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자료 요구에 짓눌린 공무원
과도한 자료 요구에 짓눌린 공무원
  • 참여와혁신
  • 승인 2007.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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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출 제도적 보완 필요

 

홍성호 <중앙행정기관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공무원 스트레스 가중시키는 국정감사

여름휴가가 끝나면 마음을 가다듬을 여유조차 없이 공무원 특히나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매우 바빠진다. 매년 9월부터 12월까지 국회가 열리는 이른바 ‘국회철’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국정감사가 있는 기간에는 예상 질의 답변서 작성과 자료작성 등으로 야간근무는 기본이고, 밤샘근무와 휴일출근도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이로 인한 일상적 업무의 행정공백이 발생됨은 물론 심지어는 스트레스와 과로로 사망하는 공무원이 발생하기도 한다.
국정감사는 국민의 대표기관이라 할 수 있는 국회가 국정전반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으로써, 잘못된 정부정책의 개선을 요구하고 필요한 부분은 입법과정에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국정감사는 정부 정책이나 사업의 정당성 또는 적절성을 따지기 보다는, 국회의원 각 개인의 얼굴 알리기나 소속정당의 홍보를 위해 언론보도를 지나치게 의식하다보니 인기영합주의, 무책임한 폭로주의, 비판을 위한 비판의 장으로 변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특히나 대선이나 총선 등의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기에는 그 정도가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


 전문성 부족을 과다한 자료 요구로 메워

국회의원(실)의 전문성 부족과 피감기관의 자그마한 실책이라도 발견하고 싶은 욕심에서 저인망식 감사를 위한 과다한 자료를 요구하게 되고, 피감기관인 행정기관은 수 천 쪽에서 많게는 수 만 쪽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를 매년 제출하고 있다.

 


「국회법」이나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자료요구는 각 본회의, 위원회(소위원회) 또는 국정감사반의 의결로 요구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실)은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이라는 명분을 들어 법을 무시한 채 개별 국회의원(실)이 직접 피감기관에 자료요구를 함으로써 비슷비슷한 자료의 중복요구가 일상화 되고 있다.

 


피감기관의 공무원들은 자료요구의 불합리나 어려움 속에서도 실제 국정감사에서 불이익이나 기관장이 시달릴 것을 염려하여 요구하는 대로 응해줄 수밖에 없는 실정이며, 소속 공무원들의 어려움을 체감한 공무원노조 등에서는 이의 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으나 개선되지 않은 채 구태가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하여 관련법대로 한다고 해도 문제가 명쾌하게 해결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자료요구에 대한 국회 각 의결단위가 개별 국회의원(실)의 요구를 취합하여 조정할 시간적 인적 여력이 있는지 의문시되며, 설령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행정기관의 자료제출기간이 통상 10일에 불과한 점을 고려할 때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자료를 준비하여 제출한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자료제출이 늦어진다면 국정감사 또한 제대로 이행될 수 없을 것은 자명하다.

 


 별도 기구 설치도 고려해야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률상의 절차를 현실에 맞게 고치고 철저하게 준수하는 것 외에도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국회는 국정감사와는 별도로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국정조사를 할 수 있고, 상임위원회 등도 연중 열려 있다시피 하므로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국정감사는 그 범위를 중요한 정책이나 사업 등으로 한정하여 심도 있는 감사가 되도록 하는 방법도 그 한가지일 것이다.

 


또한, 위원회 소속의 개별 국회의원이나 소그룹별로 감사업무의 영역을 할당하여 중복을 피하고 전문성을 높이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도 있으나, 이 방법은 정당별로 그리고 개별 국회의원별로 관심분야와 이해관계가 얽혀 실효성이 다소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개별 국회의원(실)의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하여 미국의 의회조사국처럼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별도 기구의 설치를 고려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구는 최근 국가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 FTA 영향 등을 객관적으로 검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을 위한 의식전환이 선결과제

그러나 제도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 고민하기 이전에,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감사를 수행해야 하겠다는 국회의원(실)의 의식전환과 책임감 확보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행정기관 또한 정책이나 사업을 재검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겨 성실히 임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게 된다면 당리당략에 따라 국정감사가 연기되는 올해와 같은 사태가 재현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