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일하고 싶어요”
“우리도 일하고 싶어요”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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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인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 만들기

 

“세차장 일 열심히 해서 독립하고 장가드는 게 목표에요. 장남이라서 아버지, 어머니 회갑도 챙겨드려야 돼요. 동생들한테만 맡기는 건 싫어요.”

 

“일 열심히 해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어요. 일은 조금 힘들지만 돈 많이 벌어서 여자 친구 고생 안 시키고 싶거든요.”

 

“운전 배워서 카레이서가 될 거에요.”

 

“올해 태권도 4단 단증 시험 봐요. 꿈은, …… 보디가드, 태권도 사범, 국가 대표… 그 중에서 경호원을 꼭 하고 싶어요. 약한 사람 도와주고 싶거든요.”

 

“제빵 기술도 배우고 싶고…나중에 세차장 사장도 되고 싶어요.
앉아서 일만 시켜 보게요.”

 

경기도 과천 스팀세차장에서 만나 정신지체 장애인 친구들의 꿈이다.

 

봉고차 하나에 스팀세차 장비를 놓을 수 있는 주차 공간 3칸. 10평 남짓한 이곳이 장애인들이 자신의 꿈을 쌓아가는 공간이며 또 다른 장애인들에게 자활의 희망을 주는 공간의 크기다.

과천 스팀세차장은 장애인 센터 ‘함께하는 세상’에서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사회 적응력을 높이고 자활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만든 사업체로 지난해 12월 행자부와 노동부의 지원으로 자리를 마련했다.

 

이곳에서는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경제적 독립을 시도하고 사회성을 높이기 위한 생활을 하고 있다.

과천 정부청사 후문에 마련된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삶터 스팀세차장에서 이들의 소중한 꿈을 들어보았다. ‘특별하지 않은’ 특별한 이들의 꿈!

 

일주일 중 가장 세차 차량이 많다는 월요일, 하지만 평상시의 반도 되지 않은 작업 물량에 세차장 운영을 맡고 있는 임광훈 팀장(41세)의 얼굴이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그래서일까 주차장 가득 메운 차들에 얼룩 때가 많아 보인다. 이곳 과천 정부청사 주차장에서 스팀 세차장을 운영한 지도 이제 3개월이 됐다. 임 팀장이 돌이켜본 석 달의 평가는 ‘만족’이다.

“친구들은 인지 능력이 조금 떨어질 뿐 기능과 협동력은 높은 편입니다. 반복작업이지만 옆 사람을 둘러보고 도와주는 과정에서 사회성이 많이 좋아지고 있죠.”

물론 그동안 세차장이 많이 알려지면서 손님도 거의 두 배 정도로 늘어가고, 작업자들의 숙련도 늘어 작업시간은 반으로 줄어들면서 수익성도 높아졌다.

세차장은 정신지체 장애인들에게 비장애인들과 접하면서 사회성을 키우는 공간이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곳이기 때문에 수익성은 중요한 고려 요소이다.

‘함께 하는 세상’이 그동안 두 곳의 세차장을 임시 휴업시켰던 것도 손님이 없어 최저임금 이상은 지급하겠다는 계획이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5명의 장애인들도 이구동성으로 “일이 재미있고 일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추운 날씨에 젖은 수건으로 차를 닦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무엇이 그들을 기쁘게 만들까.

이들은 “함께 일하고,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마냥 기쁘기만 했다.

 

“몸은 힘들어도 즐겁다”
장애인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를 다녔다는 최희영(24세)씨는 학교 때 친구들보다 이곳 친구들이 더 좋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는 밥을 먹어도 혼자 먹는데 여기서는 밥도 함께 나눠 먹고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서 기쁘다”는 것.

그녀는 돈을 모아 제빵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한다. 이전에 3개월 정도 빵 만드는 곳에서 일했는데 자격증을 따려면 학원에 다녀야 한다는 말에 중도 포기한 상태였다.

 

카레이서가 꿈이라는 하경수(26세)씨는 쉬는 시간에 녹차, 커피 등 마실 거리를 타는 게 가장 기쁘다.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기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맏형뻘 되는 신민철(32세)씨는 조금은 불편한 몸이지만 우편발송보다는 몸으로 일하는 이곳 세차장이 즐겁고 좋다고 자랑이다. 신민철씨는 몸은 힘들어도 결혼해서 여자친구 고생 안 시키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싶다고 조용히 되뇌었다.

