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마저 나가면 어디로 가란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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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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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오정·오륙도 시대 新 흥부전

 

음식·숙박업 등 서비스업 중심의 영세 자영업은 퇴직자들의 마지막 탈출구가 된 지 오래다. 다른 직장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 십수 년간 익힌 기술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퇴직자들은 마지막으로 ‘생계형’ 창업에 나선다. 그런데 정부가 이 탈출구마저 봉쇄하겠다고 나섰다.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은 지난 2월 대통령에게 보고한 ‘소득 2만달러 시대 실현을 위한 신 일자리 창출 전략’을 통해 “우리나라는 도소매·음식숙박 및 기타 서비스업 일자리가 선진국 고용구조에 비해 60만∼290만개나 많은데 비해 사회적 일자리는 200만∼400만개 부족하다”고 밝히고 이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재정경제부와 중소기업특별위원회도 구멍가게, 식당 등 영세 자영업자 구조조정을 위해 부처 합동으로 대대적인 실태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3∼4월 중 실태 조사를 끝내고 이를 토대로 상반기 안에 지원과 구조조정을 병행한 업종별 자영업자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갈 곳 없어 장사라도 해 보겠다는데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중, 특히 소규모 음식·숙박업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사실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서비스업 고용분포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서비스업 고용 비중은 1980년 37.0%에서 2004년 64.4%로 급증했다.


또 2001년 기준으로 서비스업 취업자 중 도소매·음식·숙박업 취업자 비중이 43.8%로 프랑스 23.3%, 일본 28.1%, 미국 31.2%에 비해 훨씬 높았다. 이는 상대적으로 저부가가치 서비스산업으로 간주되는 음식·숙박업 등에 지나치게 많은 인력이 매달려 있다는 뜻이 된다.


대부분의 소매 자영업자들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IMF 이후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 정리해고·명예퇴직자들이 모두 노래방·식당·편의점·술집 등 소위 ‘먹고 마시는’ 장사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하룻밤 사이에 10개가 문닫고 또 하룻밤 사이에 20개가 문을 연다’는 우스갯소리는 더 이상 농담이 아니다.


창업전략연구소 이경희 소장은 “IMF 이후 퇴직자 창업의 문제점은 체계적인 창업지원기관과 실무 교육이 부재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으로, 특정 업종 편중 현상도 여기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도 “자영업 위기는 경기침체 때문인 측면도 있지만, 기업들이 줄여나간 인력이 음식업 등에 지나치게 쏠린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구멍난 사회안전망을 대신해 서민들의 생활터전, 서민경제의 기반으로 역할을 해 온 것이다.

 

취업과 실업 사이의 완충지대
이 외에도 생계형 자영업은 ‘노동시장의 가교’라는 역할을 맡고 있다. 퇴직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새로운 일자리 진입을 위한 준비기간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안주엽 박사는 “경제위기 이후 자영업이 임금 근로에 대한 대안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이 기간의 성패 여부에 따라 노동시장에 새롭게 진입하거나 아예 퇴출되는 과정을 겪기도 한다”고 말한다. 

안 박사가 2004년 ‘한국노동패널조사’ 표본을 추출해 자영업과 노동시장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 표본 자영업자 중 37.5%가 직장인의 경험이 있고 이중 절반은 지속적으로 자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로서 자영업이 갖는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또 직장인에서 자영업자로 이행한 사람 중 2/3 이상이 현재까지 자영업을 지속하고 있는 반면 나머지 중 45%는 미취업자로 남아있다. 자영업이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되기 전까지 ‘가교일자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쫓겨나는 거 말고는 모두 ‘셀프’
이처럼 자영업자들은 실업시대 완충지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정부가 자영업 구조조정에 착수키로 한 것은 무엇보다 외환위기 이후 영세 자영업의 공급 과잉이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문제의식은 정확하지만 해법은 난망하다.


일부에서는 벌써 안 그래도 자영업자들의 체감경기가 최악인 상황에서 무조건 구조조정의 칼날만을 빼 들어서 되겠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지난달 27일 삼성경제연구소가  전국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4분기 소비자태도 설문조사’ 결과 고졸 출신의 50대 자영업자는 현재와 미래의 경기, 소비성향, 가계부채 등 각종 경제여건에서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이필상 교수는 “서민들의 생활 기반인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이 빈사상태인 때에 구조조정을 잘못 추진했다가는 서민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서비스업의 고도화가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기는 하지만 퇴직자들이 별다른 할 일이 없어 모두 영세 자영업으로 몰려드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퇴출만 자유롭고 진출은 자유롭지 못한 노동시장 구조를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으면 늘어나는 생계형 자영업자를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거리에서 만난 한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 사장의 말이 날카롭다.

 

“자영업이 영어로 ‘Self Employed’ 라는 거 알죠? 이놈의 나라는 들어가는 것(취직)도 셀프, 나가서 살아가는 것도 셀프, 하여튼 쫓겨나는 거 빼고는 다 셀프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