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슈퍼 모델, 동물
영원한 슈퍼 모델, 동물
  • 안상헌_카피라이터
  • 승인 2007.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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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연기로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동물모델의 매력

안상헌
제일기획 카피라이터
지금으로부터 백이십 여 년 전인 1886년, ‘한성주보(漢城週報)’에는 ‘세창양행(世昌洋行)’이라는 회사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광고가 실렸다.


‘알릴 것은 이번 저희 세창양행이 조선에서 개업하여 호랑이, 수달피, 검은담비, 흰 담비, 소, 말, 여우, 개 등 각종 가죽과 소, 말, 돼지의 갈기 털, 꼬리, 뿔, 발톱 등… 여러 가지 물건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다소 생경한 상품들이 그 당시 시대상을 보여 주는 이 광고는 한국 최초의 근대적 광고로 꼽히는 광고다. 흥미로운 점은 이 광고에서 동물은 그저 교역 상품에 불과했지만 백여 년 후, 지금의 광고에선 동물이 주인공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2007년 판 한성주보가 나온다면 이런 광고가 실리지 않을까?

 

'알릴 것은 이번 저희 광고에서는 강아지, 고양이, 돼지, 양, 고릴라, 악어, 비버, 문어 등을 등장시켜 여러 가지 물건들을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요즈음 TV를 틀어 보자. 아파트 광고에선 강아지가 집을 찾아 가거나 비버 소장님이 아파트를 짓고, 집안 세탁기 위엔 고양이가 앉아 있고, 거실에선 고릴라가 국제전화를 걸고, 식탁 위 통조림 광고에선 참치처럼 좋은 먹을거리가 되기 위해 돼지가 목욕을 하고 산토끼가 양념을 들고 뛰어다닌다. 그리고 도로 위 승용차 광고엔 양떼가 등장한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광고를 만드는 데에는 'beauty(미인)' 'baby(아기) ''beast(동물)'를 활용하면 쉽게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둘 수 있다는 이른바 '3B법칙'이 있다. 광고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또한 감정을 무장 해제시키는 데 있다면 동물만큼 좋은 모델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동물은 분명 대사 전달이 불가능하고 근육의 특성상 인간과 같은 표정 연기에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과 친해지는 데는 동물만한 모델이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광고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사한 모델이 나와서 말을 걸어도 채널을 돌려 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동물들의 귀여운 연기 앞에선 사람들은 곧잘 관대해지곤 한다.

 

우리가 심리학에서 애완견을 이용한 동물 치료를 하듯 동물들은 사람들의 감정을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광고를 금방 까먹는다는 것이다. 돌아서면 어느 광고가 어느 제품인지 기억하는 모범생 소비자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동물과 관련시켜 상품이나 메시지를 전달하면 다른 경우보다 훨씬 손쉽게 상품이나 메시지를 떠올린다는 점과 캐릭터화 시키기 쉽다는 점도 한 몫을 한다.


요즈음의 관전 포인트는 예전만 하더라도 동물 모델이라고 하면 강아지나 고양이 등 우리가 익숙한 동물에 그쳤지만 요즈음 그 캐스팅 범위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품과 어울린다면 동물이 낯설어도 그만큼 눈길을 끌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예를 들어 모 보험 광고의 경우, 악어를 등장시켜 악어를 키우는 취미를 바꿀 수 없다면 보험을 바꾸라고 말을 걸고, 모 금융 광고에서는 파란 문어가 등장해,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진 상품을 그야말로 '문어발' 식으로 보여 준다.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TV를 썩 많이 보는 편이 아니라도 이 두 광고를 쉽게 떠올릴 것이다. 바로 이것이 3B법칙 중 동물이 가지는 매력이라고 할까?

 

이런 매력을 말해주듯 최근 프랑스에선 전기 절약 광고 모델로 개미핥기까지 등장했다. 이 광고에서 개미핥기는 긴 혀로 사람들이 무심코 켜 놓은 TV스위치를 끈다. 개미핥기 다음은 어떤 동물이 광고 모델로 등장할까? 여기는 광고 촬영장, 대사도 안 되고 표정 연기도 덜하지만 동물은 유행을 타지 않는 영원한 슈퍼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