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교섭 정말 필요한가
산별교섭 정말 필요한가
  • 참여와혁신
  • 승인 2007.09.04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중교섭과 이중파업 문제 심각
사측도 변해야 하지만 노측도 과감히 변신해야

박찬병
강원도 삼척의료원장
2007년도 보건의료산업 산별교섭
사측 간사
정말 산별교섭은 필요한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수년째 산별교섭을 해왔고 사측 간사로서 참여해 봤지만, 결론은 산별교섭이란 형태가 우리의 현재 상황에 꼭 필요한 과정인가 하는 생각에 착잡한 심정이다.

노조는 벌써 산별노조의 형태를 갖추고 수년간의 노력 끝에 산별교섭의 형태를 갖추고 첫 교섭을 시작한 이후로 점차 그 모습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노조의 끈질긴 요구와 노력 끝에 사측이 이에 대한 반응으로 점차 초기보단 많이 개선된 모습을 갖춰 나가고 있는 것도 인정한다.


외국의 산별교섭 사례가 어떤지는 과문하여 알 수 없어 차치하고, 지난 산별교섭을 겪으면서 느낀 점을 허심탄회하게 적어보고자 한다.

 

산별교섭 걸림돌 무엇인지 알아야

노조는 산별교섭을 기업별(병원별) 교섭의 단점을 보완하고 (병원)산업 전체에 일정하게 기본적인 노동조건을 통일시키고자 하는 바람으로 추진해 왔다. 또 산별교섭을 통해 교섭의 비용도 줄이고, 대각선 교섭이 갖는 불편도 개선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측은 늘 이중교섭과 이중파업의 문제와 병원별 또는 특성별(사립대병원, 국립대 병원, 민간중소병원, 지방의료원, 적십자사병원과 혈액원, 원자력의학원, 보훈병원 등 7개 특성을 말한다)로 각 특성들이 갖는 고유한 문제 때문에 태생적으로 어렵다고 말해왔다.


노사간의 이런 문제를 서로 절충한 모습이 드러났고, 금년도의 타결결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특성별 교섭 결과를 뛰어 넘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사측간사로써 지난 산별교섭에 참여한 결과 느낀 진정한 문제점을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사측은 산별교섭이 뭔지 잘 모른다. 많은 병원장들을 만나보면, 교섭의 중요성은 이해를 해도 산별교섭이 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적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의 경우도 계속해서 산별교섭을 해야 한다면, 정말 공부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는 생각했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망설여졌다. 또 기회도 없어 여전히 무지한 상황이다. 다른 병원장들의 경우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노사 모두 아니 정부까지 포함하여 함께 산별교섭에 대한 공부할 기회가 충분히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이중교섭과 이중파업이 여전하다. 한 번에 기업별교섭으로 할 수 있는 교섭을 두 번 하는 문제를 갖고 있다. 그래서 피곤하고 하기 싫은 것이다. 내 병원과 산업별 입장은 같을 수 없다.


우리 병원은 노사관계도 문제가 없는데, 다른 병원의 문제로 산별 파업을 당할 수도 있고, 우리 병원 때문에 다른 죄 없는(?) 병원들이 파업을 당할 수도 있다. 자칫하면 산별 파업하고 다시 지부교섭으로 또 파업을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산별교섭 하기 전에는 한 번이면 해결되는 문제를 이중으로 겪는데 좋아할 병원장은 없다. 노조는 과도기라고 주장하지만 그 과도기에 몇몇 병원이 경영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면 요즘같이 격변하는 의료제도 속에서 한번 나빠진 경영을 회복하기엔 너무 힘들기 때문에 노조의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셋째, 과연 전체 병원 산업이 동일한 임금체계나 근로조건을 함께 가질 수 있는 것인지에 동의하기 어렵다. 각 병원별 규모, 손익 정도, 내부적 인적 구성의 특성 등 여러 가지가 다른 입장에서 같은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경우 일부 병원은 산별교섭에 의하여 도태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데 이를 노조도 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흑자를 구가하는 병원과 임금도 체불하는 병원이 같은 임금 인상률을 적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그렇다면 노조도 차라리 경쟁력 없는 병원은 도태되어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은 어떤가. 그것이 경쟁을 통한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기엔 사측의 각 병원장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넷째, 누구도 나서기 싫어한다. 병원별로 교섭을 하게 되면 당연히 나서서 해야 한다.
그러나 100여개 병원의 운명을 책임지고 나선다는 것은 각 병원들의 입장도 모르면서 대변해야 하는 등 매우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자칫 노조로부터 집중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한다. 금년엔 좀 나아지긴 했지만, 과거의 경험상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노조에게 집중타격 대상이 되는 바람에 전체를 위해서 ‘나’ 가 아니라 ‘우리 병원’이 타격을 받게 됨으로써 나서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용감하게 나서서 사측 내부의 의견조율과정에서 비난을 받고 한편으론 노측으로부터 또 비난을 받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마지막에는 내가 속한 병원이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면 결과는 뻔한 것이다. 노조는 나서지 않는 원장들을 비난하지만 나서면 더 비난 받는 상황을 타개하지 않는 한 여전히 나설 교섭대표는 어려울 것이다.

 

다섯째, 병원마다의 노사관계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조율하기가 어렵다. 노사관계가 좋은 곳은 별 문제가 없지만 좋지 않은 곳은 강경한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조율할 수 있는 리더십이 현재까지는 없다.


내 병원의 문제를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이 도무지 불안해 나서지도 못하면서 전전긍긍하는 것이 대부분의 병원장들의 입장이다. 시간이 지나면 훌륭한 리더십이 나타날 런지도 모르지만 산별교섭의 문화가 깊이 배어 있지 못한 상황에서 남에게 우리 병원의 운명을 맡기는 일에는 상당기간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감안한다면, 앞으로도 산별교섭은 매우 험난한 길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사측의 진정한 노력이 배가되어야 할 것은 물론이지만, 노측도 과감한 변신이 필요다고 본다. 그저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 말고 진정으로 산별교섭이 갖는 의미와 그 장점을 실감하기 전에는 누구도 나서서 이 고된 길에 들어서길 꺼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측의 원장들이 팔 걷어 부치고 나설 수 있는 뭔가 큰 계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