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과 공공성 갈림길에서 길 잃은 ‘비정규직’
효율성과 공공성 갈림길에서 길 잃은 ‘비정규직’
  • 성지은 기자
  • 승인 2007.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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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공사 관리원 외주화 논란 속 노사 입장 팽팽
좁혀지지 않는 입장차 속 불신은 팽배
공공기관 정규직화 논란 이대로 문제없나

서울시가 설립한 지방공기업으로 임대아파트를 공급, 관리해 온 SH공사의 택지개발 부문 관리원노동조합과 SH공사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SH공사는 통합관리센터 설립과 임대, 관리사업의 분리를 통해 인력 감축과 관리비 절감을 위한 관리체계 개선 사업 추진과 함께 현재, 사실상 무기계약직으로 62세까지의 정년을 보장받고 있던 관리원들을 외주화할 뜻을 내비쳤다.

 

이와 관련해 노동조합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 92.2%의 압도적인 찬성률로 파업을 가결시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 주도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고용안정화가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다분히 의도적으로 노동자의 고용조건 저하를 통해 효율성을 찾겠다고 하는 공사의 무책임한 처사라는 노동조합과, 비정규대책과 관계없이 공사의 발전과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회사의 입장이 팽팽하게 부딪치고 있는 SH공사 노사의 갈등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 성지은 기자 jesung@laborplus.co.kr
 

 

직접고용과 외주위탁, 쟁점은 무엇인가

노사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지만 서로 협의할 만한 구체적인 쟁점은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 않은 상태다.
현재 SH공사를 사측으로 둔 노동조합은 총 5개이다. 외주화와 관련한 논란을 빚고 있는 SH공사관리원노동조합을 비롯해 SH공사재개발임대주택관리원노동조합, 공사 정규직인 SH공사노동조합, 최근 설립된 SH공사통합관리센터노동조합, 그리고 SH집단에너지사업단노동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이는 택지개발 부문과 재개발 부문으로 나눠져 있는 SH공사의 체제 속에서 각각의 고용 형태가 다르게 이뤄져 있으며 SH공사 정규직을 제외하고 모두 정규직, 혹은 정규직화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는 계약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중 재개발 부문의 관리원들은 이미 2004년 외주화가 이뤄진 상태이며 논란이 되고 있는 택지개발 부문 역시 외주화를 통해 관리원의 전문화 및 인력 감축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중을 드러내 왔다.


SH공사관리원노동조합의 김천만 위원장은 “8개 통합센터 운영을 비롯해 공사에서는 이전부터 이미 외주화를 실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면서도 노조가 제시하는 협의안이나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안에 대해서는 전혀 수용할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SH공사 나종운 주택관리팀장은 “이는 어디까지나 향후 이러한 방향으로 체재 개편을 해 나가야 한다는 원칙에 불과하며 현재 아무것도 결정한 바가 없다”며 노조의 주장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러한 외주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내부 공감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회사에서도 인정한 상태이다. 회사측은 현재 ▲관리원들이 호봉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인건비 비중이 높아진다는 점 ▲정년 보장으로 인력 운영이 탄력적으로 운영되지 않아 관리비 부담이 높아진다는 점 ▲공사의 적자 비중이 높아 이를 공사에서 부담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들어 외주화 추진에 대한 의사를 내비쳤다.


이에 대해 김천만 위원장은 “현재 관리원들은 평균 8~9년 이상 이 일을 해 온 베테랑들이며 업계에서 드물게 평균 연령 또한 37.5세로 상당히 젊은 편”이라고 전제한 뒤 “장애인이나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을 그저 아파트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관리하는 것처럼 일을 한다면 이후 벌어질 상황들은 눈에 보일 듯 자명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우리 관리원들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공공기관의 직원으로서 우리만의 관리 기법을 통해 고객과 친밀한 스킨십을 유지해 왔으며 이는 회사에도 인정하고 있는 일”이라며 “이를 포기하는 것은 공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나종운 팀장은 이에 대해 “그간 오랜 시간동안 주민들과 함께 한 노하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하고 “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인 만큼 관리비를 절반가량 절감할 수 있는데 그 같은 상황에서 고객 역시 외주화를 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 성지은 기자 jesung@laborplus.co.kr

 

의혹과 루머, 진실은 어디에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맞서고 있는 가운데 SH공사의 통합관리센터 부실한 운영 체제 및 계약직의 정규직화와 관련한 내부 의견 역시 분분하다. 이와 함께 외주화 추진을 앞두고 명확한 회사 방침이나 노동조합과의 협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태도를 들어 관리원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회사를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한국노총 공공연맹 한동욱 실장은 “얼마 전 9월 1일자로 외주화에 앞서 전체 관리원 해고를 추진하려는 공사측의 행동에 대해 연맹에서 강력하게 항의했다”며 “배정근 위원장이 최령 사장과 직접 통화해 사회적 여론과 현재 정부 정책에 반하는 방침을 거두고 서비스 질을 발전시킬 수 있는 대안을 찾자는 설득을 통해 현재 회사 측의 추진이 유보된 상태”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나종운 팀장은 “전혀 그와 관련해 진행된 것이 없고 이는 루머에 불과하다”며 “7월이니 9월이니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그들의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SH공사는 현재 불미스러운 일로 퇴직한 임원이 만든 용역 업체와 대량 계약을 맺었다는 언론 보도와 함께 외주화 추진과 관련한 루머들이 잇따르고 있어 노동조합의 불신은 극에 달해있는 상태다.


이와 함께 9월 12일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건설교통위원회)은 SH공사의 통합관리센터 운영과 관련 “비용절감을 통한 관리비 인하와 효율성 제고를 위해 시행한 운영임에도 불구하고 아웃소싱으로 인해 인원은 줄었지만 소장 등 임금이 높은 인력에 대한 인건비 부담과 추가 위탁수수료 등의 증가로 오히려 관리비용이 증가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통합센터의 기동점검반 역시 위급한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시체처리반’이라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비용 절감 효과가 없다는 것은 내부적으로도 인식이 되어 있다”며 “오히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공사의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한 자구책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통합센터가 통과해야 하는 하나의 단계를 더 만든 셈이라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이후 운영이 원활히 되지 않을 경우에는 인력이 또 다시 물갈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기도 했다.

 

효율성과 공공성, 두 마리 토끼인가

이처럼 관리직의 외주화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각종 의혹과 문제점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이나 논의점을 내놓지 못한 채 효율성을 위한 추진이라는 명분과 노동자의 고용안정이라는 대외적 화두만을 주장하며 서로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대책과 관련해 예산이 통제되고 있는 공기업의 경우 현재 탄력적으로 운영되던 인력을 안정화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토로하지만 계속해서 지적되고 있는 방만한 경영에 대한 질책 등 비판의 눈초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반면 국민에 대한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해 보다 안정된 일자리에서 인력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노동조합의 주장 역시 국민의 주머니를 통해 고용 안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측의 강력한 추진이나 국민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는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


SH공사는 현재 노동자의 고용 안정화를 두고 효율성과 공공성이라는 측면이 양쪽 줄다리기의 끝에서 서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현재 공사의 미래와 고객 만족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의견과 현실적인 대안이 논의되지 못한 채 불신이 가중되고 있다.


고객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관리원 노동조합과 고객인 국민의 권익을 가장 먼저 배려해야 한다는 회사 측의 입장은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다. 향후 방향에 대한 투명한 공개와 적극적인 협의, 의견 개진을 통해 불신의 늪에서 빠져나와 공사는 무조건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책임 회피라는 비판을, 노동조합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객을 좌시한다는 오명을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