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기로 배우는 세상사는 지혜
장보기로 배우는 세상사는 지혜
  • 김종휘_하자센터 기획부장
  • 승인 2007.11.05 00:00
  • 수정 0000.00.0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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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 통해 세상과 관계 맺기 연습할 수 있어

김종휘
하자센터 기획부장
이번은 네 번째 연재글입니다. 첫 번째 글은 부모가 자녀를 자주 칭찬하고 격려해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공부는 빼고 잘 하는 게 딱히 안 보이더라도 말이죠. 예컨대 인사를 잘 하면 그것을 집중적으로 칭찬하고 격려해주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계기로 뭔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나간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글은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는 아이가 대체로 공부를 잘 하는 아이일 때가 많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공부만 잘 하면 칭찬하고, 공부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아이는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모른 채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글에서는 그렇게 공부만 잘 하던 아이가 일본에서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사회 부적응자가 되는 사례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조짐이 우리 사회에서도 의외로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연재글을 쓸 때마다 이렇게 앞서 했던 이야기를 요약하는 것은 독자들께서 전체 흐름 속의 새 글을 봐달라는 뜻입니다.

 

우리 아이, 집안일을 통해 세상에 내보내자

이번 네 번째 글에서는 예고한 대로 공부는 잘 하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고 지내다가 장차 은둔형 외톨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아이에 대한 조언입니다. 그런 아이를 위해 부모가 지금부터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미리 말씀을 드리지요. 학교-학원-집의 다람쥐 쳇바퀴에서 빠져 나와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호기심 어린 자세로 관찰하고 탐구하고 관계 맺게 하는 것이며, 그런 과정을 통해서 청소년 개인 스스로 자립의 의욕과 책임감 혹은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청소년 누구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게 되니까요. 


먼저 부모가 아이에게 일을 시켜야 합니다. 학생의 일은 공부라고들 하지만, 공부를 제외한 일이어야 합니다. 그 일은 가정 안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중에서 고르는 게 가장 좋습니다. 아이가 자신에게 시킨 그 일이 인위적이거나 어떤 교훈을 도출하기 위해 기획된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아이가 보기에 그 일이 좋든 싫든 어쨌든, 그 일은 진짜 해야 하는 일이라서 안 하거나 대충 했을 때 가족에게 어떤 구체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실감이 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일들은 많습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그때그때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고, 설거지를 도와달라고 하기도 하고,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어디에 전화를 해서 연락을 해야 할 때도 즉흥적으로 일을 시킬 수 있겠지요.

 

책임감 배우는 가족을 위한 장보기

그러나 제가 말하는 일은 그런 일이 아닌 게 더 좋습니다. 한번 하고나면 그것으로 끝나는 일회성 일이 아니라, 정기적이고 여러 관계로 이어지며 그 일의 결과를 지켜볼 수 있는 일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아이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매일 저녁이나 주말에 시장을 봐 오는 일을 시킬 수 있습니다. 몇 번은 어머니가 동행해서 장보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겠지요. 그 뒤에는 쪽지에 목록만 적어주면 아이 혼자 가서 제대로 장볼 줄 알게 하는 겁니다. 집안 식구 모두가 먹는 음식에 관한 것이니, 그 재료를 사오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을 너에게 시킨다는 것을 아이가 느낄 수 있는 진짜 일이어야 합니다. 아이가 규칙적으로 장보는 일을 맡는다면 매우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예컨대 제가 일하는 하자센터에서는 요리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총 11번에 걸쳐 진행되는데요. 잠깐 소개를 해보겠습니다

1강   _오리엔테이션
2강   _요리사는 예술가다(푸드 스타일링)
3강   _요리사는 치료사다(영양학)
4강   _요리사는 과학자다(부엌은 과학실험실)
5강   _요리사는 농부다(식물학, 원예학)
6강   _요리사는 교육자다(요리와 음식에 관한 인문학)
7강   _요리사는 모험가다(세계의 다양한 음식)
8강   _요리사는 기업가다(외식업과 유통업)
9강   _요리사는 혁명가다(먹는 것, 생명에 대한 다른 인식)
10강   _요리 밖의 요리사
11강   _프리젠테이션

 

대략 이렇습니다. 장보는 일을 하는 아이는 이렇게 강의를 하지 않더라도 여기에서 열거한 이 다양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어떤 관심사를 찾게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1강 오리엔테이션은 집에서 어머니가 아이 데리고 몇 번 장보러 같이 가서 사전 학습시키는 과정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그리고 11강 프리젠테이션은 어느 날 아이에게 그날 저녁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하라고 하는 것이고요. 장보러 가는 것부터 요리와 식탁에 차리는 것까지 그리고 설거지를 하고 적절한 후식을 내오는 것까지요. 만약에 집에서 아이더러 장보러 오는 일을 시킨 다음에 정기적으로 위에서 열거한 강의 제목에 해당하는 책을 한권씩 사서 전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중국에서는 황제족이라고 귀하게 자란 자녀가 커서 결혼을 했는데 부부 둘 다 장보는 것을 모른다면 그것을 대행해주고 교육시키는 일자리가 생겨났다고 할 정도라는데요. 장보는 일, 이거 장난이 아닙니다. 

내 아이가 장보러 가는 일을 매우 싫어한다고요? 장보러 갈 사람이 없으면 가족이 밥 지어먹지 못하는 거죠. 매일 시켜 먹어야 하겠군요.

내 아이가 좋아한다 혹은 싫어한다는 당장의 태도로 판단하지 마시기 당부드립니다. 우리 가족이 유지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들 중에서 장보러 가는 일만큼 진짜 일 중에서 하나를 골라 내 아이가 그 일의 어떤 부분을 책임감 가지고 하도록 만드는 것까지는 부모의 노력과 기획에 달린 일입니다. 장보러 가는 일 외에도 또 다른 일도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 번에 하나 정도 더 소개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