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세상과 소통하라
종교, 세상과 소통하라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7.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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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불화'하는 종교, 무엇이 문제인가
남과 함께 가는 공존의 길 모색해야

40여 일 동안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됐던 아프간 피랍사태는 2명의 희생 끝에 나머지 인질들의 석방으로 일단락됐다. 석방에 안도하면서도 피랍사태를 초래한 한국 교회들의 선교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와 자성이 이어지고 있다.


피랍된 인질을 모두 석방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전해지던 8월 28일, 제주도 관음사에서는 폭력사태가 벌어져 10여 명이 부상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편으론 신정아 동국대 전 교수의 학력위조를 두고 검찰 수사가 한창인 가운데, 동국대 재단의 개입 여부를 놓고 불교계 역시 내홍을 겪고 있다.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이 사건들은 직·간접적으로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 종교와 관련된 잡음이 이어지고 있는 우리사회의 오늘을 되돌아본다.

 

 

신문 지상을 오르내리는 굵직굵직한 사건들로 종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요즘, 우리 사회에서 종교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또 부정적인 모습을 먼저 다루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 내용만으로 종교의 모습을 그려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그런 언론의 보도 속에는 종교가 가지는 여러 모습들의 단면들이 드러나 있기 마련이다. 개중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을 것이고, 또한 부정적인 면도 있다. 그중 종교의 양면적인 모습을 잘 드러내는 대표적인 4가지 모습을 뽑아 재구성했다.


# 1 아프간 피랍, 세상을 놀라게 하다

2007년 7월 20일, 아프간 지역에 선교활동을 떠났던 분당 샘물교회 소속 봉사단이 현지 무장 세력인 탈레반에 납치됐다. 이 사건은 뉴스를 타고 빠르게 전파됐고,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태 추이를 전달하는 언론에 국민들의 눈과 귀가 집중됐다.


정부가 나서서 인질 석방을 위해 모든 외교 채널을 총 동원해서 탈레반과 접촉했으나, 협상진행 과정에서 2명의 희생자가 발생해 국민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40여 일 동안 계속된 피랍사태는 결국 나머지 인질들이 모두 석방됨으로써 마무리됐다.


사태가 마무리되면서 그동안 한국 교회들이 진행했던 선교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특히 봉사활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단기선교에 대한 문제제기가 쏟아졌다. 아울러 교회 내부에서도 그동안의 모습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굳이 위험을 자초하면서까지 선교를 강행해야 하는 것인지, 위험지역 선교 시 안전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 논의가 한창이다.


# 2 폭력으로 비화한 권력다툼

제주도에 있는 관음사에서는 주지 임명을 둘러싸고 세력 간의 갈등이 폭력사태로까지 비화됐다. 지난 4월 20일 관음사 산중종회를 열어 새 주지를 선출했으나 조계종 총무원에서는 파행적인 사찰운영을 이유로 이를 인정하지 않고 주지 직무대행을 파견했다. 이후 관음사에 진입하려는 직무대행과 이를 저지하려는 세력 사이에 갈등이 4달여 동안 계속됐다.


결국 8월 28일에는 직무대행 측에서 제주지방법원의 ‘주지 직무집행 방해금지 가처분결정’을 받아 재진입을 시도했다. 신도들까지 가세한 격렬한 몸싸움으로 10여 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한 끝에 직무대행이 관음사에 진입해 사태가 일단락됐다.


이후 관음사 종무원에서는 종단 내부 사법기관 역할을 하는 초심호계원을 개정해 사찰을 파행적으로 운영하고 종헌·종법을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관음사 전(前) 소임자들에게 멸빈(승적박탈 과 함께 복적이 불가능한 최고 수위의 징계), 제적, 공권정지 등의 징계를 내렸다.


# 3 힘없는 이들과 함께 나누는 삶

대전 대화동에 위치한 살림교회 김봉구 목사는 2002년 ‘대전외국인이주노동자종합지원센터(외노센터)’를 설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외노센터에서는 3D업종에 주로 종사하면서 인권, 노동권, 의료권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쉼터를 마련하여 오갈 곳이 없는 이주노동자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각종 법률상담과 한국어교육, 무료진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주노동자를 지원하고 있다.


설, 추석 등 한국의 고유명절에는 한국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레크리에이션, 연극교실, 영어교실, 풍물교실, 컴퓨터교실, 요리교실, 축구교실 등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역사 속의 한국 종교
1. 숱한 문화재 속에 살아 숨 쉬는 불교
불교는 삼국시대 때 수입되어 1500여 년을 한민족과 함께 해온 한국의 대표적 종교이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귀중한 유산들을 곳곳에 남겨 놓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의 많은 부분이 불교와 관련된 유산들이다.

 

2. 일제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의 주체
함부로 숨도 쉴 수 없었던 식민지 시절, 민족의 독립운동은 많은 경우 종교의 울타리를 방패막이 삼아 진행됐다. 종교들 스스로도 독립운동의 주체가 되어 희망을 찾을 수 없는 민초들의 삶에 불빛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는 3.1운동을 이끈 민족대표 33인 중 다수가 각 종교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3. 양심과 인권의 보루
독재정권 시절은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도 힘든 시기였다. 종교인들은 자신의 양심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나아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싸웠다. 사회운동을 이끌었던 많은 이들이 종교인들이었으며, 종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종교와 가까운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80년대 명동성당은 정권도 어찌할 수 없는 사회운동의 성지였다.


# 4 관음의 자비로 반야용선을 띄우다

6월 24일 울산 울주군에서는 관자재요양병원 관음보살상 점안식이 진행됐다. 관자재병원은 암 말기환자 요양병원으로 말기환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평화롭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 위해 건립되고 있다. 관자재병원 건립은 1988년 설립된 봉사단체 자비회가 10여 년 간 진행한 사회봉사활동의 결과로 건립 중이다.


