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도 베어가는 서울 살이
가슴도 베어가는 서울 살이
  • 성지은 기자
  • 승인 2007.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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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찾아 희망 찾아 서울로 서울로
“자리 잡은 이상 여기서 성공해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아직도 처음 올라온 그 때의 낯선 서울 풍경을 기억한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길에 63빌딩에 한 번 들렀었고, 친구들과 방학을 맞아 롯데월드도 한 번 왔었던가.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잠깐 들렀다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 모아둔 돈 하나 없이 이 바쁘고 쌀쌀맞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돈벌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깨를 짓눌렀다. 

올라온 첫 날, 그래도 반갑게 맞이해 준 대학 선배의 자취방 한켠에 이불을 펴고 이제 정말 혼자 살아야 하는, 무서운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에 새어나오는 눈물을 악착같이 참으며 밤새도록 뒤척인다.

 

동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성공을 위해 야반도주하듯 보따리 하나를 안고 뜬 눈으로 코 베일까 든 것도 없는 보따리를 꼭 쥐던 70년대 시골 아가씨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일자리를 찾아, 내 꿈을 찾아 서울로 올라온 지방 구직자들은 이제 코 대신 마음을 베이며 서울 하늘 아래 살아간다.

 

 

‘서울’에서 살아가기

소방기계 설계를 하고 있는 장정기 씨(32세, 남)는 서울 생활 7년차다.
3년 전부터는 보드 타는 데 재미를 붙여 겨울마다 사람들과 함께 취미를 즐기고 있고, 일에도 어느 정도 경력이 쌓였지만 처음 취업이 된 후 무작정 서울에 올라와 자리를 잡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충남 연기군이 본가인 장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집에서 나와 대전에서 자취를 하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자취가 낯설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까지 각종 전기세며 수도세, 방세와 먹거리까지 막 독립해 돈을 벌기 시작했던 그에게는 낯선 생활고가 다가왔다.

장정기 씨는 “힘들여 번 돈인데 집에서 다니는 사람들은 쓸 일이 없는 돈을 쓰는 것이 아깝긴 하지만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 서울에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친구와 함께 살고, 또 그러다가 네 명이서 함께 산 적도 있다”고 말했다.
자취 생활을 하는 7년 동안 그를 거쳐간(?) 사람들이 꽤 된다고 말하며 웃는 그는 “사람 관계라는 것이 가장 힘든 것 같다”며 “이제는 추억이지만, 예전에 세 명이 함께 살았을 때 두 명의 친구가 서로 좋지 않아 술 한 잔 먹고 둘을 화해시키려 눈물로 호소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살이 노하우 베스트 3

하나, 냉동실을 활용하라
자취생활이 오래될수록 냉장고가 풍성해진다. 하지만 특히 남자일수록 요리를 해 먹는 것이 집 같지는 않다. 밥을 한 번 먹을 분량씩 용기나 비닐에 담아 냉동실에 얼려놓고 전자렌지에 데워 먹으면 간편하다. 또 호박, 당근 양파 등의 야채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찌개 등을 먹을 때 조금씩 꺼내 먹으면 처음 살 때처럼 신선하지는 않아도 최대 보관일수가 훨씬 늘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둘, 쓰레기는 철저하게 분리수거하라
친구들이 다녀간 후 먹다 남은 통닭이나 맥주 캔, 요구르트 병 등을 귀찮다고 한꺼번에 쓰레기봉투에 쓸어 넣어 버리다가는 쓰레기봉투가 다 찰 때까지 기다리다가 온 집안에 좋지 않은 냄새가 퍼지게 된다. 더구나 살림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자취 고수들은 ‘쓰레기’를 아껴야 잘 산다고 조언한다.

 

셋, 지인들을 집으로 끌어들이지 마라
서울에서 만난 친구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들과 회사 회식이 끝난 후 회사 동료들까지. 늦은 밤 택시비가 아깝고, 한 잔 더 마시고 싶다고 해서 집에 손님들을 너무 많이 드나들게 해서는 안 된다. 함께 찜질방을 이용하거나 확실하게 ‘곤란하다’고 말해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에는 혼자 들어갈 것. 이래저래 후유증이 많이 남는다.

이제 자취생활을 막 시작한 ‘백수’ 정영수 씨(29세, 남)는 일단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시작하려는 마음에 덜컥 고시원으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들어온 지 넉 달째 아직까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컴퓨터에 로그인을 하니 가입한 취업 까페만 10여 개.

 

정영수 씨는 “원래는 서울에 올라올 생각이 없었고, 부모님이 펜션하고 식당을 함께 하시는데 그걸 도와드리면서 함께 해 주길 바라셨다”며 “하지만 어릴 때부터 제 꿈이 그건 아니었던지라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올라왔다”고 털어놨다.


지금은 3년간 부모님의 일을 도와주며 짬짬이 받아 모은 돈을 쓰고 있는 상태다.