 

세차장에 오기 전에 한 의료업체에서 포장 등을 했다는 이원종(27세)씨는 서로 도와주고 대화하는 작업장이 즐겁다고 한다. 자기 일만 묵묵히 해야 하는 일반 일터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천만원 가까운 돈을 모았다는 그는 “빨리 장가가서 부모님 회갑 을 챙겨드려고 싶다”는 게 꿈이다.

이들의 노동이 즐거운 것은 서로를 인정하고 도와주는 팀작업의 분위기에 기인한 것이다. 기존에 장애인들은 취업하는 경우 기술력 문제보다 조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그만두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함께사는 세상’ 세차작업팀 최현기 팀장은 “취업 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이들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면서 야단치고 소리치는 바람에 장애인들의 이직률이 높다”고 말한다.
실제로 세차장 사업을 하기 전 정신지체 장애인 5명을 일반 사업체에 보냈으나 4명은 적응하지 못하고 되돌아 왔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일할 수 있는 일터입니다”
최 팀장은 세차장 사업을 통해 이들이 기술을 익히고 사회 적응이 빨라진다면 향후에는 일반 사업체에서 일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고민을 밝혔다.
비장애인들과 함께 일하면서 사회의 일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아나가도록 지원을 하는 것이,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올바른 방법이 될 거라는 얘기다.

 

그러나 현재의 조건은 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공간마저 턱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00년말 기준으로 장애인은 145만명. 이 가운데 경제활동을 하는 장애인은 63만명으로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실업률도 28.4%로 전체 실업률 4.2%보다 훨씬 높고 2000년 기준 장애인 평균 임금도 79만원으로 전체 취업자의 48% 수준이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생활하는 데 일반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경증 환자까지 포함한 기준. 일상 생활을 하기에 힘든 중증장애인들에 대한 통계는 따로 집계된 것이 없다.


최 팀장은 “최근 정부가 공무원장애인 고용률 2%를 넘겼다고 하는데 여기에 취직하는 사람들은 비장애인처럼 생활할 수 있는 경증이 대부분”이라며 중증장애인들에 대한 정부 정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장애인들의 교육·훈련과 고용을 담당하고 있는 장애인고용촉진공단도 이렇다할 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 대외협력실 왕주선 대리는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통계 자료가 필요하지만 아직까지는 전체적인 통계나 실태조사 자체가 없다”고 밝혔다. 인적·물적 자원이 따르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상태다. 한 가정을 꾸리고 안정된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현실 속에서 가난의 악순환이 지속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장애인 단체 사람들은 이들이 고령자가 됐을 때 사회에 무방비로 방치될 가능성도 높다고 우려한다.

 

“일이 있어, 일을 해서 행복합니다”
이틀이 지나 다시 세차장을 찾았다. 그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한바탕 눈이 내리고 난 후라 많은 차들이 밀려들었다.


“문짝 깨끗이 닦어”, “트렁크는 내가 할게, 물왁스 칠부터 해”, “추운데 커피한잔 마시고 하세요” 스팀기,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문틈 사이를 꼼꼼하게 닦으며 왁자지껄 떠드는 표정이 무척 밝아 보였다.

“춥고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재밌어요”라는 미소가 되돌아 왔다.
“어렸을 때부터 집과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가 많았는데 이제는 자신감도 붙고 행복해 합니다. 경제활동도 하고 사회 안에서 살고 싶다는 직업관도 명확하고요” 최현기 팀장이 말한 일터의 중요성이 새삼 느껴졌다.

 

열심히 차를 닦는 모습 속에 이들의 꿈이 겹쳐 지나갔다.
‘누구나 갖고 있던 소박한 꿈, 이들은 지겹고 떠나고 싶은 노동이 아닌, 즐겁고 행복한 노동으로 가꾸어 가고 있구나’하는 부끄러움과 함께.
정월 대보름달이 이들의 땀방울을 싣고 꿈을 이뤄주길 기원해 본다.