고해의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배 한 척을 만든다는 아주 절박한 심정으로 관자재병원 건립을 추진한다는 게 자비회를 이끌고 있는 능행 스님의 말이다. 차안의 세계, 병마의 괴로움과 삼독의 고통으로 가득한 사바세계에서 심신이 지친 사람들을 피안의 세계로 이끌어 줄 반야의 용선으로 관자재병원 불사가 진행되고 있다.


개방적인 이들의 창조적 연대 필요

이렇듯 한국사회에서 종교는 양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에 몸담고 있는 당사자들은 종교와 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갖가지 문제들이 나타나는 이면에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우리 사회의 종교의 모습에 대해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너무 세속화되었다고 평한다. 용산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는 “종교의 본질은 초월의 빛을 통해 내 삶을 재구성하여 성찰하고 삶의 의미를 바르게 하는 것”이라면서 “한국사회에서 종교는 초월의 빛을 통해 현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추종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종교가 자신의 삶을 비추고 바르게 하는 거울이 아니라 오히려 세속에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삼각산 금선사 법안 스님도 “객관세계를 정화해야 할 종교가 오히려 객관세계에 물들어가고 있다”며 종교가 세속화되어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종교학을 전공하고 있는 모 교수는 “종교가 본연의 목적보다 세속화된 권력을 추구하는 일부 종교인들로 인해 비판을 받고 있다”며 “이런 종교인들의 모습이 성장주의나 사찰운영권을 얻기 위한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종교인 스스로가 종교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김기석 목사는 “그동안 나 아닌 타자와 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며 “지금이야말로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창조적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종교가 나 아닌 다른 사람,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유지해왔고, 사회도 그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안 스님은 “나의 고통과 남의 고통이 둘이 아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 대해 배려하고 폭넓은 존중이 필요하다”며 한국의 종교와 사회에 소통의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법안 스님은 “자기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하지 않고 나와 남의 고통을 함께 극복하려는 노력을 할 때 종교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기석 목사는 “평화로운 의사소통을 통해 타자와 공존해 가는 훈련이 종교와 사회 모두에 필요하다”며 “내 안에, 우리 안에 들어와 있지 않아서 낯설고 불편한 타자와 함께 공존하고 공생하는 길을 찾는 것이 종교의 할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오직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 남과의 소통의 부재가 오늘날 사회 문제의 배경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들이 생각하는 종교의 역할도 그런 이기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남과 함께 소통하고 공존하는 길을 찾는 데 있다.

 

거리의 사람들에게 ‘종교’를 묻다

한국에는 부처와 예수가 너무 많다‥집단화·대형화 된 종교에 부정적 반응

TV를 켜고 신문을 펼치면 종교와 관련된 수많은 기사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만큼 종교는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때로는 훈훈한 미담으로 사람들의 지친 삶을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눈살 찌푸려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기사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종교와 사회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퇴근시간 무렵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 홍대입구역에서 앙케트 조사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삶의 가치관 형성의 기준이 되는 종교

자신이 가진 종교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은 “종교가 마음의 평안과 희망을 주고, 좌절하지 않게 잡아준다”고 이야기한다. 성당에 나간다는 40대 여성은 “종교는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줄 뿐만 아니라 삶의 기준이 된다. 종교를 통해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이한 경우도 있다. 자신은 종교가 없다는 30대 남성은 “종교는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한다”며 종교에 대해 대단히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냉소적인 반응은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 없다”(무교, 30대 여)는 소극적인 반응에서부터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겠다”(무교, 40대 남)는 격한 반응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거의 종교가 없는 이들이었는데, 현재의 종교가 보여주는 모습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종교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종교가 이성을 마비시킨다고 했던 30대 남성은 현재의 종교가 보여주는 모습에 대해 “특정 종교가 너무 힘이 세다”며 “한국에는 부처와 예수가 너무 많다”고 이야기한다. “부자가 믿는 예수와 가난한 사람이 믿는 예수는 같은 예수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힘 센 사람이 믿는 부처와 약한 사람이 믿는 부처도 같은 부처가 아니다”며 다소 격앙된 표정을 보였다.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40대 남성은 “종교 단체들이 너무 집단화, 대형화 되어 있고, 권력을 추구한다”며 “종교를 믿지 않는 것도 권력화 된 종교가 싫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재의 모습에 대해서는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 성당에 나가는 40대 여성은 “각 종교들이 너무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것 같다. 입장이 다르면 함께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다소 비판적인 모습을 보였다.

반면 교회에 나가는 20대 여성은 “현재의 모습에서 부정적인 면이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종교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부정적으로 비치는 것은 언론이 긍정적인 면은 사장시키고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40대 여성(기독교)도 “현재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종교가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세속적인 욕심과 강요가 문제 일으켜

종교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목회자나 승려의 개별적인 자질을 지적하는 40대 남성(무교)은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썩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양심적이어야 할 사람들인데 사기꾼이 너무 많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개인의 자질을 지적하는 많은 사람들은 “한국에서의 종교는 너무 세속화되어 인간적인 욕심에 사로잡혀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기독교, 40대 여)며 개인적인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종교가 없다는 50대 남성은 “사람마다 개인적인 선택과 취향의 자유가 있는데 자신의 종교만 강요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또 “너무 자기 주장만 강요한다”(천주교, 40대 여)거나 “단편적인 부분만 보는 것 같다. 상대를 이해하고 다양한 관심을 가지기보다 일방적인 태도가 많다”(기독교, 20대 남)는 등 이해하고 배려하는 노력의 부족을 꼽은 이들도 많았다.

 

사람들은 이처럼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종교에 대해서는 뭐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성질의 문제는 아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해서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