12년 청춘을 그렇게 보낸 다음이라면 20대에라도 제대로 살아보도록 하는 것이고, 아직 10대라면 대학 입시의 협박에서 벗어나 가능한 한 많이 세상을 체험해 보는 길을 가게 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제는 기업도 학교도 국가도 창의적인 사람,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사람,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지요. 12년 청춘을 불안에 떨며 살아온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험지에 나오지 않는 문제에 직면해서 스스로 해법을 만들어 내는 사람을 ‘인재’라고 부르면서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그런 ‘인재’가 어떻게 길러질 수 있을까요?

우리의 아이들은 지금 행복해지기 위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감을 학습하고 내화하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할 것인지 용기와 지혜를 발휘할 것인지, 일차적인 선택권은 부모와 교사와 선배에게 있지요. 제가 아는 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어서 성장하게 하는 방법은 이 세상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불안을 없애려는 시도보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려는 시도가 훨씬 성공하기 쉽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