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때 들은 칭찬 여든까지 간다
세 살 때 들은 칭찬 여든까지 간다
  • 김종휘_하자센터 기획부장
  • 승인 2007.08.02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잘한다” 한 마디가 아이 꿈을 키우는 ‘큰 힘’

김종휘
하자센터 기획부장
중년의 부모 입장에서 보면 요즘 아이들은 알 것 같다가도 통 모를 때가 많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상당수는 “너 무엇을 하고 싶니?”라고 물었을 때 “잘 모르겠어요” 하고 대답을 하기가 쉽습니다. “되고 싶은 게 없어?”라고 재차 물어도 “네가 좋아하는 뭐라도 있을 거 아니니?” 하고 재촉해도 “잘 모르겠어요”라고 웅얼거릴 수 있습니다. 속이 타는 부모가 “왜?” 라고 캐묻는다면 아이는 십중팔구 “그냥요” 라고 대답하게 되고 그럼 부모는 내 아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나 싶어 답답해지겠지요.

 

 

내 꿈을 닮아가는 과정의 소중함

만약 “너 무엇을 하고 싶니?”라고 물었는데 자녀가 대번에 무엇을 하고 싶다고 똑 부러지게 대답한다면 우선 칭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꿈이 학교 성적이나 생활 태도를 보건대 도무지 이루어질 가능성은 보이지 않고 말 뿐인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아이가 그 꿈을 이루지 못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이 금세 바뀔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하지는 않으니까요. 이런 아이는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요즘 아이들과 비교하면 드문 경우입니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오늘의 꿈이 있는 아이는 앞서 말했듯 그 꿈을 정말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그 꿈을 꾸는 동안은 그 꿈을 닮아갑니다. 꿈을 이루는 것과 꿈을 닮아가는 것은 다릅니다. 부모들도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 어렸을 적에 꿈꿨던 자신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퍽이나 다를 겁니다. 그럼 이루지도 못할 모습을 꿈꿨던 과거의 시간은 헛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꿈을 꾼 동안, 그 꿈을 닮아가면서 조금씩 달라졌을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도, 평소의 태도에서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서도요.

 
정말 문제는 내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아이가 설령 공부를 잘하고 있든, 부모 말을 잘 듣고 있든,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믿든 내 아이를 조금 더 세심하게 지켜보아야 합니다. 이루지 못하더라도, 내일 또 바뀌더라도, 헛된 상상처럼 보이더라도, “하고 싶은 것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고 그것 때문에 몸이 달뜬 사람처럼 가벼운 흥분을 느낄 수 있는 아이의 모습을 원하는 부모라면 말입니다.

 

 

정보 홍수 속에서 꿈에 대한 방황 겪는 아이들 

제 생각으로는 요즘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가장 크게는 정보화 사회의 부작용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접합니다. 정보를 접하는 양이나 속도에서 어른들보다 뒤처지지 않지요. 오히려 앞선다고 할 수 있지요. 게다가 그 정보는 책을 찾고 전화를 걸고 어딘가를 방문해서 얻는 정보가 아닙니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태산 같은 정보 다발입니다.


한 마디로 요즘 아이들은 무수한 사람들의 한 마디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정보를 접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만화가가 되고 싶은 아이는 관련 동호회나 까페나 블로그에 접속해 정보를 얻습니다. 그곳에서 접하는 정보는 그 아이처럼 만화가가 되고 싶어 하는 또래 아이들은 물론 그 꿈을 갖고 만화가의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무수한 이야기입니다. 아이는 여기에서 어떤 정보를 듣게 될까요? 단적으로 말하면 한국 사회에서 만화가로 먹고 살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를 생생하게 줄줄이 듣게 됩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아이는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해서 만화가가 될까 하고 상상했다가 바로 그 꿈을 접습니다. 자신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만화가가 되는 공부를 해온 사람들도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는데 아이가 어떤 상태가 될까요? 기가 죽겠지요. 기가 죽으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그냥 하루하루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가게 되기만을 바라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하고 싶은 것이 뭐니?”라는 질문을 받으면 “잘 모르겠어요” 답하는 것이고 “왜?”라고 물으면 “그냥요”가 되는 겁니다.

 

‘용기’와 ‘격려’ 먹으며 꿈은 자란다

이것이 정보화 사회에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일찍부터 기죽어 지내게 되는 한 가지 배경입니다. 만약 그 아이가 인터넷에 접속해 그 많고 많은 실패담과 절망감부터 만나지 않았고 그냥 자기가 사는 작은 동네에서 “너 잘한다!” 소리를 듣고 자랐다면, 설령 그 아이의 만화 실력이 동네에서나 먹히는 그만그만한 것이라서 나중에 본격적으로 만화의 세계에 들어가려고 문턱까지 갔다가 좌절한다고 해도 그 아이의 기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 만화 그리는 것을 그만 두고 다른 것을 하더라도요. 이것이 중요합니다.

 
“너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니?” 라고 묻는 것은 “네가 너의 미래를 생각하며 널 흥분되게 하는 어떤 생각이나 상상을 갖고 오늘 하루를 살고 있니?” 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때 “있어요!” 라고 말하는 아이는 기가 살아있는 것이지요. 그 기는, 예컨대 작은 동네에서 한 가닥 할 수 있는 정도고 동네 사람들이 오가며 “너 잘한다!”라고 격려를 해줄 수만 있다면, 계속해서 자라고 강해질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화가가 와서 그 아이의 만화 실력을 보고 평가해주는 것보다 이 힘이 훨씬 큽니다.

 
알다시피 우리는 지금 그 ‘작은 동네’라고 말한 공동체나 이웃이 사라진 사회를 살고 있지요. 대신 인터넷과 TV와 휴대폰 같은 미디어를 통해 매개되는 가상의 거대한 공동체가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작은 동네’에서 맛볼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성취감이나 격려가 없습니다. 대신 엄청난 유혹과 좌절이 기다립니다. 이런 사회의 부모와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자녀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그 ‘작은 동네’를 만들어주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고 작게는 아이에게 계속 용기를 주는 대화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