그는 “서울에 먼저 올라와 살고 있는 친구도 몇몇 있지만 이제 누군가에게 기대기에는 여러 가지로 어려운 나이가 됐다”며 “술 먹자거나 밥 사준다는 연락이 와도 처음에 올라와서는 반가운 마음에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지금은 최대한 자제하고, 돈도 만 원 이상 잘 안 가지고 다닌다”고 말했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찾나

이름을 밝히지 말아 줄 것을 요청한 직장 생활 3년차인 김선용 씨(가명, 25, 남)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군대에 갔다. 제대하자마자 서울에 올라와 이 곳 저 곳에서 일을 하면서 검정고시도 공부했고, 지금은 한 메이커 신발 매장에서 일하고 있다. 평생 직업을 고민하던 그는 백화점에 정직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여기 저기 이력서를 넣어보고 있다고 했다. 

 

김선용 씨는 “철이 없던 때에 왠지 서울에 가면 뭔가 지금의 현실과 다른, ‘쌔삥(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친구들도 성적이 좋지 않았을 때나 아르바이트가 시원치 않았을 때 모두 서울에 가겠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3년 동안 그가 얻은 것은 인스턴트 식품과 잘못된 자기 관리로 안 좋은 건강과 약간의 빚이다. 

 

그래도 돌아가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한가지다.
그는 “PC방과 찜질방을 전전하면서 보냈던 시간들을 후회 없게 하려면 이제 제대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서울에는 배워볼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서 짬짬이 돈 벌면서 방송통신대도 졸업하고 앞으로 무엇이든 배워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겠다”고 말했다.


혼자 독립하기에 가장 혹독한 곳이지만 그만큼 하고 싶은 것을 찾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더 버텨봐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 단촐한 살림살이 구석구석 ‘혼자 사는 남자'의 노하우가 배어있다.      ⓒ 성지은 기자
 

 

장정기 씨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장점도 많고, 하다 보면 무언가 내 손에서 설계해 만들어 낸다는 것이 좋다”며 “하지만 간혹 학력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기회가 된다면 공부를 좀 더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도 마찬가지로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외롭지만 서울에서 지내며 내일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직 취업을 하지는 못했지만 정영수 씨의 꿈은 웨이트 트레이너 자격증을 따고 나중에는 큰 헬스장을 운영하면서 모두 즐겁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을 개발하는 것이다.


“제가 운동을 좋아했는데 서울에 와서 진지하게 미래를 고민하면서 꿈을 확실히 갖게 됐어요. 일단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하면서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해야죠.”

 

취재를 통해 만난 이들은 본가 근처에 좋은 일자리가 있다면 다시 돌아갈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결혼을 준비할 시기이며, 부모님 부양에 대해 고민할 나이지만 바쁜 일상에 치여, 아직 꿈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사람도, 이제 막 올라와 모아 놓은 돈을 안타깝게 쓰며 천원, 백원을 아끼는 사람도, 몸 누일 곳 하나 없이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사람도.


이들이 서울에서 찾고 있는 것은 단지 ‘돈’이나 ‘출세’가 아니다. 그저 ‘할 수 없이, 여기서 하는 것이 제일 나아서’이다.


인터넷을 통해 전국 각지의 소식이 구석구석 퍼지고, 어디서든 서울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전국은 일일 생활권이 됐다지만 아직도 그들은 제대로 일을 하려면 ‘서울에 가야’한다고 말한다.
지난한 서울 살이, 그 속에서 “내가 살던 곳에서는 이룰 수 없던 꿈”을 찾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꿈과 고단한 삶을 비난할 수는 없다.

 

보따리 하나를 들고 상경하던 시골 소녀에서부터 지금 꿈을 위해 새로운 ‘탈향’을 꿈꾸는 이들까지, 이들을 위해 바뀐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진정한 ‘지역균형발전’이 이뤄질 수 있을 날들을 기대한다.

 

지역, 일자리가 없다
사람 빨아들이는 블랙홀, 왜 서울로 모이나

장정기 씨는 처음 서울에 온 계기에 대해 “기계과를 졸업하고 내가 있던 곳에서는 면접을 볼만한 곳이 없었다”며 “만약 지방에서 노력을 많이 해 취업을 했다고 하더라도 급여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결국 올라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협회에서 조사한 2007년 9월 현재 벤처기업 현황 조사에 따르면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근교 3개 지역이 전체의 61.3%를 차지한다. 대기업에 취직이 되어 올라오는 경우를 제외하고서라도 현재 지역 현실은 다양한 구직자의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김형기 교수는 수도권 인력 집중화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 경제가 살아야 하며 지역 내 중소기업이 살아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지역 중심 대학들과의 돈독한 산학협력 및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지역균형발전협의체는 수도권 집중화 반대와 지역 균형발전 촉진을 위해 펼친 1천만인 서명운동의 인원이 1119만여명이 넘어섰다고 밝혔다. 이들은 “수도권은 국토면적의 11.8%에 불과하지만 인구의 48.4%, 생산기능 60%, 경제, 사회, 문화 중추기능의 80%가 집중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지역 균형발전 정책 및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논의되고 있는 현재까지 지역 발전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높아만 가고, 각종 수치들이 보여주는 화살표는 서울로 모이고 있다.

 

“그냥 서울에 가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이들의 목소리가 무엇을 말해 주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